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42·KIA)는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고 입단한 2017년부터 KIA의 4번 타자를 맡았다. KIA는 최형우를 영입해 오랜 거포 갈증을 씻으며 그해 바로 우승했다.
세월이 흘러 최고참이 된 최형우는 언젠가부터 계속 뒤로 물러나려고 한다. “내가 4번을 치고 있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없는 사람 취급해달라”고도 하지만 운명처럼 4번 타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에는 최형우의 짐을 덜어주고자 KIA는 나성범을 4번 타자로 구상하고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개막 직전 나성범이 다치면서 다시 최형우는 4번 타자로 출발했고, 타점왕 경쟁을 할 정도로 해결사 면모를 여전히 보여주었다. 물러나고 싶다고 말만 하고 떨쳐내지 못할 만큼 잘 치는 최형우의 마성에서 이범호 KIA 감독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나성범이 복귀한 뒤에도 이범호 감독은 타점 능력이 가장 좋은 최형우를 4번 타순에서 이동시키지 않았다.
2025년, KIA는 외국인 타자를 교체했다. 빅리그에서 88홈런을 친 패트릭 위즈덤을 영입해 외국인 타자를 거포형으로 오랜만에 바꿨다. 위즈덤이 제대로 터지기만 한다면 4번 타자로 안착하고 최형우는 4번타자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간단하지는 않아 보인다. KIA는 스프링캠프에서 위즈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뒤 결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38홈런을 때린 김도영이 3번 타순에 고정된다면 위즈덤, 최형우, 나성범을 놓고 4~6번 타순을 정하겠다는 구상이다. 최형우는 여전히 4번 타자 후보다.
이범호 KIA 감독은 15일 통화에서 “셋의 순서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는 스프링캠프에서 위즈덤의 모습을 확인해야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콘택트 능력을 가졌는지를 먼저 체크해봐야 한다. 위즈덤 뒤에는 좀 더 정확히 치는 타자를 둬야 할 것 같다. 위즈덤이 장타 유형이다보니 해결 못했을 때 그 다음 타자는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클러치 상황에서 타점 능력이 탁월한 최형우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는 못한다. 이범호 감독은 “최형우는 지명타자고, 가장 중요한 찬스에서 클러치 능력이 가장 좋은 타자다. 나이가 조금 있다고 해서 안 좋은 상황도 아니고 계속해서 타점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명타자를 계속한다면 4번에 있는 게 가장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고민”이라고 말했다.
거포형 외인 타자는 적응하기까지 실패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적응을 전제로, 콘택트 능력을 어느 정도만 갖고 있어도 매우 위력적인 4번 타자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캠프에서 타격하는 모습을 통해 먼저 확인해야 타순을 정할 수 있고, 위즈덤이 정확도에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최형우가 기존대로 4번 타자를 맡아 위즈덤 앞에 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득점왕 김도영이 올해도 앞에서 만들어낼 찬스를 살리는 데 있어서도 4번 타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다.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 뒤로는 정확하게 타점도 올리고 장타력도 가진 타자가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형우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통산 최다 타점 1위 최형우는 1983년생이지만 지난해에도 116경기에 나가 타율 0.280을 기록하며 22홈런을 치고 109타점 67득점을 올렸다. 타점 1위를 달리던 한여름에 내복사근이 손상돼 이탈하면서 개인 타이틀 도전에서는 물러났지만, 빠른 회복력으로 3주 만에 1군으로 복귀했고 돌아오자마자 홈런을 때리는 등 다시 맹타를 쳐 KIA를 안전한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형우는 오랜만에 괌으로 후배들과 개인훈련을 떠나 또 한 번 열정적으로 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타격 관련 최고령 타이틀을 전부 경신해가고 있지만 여전한 그 해결사 본능은 외국인 거포를 영입한 올해조차 4번 타자를 갈등하게 할 정도로 KIA의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