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다. 이번 시즌 절대 1강의 면모를 보이는 현대캐피탈의 배구가 꼭 그렇다.
지난달 31일 열린 남녀부 경기를 끝으로 도드람 2024-2025 V-리그가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이번 시즌 남자부는 현대캐피탈(승점 46)이 압도적인 페이스로 우승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시즌 통합 4연패를 차지하며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예고한 대한항공(승점 36)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도 고민이 깊은 모양새다. 일시 대체 외인으로 맹활약한 막심 대신 결국 요스바니를 다시 불러들였고, 아시아쿼터까지 기존 아레프에서 일본 출신 리베로 료헤이로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대한항공의 이 같은 결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챔피언 결정전에 돌입했을 때, 요스바니의 득점력을 최대한 살려 현대캐피탈을 꺾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만큼 현대캐피탈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뚜껑은 까봐야 아는 것이고, 후반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선택이 묘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후반기에 돌입하더라도 현대캐피탈의 닥공 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강대강 작전에 돌입한 대한항공으로선 화력 싸움에서 현대캐피탈을 넘어서야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터.
현대캐피탈이 이번 시즌 전반기 동안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에 가까웠다. 일본 남자 대표팀을 오랜 시간 이끈 필립 블랑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현대캐피탈이 수비 위주의 짜임새 있는 배구로 나아갈 거란 시선이 지배적이었는데, 블랑 감독은 이를 기분 좋게 깨뜨렸다. 다수 구단이 일반적으로 팀의 공수 밸런스를 위해 공격형 아웃사이드 히터와 수비형 아웃사이드 히터 한 명씩을 배치하는 것과 달리, 수비 리스크를 안고 리그 최정상급 공격수인 레오와 허수봉을 나란히 기용한 것이다.
현대캐피탈의 레수봉 효과는 직관적인 수치로 나타났다. 현대캐피탈은 전반기 18경기를 치르는 동안 고작 2패에 그쳤다. 승률로 따지면 88.89%. 대한항공은 61.11%(11승7패)였다. 이 기간 현대캐피탈은 공격 지표에서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기록을 남겼다. 세트당 득점 1위(24.28점), 공격 성공률 1위(53.98%), 오픈 공격 성공률 1위(43.82%), 속공 성공률 2위(63.32%), 퀵오픈 성공률 1위(57.83%), 시간차 공격 성공률 1위(100%), 후위 공격 성공률 3위(56.79%), 세트당 서브 득점 1위(1.567개), 세트당 블로킹 득점 1위(2.612%). 사실상 모든 득점 관련 부문에서 최상위를 달린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화려한 공격 지표에 비해 현대캐피탈의 전반기 수비 지표는 엉망에 가깝다는 것이다. 배구에서 수비 지표라 함은 대개 리시브, 디그, 수비 3가지를 떠올리는데, 이 세 부문에서 현대캐피탈은 순위를 위보다 아래에서 찾는 것이 훨씬 빠르다. 리시브는 5위(효율 33.22%), 디그는 7위(세트당 9.567개), 수비는 6위(세트당 15.537개)다. 그마저도 이번 시즌 절정의 폼을 보이고 있는 리베로 박경민의 몫이 크다. 박경민의 개인 순위는 리시브 1위(효율 47.58%), 디그 2위(세트당 2.313개), 수비 3위(세트당 4.224개)다.
이런 저조한 수비 지표를 가지고도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이 무소불위의 철퇴를 휘두르는 것은 앞서 살핀 대로 극강의 공격력 덕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레오와 허수봉이 있다. 현대캐피탈의 세트 1위 기록(세트당 13.134개) 또한 세터 황승빈과 이준협의 역량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날카로운 결정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현대캐피탈의 화끈한 공격 배구에 팬들도 반응하고 있다. 이번 시즌 전반기 동안 남자부는 총 123,255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지난 시즌 같은 기간(109,709명) 대비 22.3%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이번 시즌 남자부 전반기 관중수 상위 5개 경기 모두 현대캐피탈의 경기였다. 블랑 감독은 과감히 레오와 허수봉의 공존을 택했고, 이들은 그의 대한 답례로 성적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팀에 안긴 셈이다.
현대캐피탈은 오는 7일 OK저축은행과 4라운드 첫 경기를 시작으로 후반기에 돌입한다. 현대캐피탈의 레수봉 효과가 시즌 내내 이어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_KO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