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콜이 스트라이크로 들렸다고 해서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태블릿PC는 왜 제공한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은 지난 22일 대전 LG 트윈스전 도중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최 감독의 손에는 ABS(자동볼판정시스템) 데이터가 전송되는 태블릿PC가 들려 있었다. 최 감독은 ABS 판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잡혔다고 판단해 심판진에 보여주며 검토를 요청했는데, 심판진은 최초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태블릿PC에 전송된 데이터가 무력해진 순간이었다.
문제 상황은 정확히 이랬다. 3회말 2사 3루 안치홍 타석 볼카운트 3-0에서 상대 선발투수 디트릭 엔스가 우타자인 안치홍의 바깥쪽 높은 코스로 던진 4구째 직구가 문제였다. 주심과 3루심, 그리고 한화 더그아웃에 제공된 음성 수신기로는 "스트라이크"라는 콜이 들어왔는데, ABS 데이터를 전송받는 태블릿PC상으로는 4구째 공이 스트라이크존 모서리에서 벗어난 코스로 찍혀 있었다. 스트라크존에 벗어난 곳에 공이 들어왔다는데 스트라이크라고 하니 한화로선 황당할 만했다.
심판진은 최 감독에게 일단 콜이 스트라이크이기에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공 하나가 큰 변수가 되진 않았다. 안치홍은 풀카운트에서 6구째 엔스의 체인지업이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잘 골라 결국 볼넷을 얻긴 했다. 그런데 만약 안치홍이 볼넷이라는 똑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한화는 이 판정 하나를 더 크게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콜과 판정 화면에 차이가 없어야 하는 게 옳다.
최 감독은 하루 뒤인 23일 취재진과 만나 심판진에게 항의한 상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태블릿PC에서는 스트라이크존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공이 찍혀 있었다. 살짝 물려 있지도 않았고 완전히 벗어난 공이었기에 그래서 어필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태블릿에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는 상황인데, 콜이 스트라이크로 들렸다고 해서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태블릿PC는 왜 제공한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나중에 볼넷으로 나가긴 했지만, 이런 문제도 보완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 미스(실수)일 수도 있고, 태블릿PC에 전송된 데이터의 미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미스가 나왔을 때 그러면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블릿PC에 전송된 볼 판정 데이터에 선수단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또 있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존을 예상하고 투구 계획을 세우는 데 적극 활용하는 자료이기 때문. 한화 에이스 류현진은 태블릿PC와 가장 가까운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라이크존 모서리를 활용하는 투구를 즐기는 선수이기에 당연한 행보다.
그래서 류현진은 지난달 24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ABS가 설정한 스트라이크존이 23일 수원 kt전과 차이가 있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23일 경기 ABS 데이터를 보고 준비한 스트라이크존이 24일에는 다르게 적용됐다고 느꼈고, 공 하나 또는 반개 차이로 스트라이크를 노리는 류현진은 로봇 심판과 싸우다 5이닝 7실점(5자책점)으로 무너지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KBO는 류현진이 문제를 제기했던 3회말 조용호 타석 판정과 관련해 "류현진이 등판한 해당 경기 3회말 kt 조용호의 타석 3구째는 ABS 중간 존 하단을 0.15cm위로 통과했으나 ABS 끝면 존 하단을 0.78cm 차이로 통과하지 못해서 볼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하며 선수의 오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0.78㎝라는 작은 차이에도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예민한 상황이라 KBO는 ABS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을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22일 최원호 감독이 어필한 사례는 태블릿PC 전송 데이터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최 감독은 "태블릿PC를 더그아웃에 제공한 건 차이가 있을 때 확인하라고 준 게 아닌가. 처음에는 데이터 전송이 너무 느려 어필할 수도 없었다. 요즘은 그래도 빨라지기는 했는데, 어필을 해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라며 KBO가 태블릿PC를 제공한 근본적 취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KBO는 최 감독의 항의 내용과 관련해 태블릿PC에 전송된 데이터의 그래픽상 오류로 결론을 내렸다. KBO 관계자는 23일 스포티비뉴스와 통화에서 "노란색으로 찍혔다는 건 스트라이크라는 뜻이다. 그래픽상으로는 공이 찍힌 곳과 스트라이크존 사이에 공간이 조금 있다. 그건 표출상의 문제다. 그래픽으로 표현했을 때 오류가 발생한 상황인 건데, 이 문제는 다시 개선을 하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기준은 태블릿PC에 찍힌 공의 색깔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그래픽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약간 혼란을 끼쳐 드린 점은 운영사도 인지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투구 추적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는 스트라이크가 맞다고 확인이 됐다. 해당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통과된 건 명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KBO가 대전 상황을 정리했을 때, 23일 사직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도 ABS 판정 관련 항의로 시끄러웠다. 7회초 KIA 공격 때 박찬호 타석에서 6구째 바깥쪽 커터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는데, 이범호 KIA 감독이 태블릿PC를 직접 들고나와 스트라이크가 맞는지 확인했다. 최원호 감독이 어필한 상황과 비슷했다. 태블릿PC로 전송된 데이터상으로는 빠진 공으로 보이는데,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니 확인 작업을 거친 것이다.
8회말에는 롯데 쪽에서 ABS 판정 관련 항의가 나왔다. 고승민 타석에서 5구째 바깥쪽 높은 코스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고승민은 앞선 타석에서도 볼 판정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스트라이크 콜로 삼진을 당하자마자 헬멧을 벗어 던지며 불만을 표출했다. 고승민은 바로 퇴장 조치됐고, 김태형 롯데 감독이 스트라이크가 맞는지 확인했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KBO는 올 시즌 ABS 시스템을 전격 도입해 스트라이크/볼 판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심판과 선수 사이에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려 노력했다. KBO가 ABS를 도입한 취지는 현장도 모두 공감하고 있고, 분명 장점이 있는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현장에서는 1군 도입 시기가 빨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선수들이 ABS 시스템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가운데 시즌을 치르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다 보니 시즌 초반 이런저런 불만의 목소리가 자주 나왔던 게 사실이다. KBO는 현장에서 ABS 관련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그래도 KBO가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가 한번씩 튀어나오고 있고, 현장의 신뢰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첫 시즌 진통을 겪고 있는 ABS 시스템. KBO는 자체 정확성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현장과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이어 가고 있으나 시즌 도중 반복되는 논란에 현장과 거리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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