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거인군단…‘낭만 끝판왕’ 김원중
남아줘서 고맙다며
밥값 계산해주는 팬들 어딨나…
애정도 질타도 ‘화끈’
12년 전 지명땐 꿈도 못꿔
사투리 못알아듣던 광주 토박이
중간→선발→마무리로 제몫 찾고
입단 목표 ‘간판선수’로 FA까지…
이제 초심으로 ‘최고’ 향해 뛸것
롯데 김원중(31)은 최근 식당에서 지갑을 꺼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김원중은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식당에 있던 세 팀이 서로 ‘내가 계산하겠다’고 싸우시더라”며 “하루는 치킨을 포장해 가려고 방문했는데 돈을 안 받겠다고 하셔서 편의점 가서 다양한 음료를 여러 개 사서 가져다드렸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길에서 만나는 팬들에게서는 “남아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 잘 해서 야구를 오래 해달라”는 인사를 계속 듣는다.
2024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원중은 스토브리그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혔다. 4년 총액 54억원에 롯데에 잔류했다. 당시 김원중은 “돈을 더 받고 떠나기보다는 구단에 남았을 때 로열티, 정체성, 상징성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롯데를 향한 ‘일편단심’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김원중의 롯데를 향한 이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학강초-광주동성중-광주동성고를 졸업한 김원중은 광주 토박이다. 부산과 특별한 인연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롯데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를 이끌었던 2010년대 초반 롯데 야구를 봤던 그는 “롯데 야구가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팬들도 많았고 다른 지방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고 했다.
롯데를 향한 동경은 있었지만 지명될 줄은 몰랐다.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 나간 김원중은 고3 때 성적이 좋지 않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롯데가 1라운드 5순위로 김원중을 지명했다. 김원중은 “지명을 받고 카메라 플래시가 막 터져 얼떨떨해 하고 있었는데 그때 표정 때문에 ‘롯데에 오기 싫은 것이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웃었다.
입단 후 첫 스프링캠프에서 이용훈, 송승준, 김사율, 이명우 등 대선배들이 피칭하는 모습을 보며 김원중은 “기계가 피칭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선배들이 있는데 내가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에 자극도 됐다.
부산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김원중은 “광주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시키면 국도 주고, 한정식처럼 한상 차림을 내준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고기를 시켜서 밥도 먹는데 국을 안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부산 사투리에 적응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롯데 선수들 중에서도 사투리가 심한 이명우와 룸메이트를 했다. 김원중은 “새로 산 선글라스를 끼고 구단 버스를 탔는데 명우 선배가 ‘원중아, 내놨나?’라고 했다. 그래서 버스 선반 위를 보고 ‘내릴 거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아니, 하나 샀냐고’라고 하시더라”고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환경 적응 만큼이나 1군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까지도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지명 후 팔꿈치, 어깨에 잦은 부상으로 퓨처스리그에만 머물던 김원중은 상근예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2015년이 돼서야 1군에 첫 선을 보였다. 그해 15경기 1홀드 평균자책 5.75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본격적으로 선발로 준비했으나 또 옆구리, 팔꿈치 등 부상으로 1군에서 3경기를 뛰는 데 그쳤다.
김원중이 1군 풀타임을 처음 뛴 것은 2017년이었다. 선발로 뛰며 24경기 7승8패 평균자책 5.70을 기록했다. 선발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3년 간 선발로 뛰었으나 더 올라서지는 못하던 김원중에게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마무리로 전환을 권유받았다. 당시 김원중도 ‘변화’가 필요하다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태되어 있으면 안 되지 않나, 무조건 업그레이드해야된다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내 강점을 만들어서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2020년 김원중은 25세이브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지난해에는 구단 최초 100세이브 고지를 밟았고 올해까지 통산 132세이브로 리그 대표 마무리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FA 계약 뒤 돌이켜보니 롯데에 입단할 때부터 그려왔던 목표에 가까워져 있었다. 김원중은 “입단하면서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구단 이름 뒤 내가 들어갔을 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애증의 관계… 뛰어봐야 느낌 안다”
‘롯데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김원중은 “애증의 관계”라고 답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생각이다. 나 뿐만이 아니다. 롯데에서 뛰었던 선수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인기팀이다. 그는 “팬들이 잘할 때는 응원해주고, 못할 때에는 욕을 하실 때도 있지만 타 팀에 가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른 팀들도 인기가 많지만 롯데는 뭔가 다른 느낌”이라며 “뛰어봐야 안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FA 계약을 한 후 초심을 찾기 위해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김원중은 다음 시즌에는 정말 팀이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그 누구에게 물어도 모두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라고 한다”며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팀 전력이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다음 시즌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일찌감치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 김원중은 책임감이 더 커진다. 그는 “내가 잘 해야 많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팀이 많이 이기는 데만 신경쓸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성적도 잘 나올 것”이라며 다음 시즌을 바라봤다.
