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고참 선수들은 지난 11일 오전 태안 서해 앞바다로 향했다. 에이스 류현진을 필두로 이재원, 장시환, 최재훈, 채은성, 안치홍, 이태양, 장민재 등 8명의 30대 주축 선수들이 겨울 바다에 입수했다. 얇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며 바닷물로 들어갔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선수들은 ‘하나 둘 셋’을 외친 뒤 동시에 물속으로 풍덩 빠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몸에 한기가 돈 선수들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감싸거나 발을 동동 굴렀다. 류현진의 SNS를 통해 공개된 겨울 바다 입수 영상은 보기만 해도 추위가 느껴졌다.
시즌 전 공약이 겨울 바다 입수의 발단이었다. 지난 3월22일 열린 KBO 미디어데이에서 ‘주장’ 채은성이 “5강에 못 들면 고참들이 12월에 태안 앞바다 가서 입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왜 항상 공약은 성공했을 때만 있는 거냐”는 류현진의 아이디어로 이색 공약이 나왔다.
개막 10경기 8승2패로 단독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한화는 그러나 4월부터 추락을 거듭했다. 2년 연속 시즌 중 감독이 바뀌었고, 최종 순위 8위(66승76패2무 승률 .465)로 가을야구에 또 실패했다.
시즌 전 5강 실패 공약도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한화 고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류현진은 “팬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러 겨울 바다 다녀왔습니다. 내년에 제대로 더 잘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SNS에 남겼다.
한화 고참들은 구단에 따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태안으로 향해 ‘인증’하면서 공약을 이행했다. 구단에선 설마 진짜로 할 줄 몰랐다는 반응. 고참들의 겨울 바다 입수를 보면서 한화 후배 선수들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대전에서 비시즌 개인 운동 중인 2년차 투수 김서현은 “선배님들이 진짜로 할 줄 몰랐다”며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셨는데 후배로서 가볍게 보기만 하고 넘어갈 건 아닌 것 같다. (어린 선수들도) 무조건 실력이 늘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년차 내야수 문현빈도 “선배님들이 후배들에겐 바다에 간다는 말씀을 따로 안 하셨다. 모르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고 놀랐다”며 “내년에 진짜로 가을야구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신 것이다. 후배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에서 3번째 시즌을 보낸 외야수 이진영도 “후배들도 같이 갔어야 하나 싶었다. 영상을 보면서 느낀 게 많다. 더 열심히 하고, 비시즌 준비 잘해서 내년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4년차 투수 김기중 역시 “우리가 못해서 선배님들이 하신 것이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책임감을 느꼈다. 신인 투수 조동욱도 “선배님들이 팬분들과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내년에는 그런 일이 없게 나도 최대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후배 선수들은 겨울 바다에 입수하지 않았지만 팀 성적에 책임을 지고 나선 고참들의 모습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구를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좋은 자극과 동기 부여로 삼고 있다.
한화는 시즌을 마친 뒤 3일만 쉬고 대전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까지 두 달 가까이 강도 높은 훈련을 펼쳤다. 이례적으로 고참들도 마무리캠프에 대거 합류해 솔선수범했다. 김경문 감독도 “우리 고참들이 열심히 해줘 캠프를 좋은 분위기로 치를 수 있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내년에 창단 40주년을 맞이하는 한화는 대전 새 야구장 베이스볼 드림파크(가칭)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BI와 유니폼도 바꾸면서 완전히 새출발한다. 외부 FA로 선발투수 엄상백과 유격수 심우준을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 구성도 거의 다 완료했다. 후반기 에이스로 활약한 투수 라이언 와이스와 재계약한 가운데 새 외국인 타자는 뉴욕 양키스 최고 유망주 출신으로 중견수 수비가 좋고 발 빠르며 장타력도 갖춘 에스테반 플로리얼이 온다. 일본에서 노히터 게임을 한 코디 폰스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투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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