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고 눌러라?" 미들 랠리 판독 도입해도...'귀걸이코걸이' 우려는 계속 [이슈스파이크]

입력
2024.12.26 07:30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에게 경고를 내리는 강주희 주심

(MHN스포츠 장충, 권수연 기자) 지난 8월 28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배구 국제화에 걸맞게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다름 아닌 '미들 랠리' 판독이었다.

기존 비디오판독이 랠리 종료 후에만 가능했던 것과 달리, 새롭게 도입된 규정은 랠리 중간에도 즉시 판독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규정이 도입되면 그에 걸맞는 정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우선화된다.

그러나 지난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24-25시즌 여자부 3라운드 GS칼텍스와 현대건설의 경기에서는 이에 대한 허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3세트 16-15로 GS칼텍스가 1점 차 앞선 상황에서 정지윤(현대건설) 크로스 공격이 득점 판정으로 이어진 후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의 거센 항의가 터져나왔다. 양효진이 권민지의 오픈 공격을 막다 내려가는 과정에서 이미 밑으로 쳐진 손에 볼이 살짝 스쳤고, 이후 모마가 걷어내고 이다현의 이단연결을 받아 정지윤이 오픈 공격을 하는 과정이었다. 이영택 감독은 이 과정을 포히트 반칙으로 보고 판정 항의에 나섰다.정지윤부심에게 항의하는 GS칼텍스 이영택 감독

항의는 약 10분이나 이어졌고,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의가 길어지자 관중석에서는 "심판 탄핵하라"는 고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싸늘해졌다.

경기 부심을 맡은 권대진 심판은 "포히트는 미들랠리에 포함되는데 이미 볼이 데드가 됐고 랠리가 끝났기 때문에 판독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영택 감독은 이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경기 후 "정지윤의 히팅(공격)을 포히트로 판단했기 때문에 판독을 신청한건데, 그 전까지는 반칙이 아니었다. 정지윤의 터치 자체를 포히트 반칙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미들랠리를 끊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재차 설명했다. 이를 심판진에게도 납득시키려 했지만 권 부심은 "그게 맹점인건 알지만 규정이 그렇다"며 판독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경기 판독관에게 항의하는 GS칼텍스 이영택 감독

구단 관계자 역시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맹점인건 안다'고 발언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진이 포히트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건데, 판독을 규정상 할 수 없다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이영택 감독이 옐로카드를 받은 후에도 얼마간 항의 상황이 이어졌고, 경기 위원석에서도 재고 논의가 이뤄졌지만 이 또한 경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기각됐다.

사후 인터뷰가 끝난 후 현장에서는 '감독이 경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판독 신청이 불가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에 심판진은 구단 측을 통해 "경고 후에 판독을 하게 되면 경고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

정지윤의 득점은 몇 초만에 이뤄졌다. 항의하는 이영택 감독에게 심판진은 스파이크부터 득점까지 공이 상대편 코트에 닿는 사이에 (예상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부저를 눌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억지에 가까운 설득이다. 가장 가까이서 포히트를 잡아내야 할 주심이 정작 코 앞에서 중요한 반칙은 놓치고 홈팀의 부저 타이밍을 지적하는 것조차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이영택 감독 역시 "내가 부저를 손에 들고 있어도 그 타이밍에 맞춰서 어떻게 누르느냐"고 답답한 심경을 격앙된 어조로 토해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통영 컵대회 남자부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졌다. 지난 9월 21일 통영체육관에서 열린 2024 통영 도드람컵대회 당시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경기였다.심판진에 항의하는 OK저축은행 오기노 감독심판진에 항의하는 OK저축은행 오기노 감독

당시 OK저축은행 오기노 마사지 감독은 3세트 중반 박원빈의 속공 상황에서 포히트 선언으로 실점한 뒤 약 10분 가량의 항의를 이어갔다. 오기노 감독은 "이미 박원빈의 속공으로 랠리가 끝났는데 (볼이 데드된 상황) 왜 (현대캐피탈 측의) 미들 랠리 판독을 받아줬느냐"로 한바탕 항의했다.

이 당시에도 '유연성'과 '주관'에 대한 논점이 화두가 됐다. 판독을 신청한 팀이 반칙 플레이가 나온 즉시 부저를 곧장 눌렀는지에 대한 판단을 심판이 내리게 되고, 판독 여부 역시 심판이 판단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결국은 심판의 주관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셈이다.

미들 랠리 판독은 본디 국제배구연맹(FIVE)에서 시행되던 것을 국내 리그로 도입한 것이다. 배구는 네트 앞 접전이 긴밀하고 공격 패턴이 매우 빠른 스포츠다. 이 때문에 국제 주관 무대에서는 주심이 상황에 따라 랠리가 종료된 후에도 판독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마디로 룰 자체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변수가 큰 판정이다보니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개입되는 규정으로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결국은 심판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융통성이 주가 되는 룰인데 이번 경기는 그 모두를 놓쳤다.

또 이번 경기의 경우는 심판이 규정에 따라 판정했지만, 룰 자체가 비상식적인 프레임에 갇혀있어 벌어진 사례다. 심판은 어디까지나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들 랠리 판독이 가능한 것으로 봤다. 일단 문서화된 규정대로라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2초 동안 빠르게 이뤄지는 득점 상황에서 '수 초 안에 미리 반칙을 예단하고 판독을 요청하라'는 심판진의 요구는 헛웃음을 자아낸다. 결국 오심임을 인지하면서도 심판진의 판단을 무의미하게 할 수 없었다는 소리가 된다.

또 컵대회 때 선례가 나왔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여자부에서 이런 상황이 한번 더 나왔다. 여기에 이번에는 판단이 반대로 됐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영택 감독은 경기 후 취재진과 가장 늦게 만났다. 패장은 취재진과 가장 먼저 만나지만 순서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 감독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경기 후 사후판독을 해주겠다고는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작심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13연패 수렁에 빠진 GS칼텍스는 오는 2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리그 1위 흥국생명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경기 시간은 오후 2시다.

사진= KOVO<저작권자 Copyright ⓒ MHN스포츠 / MHN Sport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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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고아풍
    정지윤이 스파이크한 순간, 심판이 포히트 파울을 불었어야 하지요. 자기들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도, 그걸 항의하는 감독과 팀에 파울을 분다고요? 코보는 아직 멀었습니다.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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