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창환 기자] 전희철(51) 감독은 코트에서 냉철한 승부사지만 코트 밖에서는 자밀 워니(30, 199.8cm)를 “쩨이~”, “돼지야”라고 부르는 등 스스럼없이 대한다. 표지 촬영 도중에는 워니를 향해 입술을 쭈욱 내밀기도 했다. 워니도 그런 전희철 감독이 귀엽다는 듯(?) 배를 툭툭 치며 애정을 드러냈다. 코트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차고 넘쳤다.
서울 SK는 그렇게 롤러코스터 구간을 지나 단단한 다리를 만들고 있다. 점프볼 창간 25주년을 맞아 SK의 V4 그 이상을 꿈꾸며 의기투합한 전희철 감독, 워니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지난달 12일에 진행했습니다.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점프볼 표지 모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전희철 감독 점프볼에서 잘 챙겨준 것 같다(웃음). 25년 전 창간호 표지 촬영은 광화문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도 농구계에 오래 있었고, 점프볼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 개인적으로는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한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점프볼 창간호 표지 모델과 당시 포즈를 재현한 소감은?
자밀 워니 (창간호 표지를 보여주자)와우~ 지저스. 오래되긴 했다(웃음). 감독님은 한 팀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았고, 그 부분은 존중해야 한다. 감독님과 함께 25주년 기념호 촬영을 해서 특별한 시간이었다.
2019년에 처음 봤을 때 서로의 인상은?
자밀 워니 SK에 온 후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이었다. 문경은 전 감독님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감독님이 특히 노하우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희철 감독 처음에는 내성적이었고 말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다가가기 불편한 부분도 있었는데 애런 헤인즈가 적응하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 나도 헤인즈를 통해 말을 전달할 때도 있었다.
자밀 워니 내 기억이 맞다면 터리픽12가 열렸던 마카오에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때 자유투를 교정해 주셨다.
전희철 감독 맞다. 그때 쩨이 자유투 던질 때 손 모양을 보면 (자세를 따라하며)꼭 닭다리 같았다. 지금도 당시 슛 자세를 찍은 영상을 가지고 있다. 나 괜찮은 놈이니까 믿고 슛 폼 바꿔 달라고 했다(웃음).
수석코치 시절 전희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자밀 워니 전술,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였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을 신뢰하는 분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좋은 사이를 유지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를 믿어 주신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전희철 감독이 현역 시절 FIBA 아시아컵(당시 아시아선수권) MVP,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라는 것도 알고 있나?
자밀 워니 물론이다. 최근에 네이트 힉맨 코치와 당시 영상을 봤는데 운동능력도, 기량도 좋은 게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는 슛을 던지시더라(웃음).
전희철 감독 그때는 쏴도 됐어. 내가 워니랑 같이 뛰었으면 기가 막혔을 텐데…. (현역 시절 워니와 함께 했다면?)그런 슛 안 던졌을 것 같다(웃음). 어시스트가 많이 늘지 않았을까.
2020-2021시즌은 SK, 특히 워니에게 힘든 시즌이었다.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자밀 워니 나는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였다. 농구에 집중하지 못할 일이 많았고, 몸 관리도 안 됐다. 그래도 ‘이렇게 시즌을 치르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었던 시즌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할 수 있었고, 신뢰도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전희철 감독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선수들에게도 항상 얘기한다. 지더라도 그냥 지면 안 된다. 다음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안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버리는 하루를 보내면 안 된다. 쩨이가 2년 차까지 잘 나갔다면 3년 차부터는 어땠을지 또 모르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시즌이 쩨이에겐 얻은 게 많은 시즌이었다.
3점슛 시도가 급증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평균 1.2개를 던졌는데 이전 두 시즌은 0.3개 시도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자밀 워니 이전까지는 감독님이 3점슛 시도를 자제하라고 하셨다. 공격제한시간이 10초 이내일 때만 던지라고 하셨는데 점점 던질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만큼 신뢰를 보내주신다.
