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상암에서 열린 한국-팔레스타인전에서는 홍명보 감독, 정몽규 회장을 비난하고 야유하는 구호들이 끊이지 않았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홍 감독의 입장 선회, 일련의 사태들로 팬들의 신뢰를 잃은 축구협회에 대해 팬들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대한민국 축구팬이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였기에 팬들의 싸늘한 반응과 날선 야유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홍 감독은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가 앞으로 견뎌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 팔레스타인와 0-0으로 비겼다. 이강인의 몇차례 킬패스, 조현우의 수차례 선방 이외에 볼 게 별로 없었다. 거의 모든 선수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리그를 마친 뒤 귀국한 터라 시차 적응,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공수 전환도 느렸고 팀 플레이도 엉성했다. 나쁜 그라운드 컨디션은 양팀에게 모두 같다. 결국 선수들이 골을 못넣은 게 원인이다.
김민재는 팔레스타인전 직후 관중석으로 다가가 팬들에게 뭔가를 말했다. 그는 “못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워서 그랬다”며 “사실 우리가 시작부터 못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초반부터 팬들로부터 나온 야유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 발언이었다. 감독 등을 향한 규탄에 마음이 불편했냐는 질문에 “시작하기 전에 그런 게 들리니까 아쉬웠다”이라며 “물론 선수들이 잘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답했다.
감독, 협회를 향한 팬들의 비난과 야유도 관심이 있기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겼을 것이다. 홍 감독 체제에서 치른 첫 경기였기에 그간 짜증과 분노 속에 답답한 시간을 보낸 팬들의 거친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팬들의 이같은 행동은 존중받아야 한다. 동시에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의 발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수들은 환호를 받는데, 수장은 야유를 듣는다. 이런 장면을 아무런 감정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감독에 대한 야유를 선수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 선수들이 감독을 싫어할 때다.
“첫 경기에서 응원이 아닌 야유로 시작해서 매우 안타깝다. 우리는 100% 감독님을 믿고, 감독님을 따라야 하고, 감독님이 꼭 이기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팬들이 당연히 많이 아쉽고, 많이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꼭 더 많은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이강인>
“팬들이 생각하는 감독님이 있었겠지만 이미 결정됐고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 어렵지만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린다. 홈에서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적을 만들면 안 된다. 우리가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팬들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시고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 <손흥민>
선수들이 최소한 미디어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말에서는 홍 감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설사 감독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승리와 월드컵 출전권 획득에 모든 힘을 합해야 할 때가 아닐까.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보이며 승리하는 게 지상과제다.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뛰고 응원하는 게 팬들의 몫이다.
서포터스는 12번째 선수라고 말한다. 선수가 수장을 야유하고 비난한다면 팀이 잘 될 수 있을까. 감독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싫다면, 최소한 동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침묵을 지키는 게 ‘선수’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며 자세가 아닐까.
라커에서는, 미팅에서는, 훈련에서는, 사석에서는 어떤 말이라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최소한 경기에서는 삼가야 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 다음 우리 홈 경기는 10월15일 이라크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