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상암벌(서울월드컵경기장의 애칭)에서 첫 출항에 나선 홍명보호는 안타깝게도 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전을 앞두고 양 팀을 소개할 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55)에게 야유가 쏟아지더니 경기 직전에는 관중석에서 비판의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경기장에 울려퍼진 “정몽규(대한축구협회장) 나가!”와 “홍명보 나가!” 등의 구호는 돌아선 팬심을 짐작하게 만든 또 다른 바로미터였다.
지난 7월 대한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빚어진 여파가 여전하다는 의미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홍 감독도 “(자신에게 야유가 쏟아지는) 그런 장면들이 쉽지는 않다”면서 “지금 상황에선 팬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 부분은 제가 앞으로 견뎌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다.
홍 감독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낙승이 예상됐던 팔레스타인전의 졸전이다. 홍 감독은 경기 내용과 결과라는 두 토끼를 잡고 팬심을 달래겠다는 구상이었는데, 답답한 경기력으로 90분을 보내면서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상대인 팔레스타인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의 약체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수 없는 상태라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실제로 경기가 끝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전반전 스코어와 최종 스코어를 알리는 대한축구협회 SNS의 게시물에는 8000개 남짓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 담겼다. 선수들의 활약상이 담긴 사진 게시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가 팬들에게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팬들과 마찰로 비춰진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민재는 ”그저 선수들을 응원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우리가 경기 시작부터 못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을 왜곡해 SNS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우리가) 못하길 바라시는 분들도 있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대표팀 공식 서포터인 ‘붉은악마’는 “붉은악마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선수들과 모든 순간들을 함께했고 어떠한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기를 바라고’ 응원하지 않았다”고 입장문을 밝혀야 했다.
축구계에선 돌아선 팬심이 지난해 전북 현대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K리그 1강으로 군림했던 전북은 갑작스러운 성적 부진으로 허병길 대표이사와 김상식 감독이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 팬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의 문구나 구호가 팔레스타인전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설위원은 “대표팀이 공정성 논란이 문제라면, 전북은 성적 부진이 문제였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면서도 “돌아선 팬심이 당장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은 똑같다. 오만전에서 당장 성적이 반등하더라도 지금과 다른 분위기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