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조형래 기자] 차분하게 2024년을 마무리 하려던 찰나, 프로야구는 의외의 지도자 선임으로 파장이 일었다. SSG 랜더스는 202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공석이었던 퓨처스팀 감독에 박정태 전 해설위원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롯데 ‘원클럽맨’이다. 1991년 롯데에서 데뷔해 2004년까지 통산 1167경기 타율 2할9푼6리 1141안타 85홈런 639타점 OPS .806의 성적을 거둔 레전드 2루수다.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다섯차례나 수상했다(1991, 1992, 1996, 1998, 1999). 역대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최다 수상자다. KBO의 40주년 레전드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도자 커리어도 롯데에서 시작했다. 2005년 미국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타격 및 주루코치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07년부터 롯데 2군 타격코치를 시작으로 2군 감독, 1군 타격코치 등을 역임했다. 2012년까지 롯데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타격코치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태 퓨처스 감독의 프로 무대 지도자 커리어는 이 때가 마지막이었다. 대신 야인으로서 아마추어 무대에서 저변 확대에 힘썼다. 박정태 감독은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장애우, 비행청소년, 다문화 가정 등과 함께하는 사회공헌활동 격의 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에는 밀양 동강중, 2020년에는 밀양 밀성고의 클럽 야구단 창단을 주도하기도 했다.
다양한 공익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2019년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음주운전에 버스 운전까지 방해하고 버스 기사까지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앞서 두 차례 음주운전 처벌 전력도 있었다.
다소 의문의 선임이었다. 프로 현장 경험은 2012년이 마지막이다. 12년의 공백도 문제인데 여기에 혈연 논란까지 얽혀있다. SSG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추신수를 구단주 보좌역 겸 육성 촐괄로 임명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박정태 감독은 추신수의 외삼촌이다. 조카가 12월 27일 육성총괄에 선임된 데 이어 4일 만인 31일에 외삼촌이 퓨처스 감독 자리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혈연 논란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SSG는 논란을 정면돌파했다.
SSG 관계자는 “추신수 보좌역과의 관계 때문에 박정태 감독님을 선임하는데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인정하면서 “밖에서 보면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추신수 보좌역과 퓨처스 감독 선임은 전혀 관련이 없다. 추신수 보좌역의 영향력 때문에 박정태 감독님이 선임됐다면 오히려 더 빨리 선임이 됐을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명확한 선임기준과 절차, 공정한 평가를 거쳐 퓨처스 감독을 선임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퓨처스 감독 선임 절차는 대표이사님과 단장님이 오랫동안 진행해 온 일이다. 당시에는 추신수 보좌역이 현역 은퇴 이후 어떤 선택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퓨처스 감독 선임은 추신수 보좌역 선임과는 별개의 트랙으로 진행됐다”라며 “박정태 감독님과 감독 선임 과정을 진행하는 사이에 추신수 보좌역이 프런트로 일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에 퓨처스 감독 발표가 난 것이다. 구단주 보좌역과 퓨처스 감독 선임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별개의 트랙으로 진행됐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SK에서 SSG로 구단명을 바꾼 뒤 2년 만인 2022년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시즌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SSG의 세대교체와 육성은 찬란한 빛에 가려진 그림자였다. 당장의 성적을 내는데 베테랑들이 중심이 됐지만 베테랑들의 뒤를 이을 신예 선수들에 대한 준비가 원활하게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주축 선수들이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홈런왕 최정은 30대 후반이다. 투수진 버팀목이자 홀드왕인 노경은은 42세 최고령이다. 이들을 뒷받침하면서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따랐다. 이 과정에서 최지훈과 박성한이 유망주에서 2022년 우승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투수진의 경우 육성의 흐름이 온전히 이어지지 않았다. 박종훈과 문승원이라는 고액 연봉자들이 부상과 부진 등으로 헤매면서 젊은 투수들에 대한 보호막이 사라졌다. 김광현의 후계자인 오원석은 기회를 주다가 KT 위즈로 트레이드 됐다. 대신 우완 파이어볼러 영건 김민을 받아왔다. 노경은과 고효준의 회광반조격 역투가 팀을 이끌었다시피 했다. 김광현도 지난해 한계를 보여줬다.
지난해 SSG는 김성용 단장 체제에서 감독 경질과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이 발생했다. 전체적인 구단 운영이 미숙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SSG는 손시헌 퓨처스 감독 체제에서 육성의 결실을 봤다.
손시헌 퓨처스 감독이 육성을 오롯이 책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해 새얼굴들이 많아졌다. 마운드에서는 마무리로 거듭난 조병현을 필두로 한두솔, 이로운 등 젊은 투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야수진에서는 최지훈과 박성한 이후 박지환과 정준재, 고명준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들이 1군 레귤러 멤버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며 선수단 적체현상을 일으켰던 선수들이 마지못해 기회를 받는 현상은 사라졌다. 새얼굴들이 등장한 덕에 SSG는 비시즌 선수단 정리를 과감하게 펼칠 수 있었다.
손시헌 감독과 함께 육성의 흐름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곧바로 1군으로 불러 올렸다. 육성의 방향이 잡혀가는 와중에 12년 공백의 지도자가 오는 셈이다. 퓨처스 감독 한 명 바뀌었다고 육성의 흐름이 끊기는 것은 구단 시스템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태 퓨처스 감독이 구단의 시스템을 이어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봤기에 12년 공백의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2년 공백에 더해 추신수 혈연 논란, 또 음주 운전 이력 등으로 SSG는 더 철저하게 검증했고 과거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 등을 유심히 살펴봤다고 한다. SSG는 “박정태 감독님은 예전부터 항상 2군 감독 후보군에 계셨던 분이다”라고 항변하며 “작년과 올해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구단 선수단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후보 리스트에는 있었지만 유력한 후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감독 후보들을 전면 재검토 하면서 박정태 감독님의 장점에 주목했고 구단 기준에 부합하는 지도자로 판단했다”라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서도 “당시 사건에 대해 박정태 감독은 혐의를 인정하고 이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 판결로 받은 사회봉사 명령을 성실히 이행했고 사건 당사자인 버스기사에게도 사과를 하고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판 당시 버스기사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밀양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소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라며 지난 12년 간의 행적을 면밀하게 조사했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저변 확대 노력을 했다고 하더라도 퓨처스 감독으로 프로 지도자로서 12년의 공백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는 또 다르다. 그리고 현장 육성의 최전선에 있는 퓨처스 감독이다. 승패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육성 성과를 평가하는 데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고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다.
2028년부터 맞이하게 될 청라돔 시대를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SSG다. 그러나 박정태 퓨처스 감독 선임은 ‘올드 스쿨’ 지도자와 미래를 도모하는 셈이다. 결국 SSG는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박정태 감독 역시 여러 논란이 기우였다는 것을 불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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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 수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