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던 양상문 한화 투수 코치는 같은 시기 대만에서 열린 프리미어12 한국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봤다. 한화 선수로는 유일하게 태극마크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출전한 김서현(20)의 투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양 코치는 최근 스포츠경향과 통화하며 “시즌 때보다 더 마음을 졸이며 봤다”고 말했다.
양 코치는 투수 조련에 능한 베테랑 지도자다. 한동안 프로 현장을 떠나 있다 올시즌 후반기부터 한화 투수 코치로 합류했다. 현장 복귀 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양 코치는 선임 당시 “밖에서 볼 때 한화엔 잠재력 있는 투수가 많다고 느꼈다. 보여주지 못한 잠재력은 분명 터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서현은 양 코치가 눈여겨본 유망주 중 한 명이다. 2023 KBO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김서현은 최고 시속 160㎞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진다. 입단 당시 ‘특급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제구 난조로 프로 첫해 20경기 1세이브 평균자책 7.25에 그쳤다. 프로 2년 차였던 올해도 전반기까지 헤맸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이 바닥을 찍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과 양 코치의 믿음을 자양분 삼아 후반기부터 잠재력을 터트렸다. 전반기 퓨처스리그에서도 고전하던 김서현은 후반기 1군에서 필승조로 활약했다. 올해를 37경기 1승2패 10홀드 평균자책 3.76으로 마감했다. 김서현은 정규시즌 종료 후 인터뷰에서 “코치님은 늘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덕분에 좋지 않은 투구를 한 경기도 빨리 잊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양 코치는 “선수를 지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기술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정서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김서현을 처음 만났을 땐 기술적인 접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시즌 활약을 인정받아 대표팀에 승선한 김서현은 프리미어12에서 대만(1이닝), 일본(0.2이닝), 도미니카공화국(1.1이닝), 호주(1이닝)와 4경기에 등판해 4이닝 3안타 3사사구 4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이번 대회 대표팀 최다 등판이었다. 최일언 대표팀 투수 코치는 김서현의 성적은 물론, 더 던지고자 하는 자세를 높게 평가했다.
양 코치도 스무 살 젊은 투수의 열정을 가장 기특하게 여긴다. 그는 “모든 선수가 그렇지만, 특히 김서현은 정말 잘 던지고 싶어 한다. 너무 잘 하고 싶어서 가끔 오버하는 것도 있다”며 “잘 하고 싶어하니까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염원인 포스트시즌 진출에 내년 다시 도전한다. 김서현이 확실한 필승조로 자리 잡으면 올해 구원진 평균자책 5위(5.07)를 기록했던 한화 불펜도 더 단단해진다. 양 코치는 내년 김서현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올시즌과 국제대회를 치르며 힘을 빼고 투구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불리한 볼카운트 등 위기 상황에 몰려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이 김서현을 칭찬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김서현은 프리미어12 직전 쿠바와 평가전에서 메이저리거 요안 몬카다를 상대로 3B-0S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지만,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으며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류 감독은 당시 “3볼 뒤에 변화구로 잡아내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며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게 야구”라고 칭찬했다.
양 코치는 “힘을 빼고 던지는 느낌을 본인이 찾은 것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준비가 됐다는 의미”라며 “조금 흔들릴 때도 힘을 빼고 던지는 능력이 확실해지면 내년 성공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