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FA 시장에서 냉정한 현실을 마주한 하주석(31)이 결국 백기 투항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 헐값 계약으로 남은 하주석은 직접 글로 쓴 메시지를 통해 팬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하주석은 지난 8일 한화와 1년 총액 1억1000만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옵션 2000만원을 제외한 보장액은 9000만원에 불과하다. 올겨울 FA 계약 체결한 선수 16명 중 유일한 1년 단년으로 계약 규모도 가장 작다.
아무리 하주석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도 너무 박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FA 시장은 너무나 냉정했다. 수요가 없고, 경쟁이 붙지 않은 매물의 가격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주석은 FA 이적시 25인 보호선수 외 보상선수가 따르는 B등급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다. 과감하게 FA 신청을 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한화가 사인&트레이드 길을 열어주며 적절한 카드를 기다렸지만 이 단계까지 넘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하주석은 백기 투항했다. 해를 넘겨 한화와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빠르게 계약을 완료했다. 줄다리기는 없었다. 1억1000만원이라는 헐값 수준의 계약서에 묵묵히 도장을 찍었다.
구단을 통해 하주석은 “신구장에서 한화 이글스 팬 여러분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겨울 내내 개인 운동으로 준비를 잘 해왔다. 책임감을 갖고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계약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하주석은 “팬 여러분 항상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라고 자필로 종이에 쓴 메시지를 들고 사진 한 장도 찍었다. 자신의 SNS에 이 사진을 올린 하주석은 “팬 여러분, 신구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곧 뵙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첫 FA 계약을 헐값에 했으니 마음이 쓰릴 법도 하지만 하주석은 팬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한때 한화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는 선수였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자주 숙였다. 2022년 6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덕아웃에 헬멧 투척하는 난폭 행위로 1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더니 그해 11월에는 음주운전에 적발돼 70경기 출장정지로 또 한 번 실망시켰다. 두 번의 사고 이후 복귀할 때마다 타석에서 헬멧을 벗어 팬들에게 사과했다.
최근에는 야구가 너무 안 됐다. 음주운전 징계에 따른 실전 공백으로 2023년을 망쳤고, 절치부심한 지난해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워낙 기대가 컸던 만큼 한화팬들의 실망감도 상당했고, 하주석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FA 계약 후 다시 한번 자필로 사과 메시지를 쓰며 진심을 표했다.
아쉬운 FA 계약이지만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야구 선수는 야구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FA 찬바람을 맞고 헐값 계약을 한 뒤 부활한 선수들이 꽤 많다. 2007년 현대 김수경(1년 5억원), 2008년 이재주(1년 8000만원), 2015년 SK 나주환(1+1년 5억5000만원), 넥센 이성열(2년 5억원), 2023년 NC 권희동(1년 1억2500만원) 등이 FA 계약 아쉬움을 딛고 부활에 성공했다.
물론 하주석이 처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올해 한화 주전 유격수는 심우준이다. 50억원을 들여 FA 영입한 선수를 안 쓸 수가 없다. 당장 하주석은 유격수를 비롯해 내야 백업 자리 경쟁을 해야 한다. 한화에선 3루, 2루뿐만 아니라 1루까지 커버해줄 자원으로 보고 있다. 하주석이 조금이라도 출장 기회를 늘리기 위해선 유격수뿐만 아니라 내야 전 포지션 커버할 각오로 해야 한다.
지난해 하주석은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64경기 타율 2할9푼2리(137타수 40안타) 1홈런 11타점 OPS .743을 기록했다. 스몰 샘플이지만 준수한 타격 성적이었다. 이런 생산력을 보여준다면 내야 백업을 넘어 고정 지명타자 자리를 궤찰 수도 있다. 나아가 시즌 중 유격수 펑크가 나는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시즌 후 열리는 2차 드래프트도 있다. 부활만 하면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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