[442.interview] '이렇게 기억되길...' 구자철, "올림픽 최초 동메달로 즐거움 준 선수" (일문일답)

입력
2025.01.14 15:49


[포포투=이현우(신문로)]

축구화를 벗은 구자철이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즐거움을 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레전드' 구자철은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 2층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18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하는 공식 자리를 가졌다.

은퇴 기자회견에 앞서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이 진행됐다. 구자철은 제주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유럽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해외 팀과의 가교 역할, 유소년 선수들의 훈련 태도 교육 및 훈련 코치와의 소통, 구단의 팬 밀착 마케팅 참여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구자철은 2007년 제주에 입단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프로 4년 차 2010시즌에는 K리그 도움왕과 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며 물오른 기량을 보여줬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대표팀까지 이어졌다. 2011 아시안컵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한 후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등 약 9년 동안 유럽 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아우크스부르크에서만 4년 반을 뛰며 155경기 23골 13도움을 기록했다.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고 알 가라파, 알 코르 등 카타르 리그에서 뛰다 2022시즌 친정팀 제주로 복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며 2024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구자철은 축구 국가대표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도 출전했다. 구자철은 2008년 A매치 데뷔 후 2019년까지 A매치 통산 76경기 19골을 기록하며 2019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구자철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을 꼽았다. 그는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올림픽 1년 전 즘 2011년 8월 11일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졌었다. 그래서 다시는 한일전에서지지 않겠다는 '필사즉생'의 생각으로 임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선수 생활을 하며 아쉬웠던 점으로는 브라질 월드컵을 꼽았다. 그는"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아픔과 속죄, 그리고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아쉬운 것을 떠나서 그때 제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국가대표,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부족했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한 구자철은 즐거움을 줬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제 마음속에 남는 거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2014년도에는 아픔을 드렸지만 2012년에는 즐거움을 드렸던 것 같다. 즐거움을 드린 걸로 기억되고 싶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남고 싶다"라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하 구자철 은퇴 기자회견 전문]

-은퇴 소감

은퇴를 한다는 마음을 얻고 홀가분하고 빨리 은퇴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어떻게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서 받았던 사랑과 누렸던 경험들을 통해 한국 축구가 변화를 갖는데 역할을 갖자는 생각으로 수년 동안 계획했었다. 독일에 있을 때 행정, 유소년 파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실질적으로 구단에 들어가서 배우기도 했다. 저를 키워준 제주에서 유소년 어드바이저직을 주어서 서두르지 않게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드바이저로서 목표는?

제주 소속이기 때문에 제주 팀 선수 구성의 탄탄한 결실을 맺는 게 우선이다. 재정적으로도 선수들을 키워내는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유소년 시스템 기본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좋은 선수를 발굴해 계속해서 성장하여 1군에 안착해서 한국 축구의 큰 대들보가 돼서 유럽 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 득점왕이 될 수 있게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독일에서 활동하며 훈련법도 후배들에게 많이 알려주셨었는데, 어드바이저로서 유소년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조언하고 싶은지

급하게 바꿀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가르치는 분들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제가 무언가 우월하고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역할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제가 무언가를 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는 아직 현장의 어려움을 모른다. 유소년 시스템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그 부분에 관심을 갖고 매듭을 지을 때까지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보겠다.

-지금 라이브를 보고 있는 많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마인드를 말씀해 주신다면

제주에 입단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다.(웃음) 목표를 정하고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목표가 U-20 월드컵 대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 (백)지훈이 형이 대회 전 공항에서 인터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청소년 대표를 너무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뛰었다. 너무나도 갖고 싶은 목표를 정하는 게 가장 첫 번째인 것 같다. 목표가 없으면 목표가 있는 사람과 동기부여에 차이가 나고 행동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에 관한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제주 유소년 선수들은 좋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가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올림픽 1년 전 즘 2011년 8월 11일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졌었다. 유럽 진출 후 첫 번째로 하는 A매치가 일본에서 열렸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삿포로까지 많은 이동을 해서 '몸이 이거를 어떻게 하지' 생각했다.

결과가 0-3으로 졌는데, 대선배부터 이어온 한일전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는 한일전에서 지지 않겠다는 '필사즉생'의 생각으로 (3-4위 결정전에) 임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선수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다짐. 경기 후 1년 전 패배를 반성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대표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골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 미국전 페널티킥을 넣고 팔을 벌리고 세리머니를 한 기억이 있다. 그 전율은 그 골을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냈구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호주랑 할 때 넣었던 골이다. 이유는 그전에 넣었던 골은 그냥 기분이 좋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넣었던 그 짜릿함과 공을 잡고 원하는 터치와 슈팅이 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홍)철이가 올려주고 (김)신욱이가 떨궈져 넣었던 골이 있었는데 그게 기억에 남는다.

추가적으로 참여했던 대회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는데, 올림픽에서는 초반에 계속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득점이 나올 거라고 계속 생각했다. 우리 축구가 세계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4강 브라질전에서 팀의 중요한 골을 넣어 우리가 결승에 가보자 생각했다. 그때도 골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한 한일전에서 그것을 털어낼 수 있는 골이 나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너무 많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아픔과 속죄, 그리고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아쉬운 것을 떠나서 그때 제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최연소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오지만 그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국가대표,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부족했다. 경험을 통해 성장했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월드컵에서의 결과가 국민들에게 아쉬움을 남겼고 월드컵으로 생계에 덕을 볼 수 있었던 분들에게 돌이켜보면 너무 책임감이 없지 않았나 죄송하다.