남아줘서 고맙다며
밥값 계산해주는 팬들 어딨나…
애정도 질타도 ‘화끈’
12년 전 지명땐 꿈도 못꿔
사투리 못알아듣던 광주 토박이
중간→선발→마무리로 제몫 찾고
입단 목표 ‘간판선수’로 FA까지…
이제 초심으로 ‘최고’ 향해 뛸것
롯데 김원중(31)은 최근 식당에서 지갑을 꺼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김원중은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식당에 있던 세 팀이 서로 ‘내가 계산하겠다’고 싸우시더라”며 “하루는 치킨을 포장해 가려고 방문했는데 돈을 안 받겠다고 하셔서 편의점 가서 다양한 음료를 여러 개 사서 가져다드렸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길에서 만나는 팬들에게서는 “남아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 잘 해서 야구를 오래 해달라”는 인사를 계속 듣는다.
2024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원중은 스토브리그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혔다. 4년 총액 54억원에 롯데에 잔류했다. 당시 김원중은 “돈을 더 받고 떠나기보다는 구단에 남았을 때 로열티, 정체성, 상징성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롯데를 향한 ‘일편단심’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김원중의 롯데를 향한 이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학강초-광주동성중-광주동성고를 졸업한 김원중은 광주 토박이다. 부산과 특별한 인연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롯데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를 이끌었던 2010년대 초반 롯데 야구를 봤던 그는 “롯데 야구가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팬들도 많았고 다른 지방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고 했다.
롯데를 향한 동경은 있었지만 지명될 줄은 몰랐다.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 나간 김원중은 고3 때 성적이 좋지 않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롯데가 1라운드 5순위로 김원중을 지명했다. 김원중은 “지명을 받고 카메라 플래시가 막 터져 얼떨떨해 하고 있었는데 그때 표정 때문에 ‘롯데에 오기 싫은 것이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웃었다.
입단 후 첫 스프링캠프에서 이용훈, 송승준, 김사율, 이명우 등 대선배들이 피칭하는 모습을 보며 김원중은 “기계가 피칭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선배들이 있는데 내가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에 자극도 됐다.
부산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김원중은 “광주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시키면 국도 주고, 한정식처럼 한상 차림을 내준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고기를 시켜서 밥도 먹는데 국을 안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부산 사투리에 적응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롯데 선수들 중에서도 사투리가 심한 이명우와 룸메이트를 했다. 김원중은 “새로 산 선글라스를 끼고 구단 버스를 탔는데 명우 선배가 ‘원중아, 내놨나?’라고 했다. 그래서 버스 선반 위를 보고 ‘내릴 거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아니, 하나 샀냐고’라고 하시더라”고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환경 적응 만큼이나 1군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까지도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지명 후 팔꿈치, 어깨에 잦은 부상으로 퓨처스리그에만 머물던 김원중은 상근예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2015년이 돼서야 1군에 첫 선을 보였다. 그해 15경기 1홀드 평균자책 5.75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본격적으로 선발로 준비했으나 또 옆구리, 팔꿈치 등 부상으로 1군에서 3경기를 뛰는 데 그쳤다.
김원중이 1군 풀타임을 처음 뛴 것은 2017년이었다. 선발로 뛰며 24경기 7승8패 평균자책 5.70을 기록했다. 선발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3년 간 선발로 뛰었으나 더 올라서지는 못하던 김원중에게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마무리로 전환을 권유받았다. 당시 김원중도 ‘변화’가 필요하다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태되어 있으면 안 되지 않나, 무조건 업그레이드해야된다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내 강점을 만들어서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2020년 김원중은 25세이브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지난해에는 구단 최초 100세이브 고지를 밟았고 올해까지 통산 132세이브로 리그 대표 마무리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FA 계약 뒤 돌이켜보니 롯데에 입단할 때부터 그려왔던 목표에 가까워져 있었다. 김원중은 “입단하면서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구단 이름 뒤 내가 들어갔을 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애증의 관계… 뛰어봐야 느낌 안다”
‘롯데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김원중은 “애증의 관계”라고 답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생각이다. 나 뿐만이 아니다. 롯데에서 뛰었던 선수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인기팀이다. 그는 “팬들이 잘할 때는 응원해주고, 못할 때에는 욕을 하실 때도 있지만 타 팀에 가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른 팀들도 인기가 많지만 롯데는 뭔가 다른 느낌”이라며 “뛰어봐야 안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FA 계약을 한 후 초심을 찾기 위해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김원중은 다음 시즌에는 정말 팀이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그 누구에게 물어도 모두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라고 한다”며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팀 전력이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다음 시즌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일찌감치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 김원중은 책임감이 더 커진다. 그는 “내가 잘 해야 많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팀이 많이 이기는 데만 신경쓸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성적도 잘 나올 것”이라며 다음 시즌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