전희철 감독 그렇게 하라고 해도 지시를 듣는 외국선수는 많지 않다. 왜 나만 못 던지게 하냐는 외국선수가 대부분일 것이다. 첫 시즌에는 5초 미만일 때만 던지라고 했는데 조금씩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연습할 때 열 개 중 두세 개 들어가면 쏘라고 하겠나. 그랬다면 팀이 망가졌을 것이다. 연습할 때 슛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찬스 때 던져도 뭐라고 안 한다.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
슛 능력도 겸비했는데 유독 자유투 성공률은 떨어진다.
전희철 감독 이제 나랑 자유투 연습을 안 해서 그런가(웃음). 다른 능력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난 시즌(57.7%)이 특히 낮았지만, 올 시즌은 다른 부분에서 많이 채워주고 있다.
워니는 두 말할 나위 없는 KBL 최고의 외국선수다.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희철 감독 자기관리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것만 자기관리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국내선수보다도 많은 훈련량을 소화한다. 쉬는 날에도 웨이트 트레이닝, 개인훈련을 한다. 첫 시즌에는 조그마한 위스키도 가끔 마셨는데 내가 감독이 된 후에는 안 마신다. 이제 살빼라거나 어떤 운동을 하라는 얘기를 안 해도 될 정도다. 팀의 중심은 주장이 잡는 거지만, 외국선수가 해줘야 할 부분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얘기했었는데 잘 맡아주고 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래되면 익숙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도 편해지면 상대를 막 대할 수도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은 지켜야 한다. 쩨이는 그런 부분도 잘 지켜주고 있어서 올 시즌에는 개인적인 면담을 한 번도 안 했다. 무엇보다 내 얼굴만 보면 성질났는지, 기분 좋은지 다 아는 것 같다.
자밀 워니 당연하다. 다 티 난다(웃음).
자기관리 비법은?
자밀 워니 지난 시즌은 EASL(동아시아 슈퍼리그)까지 두 리그를 치르다 보니 몸을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한 시즌이 너무 바쁘게 지나갔다. 올 시즌은 KBL만 소화하면 되니까 개인훈련 할 시간도 그만큼 많다. 출전시간이 많고, 국내선수들도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될 때마다 개인훈련을 통해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신입 외국선수들처럼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된다. 내가 할 일만 신경 쓰면 된다.
훈련할 때 전희철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자밀 워니 워낙 준비를 잘하신다. 다른 신임 감독들은 첫 시즌부터 성적에 대한 부담이나 팀을 파악하는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텐데 감독님은 SK에 대해 다 알고 계신 상태에서 감독이 되셨다. 그래서 팀이 어떤 부분을 만들어야 하고, 선수들끼리 맞춰가야 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오르고 선수 관리도 잘 되는 것 같다. 대학은 4년만 있지 않나. 감독님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모신 감독님이다. 나로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워니는 조니 맥도웰과 함께 역대 최다 외국선수 MVP 기록(3회)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올 시즌에도 선정되면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전희철 감독 지금과 같은 경기력이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쩨이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주위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쩨이가 계속 빛나기 위해선 나도 잘해야 하고, 국내선수들도 기복 없는 농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상을 위해 뛰는 선수는 아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뛰는 것이고 상이라는 건 서로 상호 작용을 해야 따라오는 것이기도 하다. 국내선수 MVP도 마찬가지다. 쩨이가 잘해야 국내선수들 역시 기량이 발휘되는 것이고 팀도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숟가락을 얹을 수 있다(웃음).
워니는 선수 시절까지 통틀어 본 외국선수 가운데 최고의 외국선수인가?
전희철 감독 최고다. 나에겐 무조건 1순위다. 한 팀에서 여섯 시즌 연속으로 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헤인즈도 워낙 잘했지만 느낌이 다르다. 제일 큰 장점은 수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보통 공격력이 좋은 외국선수는 수비에서 지시하거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 그리고 골밑 장악력을 지닌 외국선수는 대부분 느리다. 분명한 방향성을 잡아줘야 하고 트랩, 변칙 수비 등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쩨이는 수비력까지 좋다. 이건 엄청난 이점이다. 선수 시절 최고의 외국선수로는 마르커스 힉스를 꼽고 싶다. 그 시절에는 막슛이라 불렀던 데니스 에드워즈도 기억에 남는다.