제주 후배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제주라는 사회에 어린이들에게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 행동이나 말이나. 그게 프로 선수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 부분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많다. 2014년을 그렇게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 기성용, 이청용과 동 세대로서 한국 축구에 큰 업적을 이뤘고 제일 먼저 은퇴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있는지

단톡방이 세 명이서 있는데 사소한 것까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한다.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아쉬워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둘이서 많이 해줬다. 친구들에게 많이 고맙고 성용이와 청용이에게 같은 선수로서 장점을 보면서 많이 따라가려고 했다. 훌륭하고 성실하고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제가 안 좋은 생각을 할 때도 친구들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저도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데 그 친구들이 저보다 크면 크지 작지는 않은 것 같다. 은퇴를 앞두고 친구들이 조언도 해주고 했다. 은퇴를 먼저 하니 네가 잘하고 있어야 된다는 말도 했다. 그들이 은퇴를 하기까지 잘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선수 생활 동안 고맙고 영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성용이 같은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행정적으로 연수도 받고 있다. 셋이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행정, 지도자 모두 따놓으라고 한다. 기회가 있을 때 질문하고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용이가 유럽에 다녀오면 얘기해 준다. 제가 그들의 미래를 얘기할 수는 없다. 저도 지도자 자격을 A와 P를 따야 하는 상황이다.

유소년에도 제가 가진 경험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욕심내다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 셋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고 한다.

-예전 데뷔와 비교했을 때 지금 K리그 위상과 시스템의 차이 및 나아갈 방향

2007년부터 활약을 했고 15년 만인 2022년에 돌아왔다. K리그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행정적인 부분도 좋아졌다. K리그의 성장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축구판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 하고 싶은 것, 해주고 싶은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 축구가 발전해야 한다고 전반적으로 보고 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훌륭한 인프라에서 축구하고 있으나, 변해야 할 것은 많다.

잔디를 바꿨으면 좋겠다. 잔디의 중요성이 기본인데, 이것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주에도 얘기를 많이 한다. K리그에서는 저희 구단이 K리그에서 상위 1,2위라고 해서 구단이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팬들의 즐거움에 신경을 써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잔디는 제도적으로 파고들어서 바꿔야 한다. 날씨가 더워서 잔디가 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핑계로 삼아 방치할 수 없고 선수들이 첫 번째로 피해를 보고 선수를 보는 팬들이 피해를 본다. 잔디는 제도를 개선해서라도 바꿔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에 없었던 특별한 주장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주장 손흥민을 어떻게 보는지,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은 어떻게 평가하나

흥민이의 리더십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 주장으로서 최대한 선수들이 부담과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 말들이나 행동을 많이 했다.

-지금 시기에 은퇴를 결정한 이유, 제2의 축구 인생 꿈은?

제 근육과 무릎, 발목이 버텨주지 못한다. 예전에는 근육이나 관절에 데미지를 받으면 이 정도 쉬면 이 정도의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그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길어지니 은퇴를 고민하며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겠다 생각했다. 저를 발굴해 준 구단에 와서 은퇴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은퇴 후 꿈은 아직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서 차마 입 밖으로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보다는 저를 여기까지 만들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요. 제가 결혼을 일찍 했어요. 10년 넘게 신은 축구화가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결혼을 일찍 한다고 하니 싫어했다.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독일에 있을 때 첫째를 낳고 외국에서 대표팀 경기를 하러 가면 한 달에 10일씩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었다. 애들을 둘 키우면서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옆에서 도와준 처제에게도 고맙다. 가정이 생기면 책임감이 생긴다. 가족한테 고맙다. 유년 시절 키워준 고모한테도 매우 감사하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것은 가족의 힘인 것 같다. 저에게는 크게 할 말이 없고 가족이 부각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주목하는 한국 축구의 미래는?

우리나라에 돌연변이가 있다. 지성이 형 맨유 갔을 때 엄청 놀랐는데 흥민이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도 놀랐다. 강인이가 파리 갔을 때 우리나라 선수가 빅클럽에 갈 수 있구나. 민재가 뮌헨에 갈 때도 그렇고요. 더 큰 클럽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목표로 많은 선수들이 유럽과 K리그에서 활약했으면 좋겠다.

-토트넘에 가 있는 2024년 양민혁과 2007년 혹은 2010년 20대 초반의 구자철 누가 더 위인가?

양민혁이다. 토트넘을 어떻게 이기나.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

저는 해외 갈 거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 중심에는 지성이 형이 있었고 많은 동기부여를 줬다. 더불어 기성용과 이청용이 동기부여가 됐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그들이 갔기 때문에 가고 싶다에서 가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구단에도 유럽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며 에이전트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목표를 정해서 잘 해냈던 것 같다. 비슷한 또래나 동경의 대상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그 동기부여를 꼭 이뤄내고 싶으면 몸을 움직이게 한다.

-구자철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제 마음속에 남는 거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2014년도에는 아픔을 드렸지만 2012년에는 즐거움을 드렸던 것 같다. 즐거움을 드린 걸로 기억되고 싶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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