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타이거 우즈가 제 이름을 불러주면 여전히 신기하고 설레요. 로리 매킬로이나 저스틴 토머스 같은 선수들은 자주 보니 이제 동료로 느껴지는데 우즈는 ‘아우라’가 달라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PO) 최종전 6년 연속 진출 등으로 이미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른 임성재(26·CJ)지만 우즈와의 만남은 늘 설렌다. 같은 투어를 뛰는 신분인데도 열성 팬이던 어릴 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최근 경기 성남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만난 임성재는 이번 시즌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로 ‘골프 황제’ 우즈와의 만남을 꼽았다. 그는 이달 초 우즈가 주최한 PGA 투어 이벤트 대회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서 우즈와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개하기도 했다. 임성재는 “우상이었던 그가 ‘성재’라고 먼저 이름을 불러줘 신기했다. 서로 허리를 휘감고 사진을 찍었는데 근육들이 느껴져서 '골프뿐 아니라 몸도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투어 통산 2승의 임성재는 꾸준함의 대명사다. 올해도 우승만 없었을 뿐 일곱 번의 톱10을 기록하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30명만 살아남아 출전하는 PO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는 2019년 데뷔 후 6년 연속 진출했다.
그럼에도 임성재는 만족보다 반성이 먼저라고 말했다. 시즌 초 겪었던 낯선 느낌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임성재는 초반에 “앞선 5년 동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할 만큼 슬럼프를 겪었다. 1월 개막전 더 센트리에서 PGA 투어 72홀 최다 버디 신기록(34개)을 세우며 공동 5위로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이후 약 3개월 간 부진에 빠졌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컷 탈락했고 페덱스컵 랭킹은 한때 52위까지 떨어졌다.
2020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준우승했던 마스터스에서는 올해 컷 탈락 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인데 ‘연습벌레’ 임성재는 그래도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는 “너무 열이 받으니까 연습으로 화를 풀었던 것이다. 숙소에 있으면 그게 더 답답할 것 같았다”고 했다.
잃어가던 감을 되찾은 데는 서브 스폰서 주최 대회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 우승이 계기가 됐다. 이어진 PGA 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공동 12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만들어내더니 시그니처 대회인 웰스파고 챔피언십에서 공동 4위에 올라 반등하면서 당당히 최종 상금 순위 10위(628만 6205달러)에 올랐다.
예년과 비교해 다사다난했던 이번 시즌에 대해 임성재는 “초반에는 너무 힘들어서 멘털을 잡을 수 없었다. 이후 퍼트의 루틴과 스트로크 스타일을 바꾼 뒤 한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그 힘으로 투어 챔피언십까지 좋은 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내년이면 PGA 투어로는 7년째이고 투어 프로로 10년 차가 된다. 평소 기록 달성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임성재도 “20년 동안 투어에서 활동하면 롱런했다고 하는데 벌써 반 이상 온 것이라 ‘진짜 오래 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차인 만큼 내년에는 올해보다 기복이 덜하고 꾸준한 성적을 올리고 싶다”고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골프 잘 치는 사람들이 모인 무대에서 뒤처지지 않고 입지를 굳힌 데는 습관의 힘도 있었다. ‘경기 전후 30분 땀내기’ 철칙이 그중 하나다. 임성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떨어질 유연성을 걱정해 3년 차부터 운동 루틴을 만들어서 잘 지키고 있다. 덕분에 몸이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운동 선수의 몸이라고 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래도 운동했다는 게 눈에 보인다. 루틴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임성재는 PGA 투어 통산 2989만 9508달러의 상금을 챙겨 3000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대회를 하다 보면 상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면 상금은 뒤따라오는 것이기에 성적을 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음 시즌 목표도 투어 챔피언십 출전이다. 29일 미국으로 출국해 개막전(1월 2일 더 센트리) 준비에 들어간 임성재는 “투어 챔피언십에 진출한다는 것은 1년을 잘해왔다는 증명과도 같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7년 연속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뤄 시즌 말에 꼭 웃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