감독 부임 첫 시즌에 부상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이를 토대로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라운드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올 시즌은 어떤가?
전희철 감독 올 시즌의 키워드 역시 부상이었다. 지난 시즌은 에너지, 활동량이 떨어졌다. ‘노인즈’라 불리지 않았나(웃음). 시즌이 빨리 끝났기 때문에 훈련할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많았고, 감독이 된 후 처음으로 육성도 겸했다. 드릴을 비롯한 스킬 트레이닝에 다른 때보다도 많이 신경을 썼다. 모든 건 쩨이가 있기에 가능했다. 메인 외국선수가 바뀌었으면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외국선수 가운데 열 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많은 경기를 치른 만큼 웬만한 국내선수에 대해서는 파악이 됐을 텐데 KBL 베스트5를 꼽는다면?
자밀 워니 초이(최준용). 같은 팀일 때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갖고 있는 재능이 많다. 그래서 팀을 옮기자마자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러면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써니(김선형). KBL 최고의 포인트가드다. 나이가 많아도 언제든 20점 10어시스트를 할 수 있다. 몸 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기동력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전희철-SK 선수만 꼽는 건 아니지?) 이제 다른 팀 선수들이다(웃음). KC(송교창)는 KBL 2년 차 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선수인데 점점 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정현(소노). KBL의 미래이자 여전히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선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뛰어보고 싶다. (이정현이 FA가 될 때까지 KBL에서 뛰어야 할 텐데?) 그럼 너무 늙을 것 같다(웃음). 남은 한 자리는 나다.
예전 인터뷰에서 최준용을 한국의 데니스 로드맨이라고 표현했는데 최근 디온테 버튼(KCC)은 한국의 드레이먼드 그린이라고 했다. 그만큼 상대 팀일 땐 껄끄러워도 같은 팀이면 든든한 선수라는 의미일까?
자밀 워니 내가 존중하는 선수 가운데 1명이다. 모든 이들이 초이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질 순 없겠지만, 어느 팀에서든 주축을 맡을 수 있다. 득점, 리바운드, 패스 다 할 수 있는 선수다. 존중받을 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KBL에서 계속 뛴다면 언젠가 통산 최다득점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밀 워니 그것보단 당장 치러야 할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다. 내 역할은 팀에 승리를 안기고, 동료들의 기량 발전을 돕는 것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팀 내에 FA가 되는 선수가 많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국내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
2022년에 B.리그 팀으로부터도 영입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SK에 남았던 이유는?
자밀 워니 감독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전부다.
언젠가 SK나 전희철 감독을 상대팀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자밀 워니 무조건 이겨야 하지 않겠나.
전희철 감독 나는 어느 팀을 가더라도 쩨이를 데려가겠다(웃음).
외국선수가 영구결번된 사례는 없었다. 워니 정도의 커리어라면 영구결번도 가능할 것 같은데?
자밀 워니 영구결번은 특별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SK에서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농구에 집중하고 싶다.
전희철 감독 내 번호 옆에 쩨이의 번호가 달린다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긴 하다.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2021-2022시즌 초반 16경기(11승 5패)보다 올 시즌 성적(13승 3패)이 좋다. 무엇이 달라진 것 같나?
전희철 감독 쩨이가 그때보다 더 잘한다(웃음). 수비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달라지거나 나아진 건 없다. 아, 그때보다 욕을 더 먹는 것 같다. 쩨이 밖에 모른다고 하더라(웃음).
자밀 워니 그때는 써니 외에 초이, 허일영 등 기술자가 많았다. 올 시즌은 속공, 수비 등 팀 농구가 더 잘 이뤄지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A매치 휴식기 전후를 비교하면 수비적인 측면은 나태해진 부분이 보인다.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 팀도 언젠가 한 번은 무너질 것이다.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올라가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시즌 마무리가 안 좋았고, 뚜렷한 전력 보강도 없었다. 이로 인해 중위권으로 꼽는 시선이 많았던 게 동기부여가 됐을 것 같은데?
전희철 감독 중위권? 6, 7위라고 하더라. 나는 그래도 4, 5위는 된다고 우겼다(웃음). 지난 시즌은 EASL까지 치르느라 선수들이 많이 지쳤다. 6강에서 시즌을 마쳤지만, 우리 팀에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FA 영입이 많지 않았지만 팀을 정비할 시간도 주어졌다. 무엇보다도 (김)선형이, (오)세근이가 몸을 잘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전력 상승 요인이었다. 최소 15~20% 이상은 팀 전력이 좋아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잘 만들었다. 특별한 부상선수도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현재 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이 받쳐준다면 기량도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그래서 전술, 전략을 수정하는 것보다 첫 번째로 꼽았던 게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다음 요소는 더 빨라진 쩨이다. 개인훈련 열심히 했다는 걸 일본 전지훈련에서 확인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 경기력을 점점 끌어올렸다. 오프시즌에 전력 보강이 없었다고 해서 팀이 같은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방향성을 갖고 훈련하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 올 시즌은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SK 하면 항상 따라붙는 게 롤러코스터였다.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팀 최초의 네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도 높으니 꼬리표는 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희철 감독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선수가 많은 덕분이다. 특히 이번 호 주인공인 쩨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1옵션이 바뀌면 다른 조합을 맞추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국내선수 조합은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그 안에서도 중심은 튼튼하게 자리를 지켜줬다. 여기에 선형이를 비롯한 핵심 전력들이 잘 버텨주면서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까 얘기했듯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잡아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쩨이가 지난 시즌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을 텐데 올 시즌에 그 한을 풀겠다는 자세로 뛰고 있다. 그게 국내선수들에게도 전파가 된다. 실질적으로는 리더 역할도 많이 하고 있다.
속공이 팀컬러이긴 하지만, SK 하면 ‘재밌는 농구’를 하는 팀이라는 인식도 새겨져 있다. SK가 추구하는 농구, 팀의 기조는?
전희철 감독 미디어데이에서 얘기하지 않았나. ‘FUN’한 농구라고(웃음). 1라운드에 잘 이뤄졌는데 연승이 길어지면서 선수들이 착각한 부분도 있다. 시즌은 아직 1/3도 안 끝났다. 2/3 이상을 더 치러야 하는데 너무 빨리 도취된 것 같다. 2021-2022시즌 치를 때도 2라운드에 위기가 왔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풀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 팀이 잘 나가면 어떤 선수든 그런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은 꾸준히 해야 한다.
평균 출전시간(35분 6초)이 압도적 1위다. 워니를 제외하면 평균 30분 이상 뛴 외국선수도 없다.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결은?
자밀 워니 꾸준히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최고다. SK는 농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농구만 생각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고마운 존재는 아이재아 힉스다. 힉스 역시 훌륭한 선수인데 출전시간이 적다. 그럼에도 나에게 잘 맞춰주고, 개인훈련할 때 1대1도 자주 한다. 덕분에 나도 더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김선형은 여전히 20대 가드들과 경쟁하고 있지만,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베테랑이다. 안영준, 오재현도 올 시즌이 끝나면 FA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SK가 꾸준한 강팀이 되기 위해선 어떤 부분에서 팀의 기조를 다져야 할까?
전희철 감독 좋은 선수를 데려오면 된다(웃음). FA, 트레이드 등 선수 영입과 관련된 기조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팀의 문화가 중요하다. 선수들은 모르겠지만, SK에서만 21년 동안 일한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우리 팀은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코트에서의 경기력은 감독의 역량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생활, 훈련, 태도는 선수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SK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는데 자율 속에서도 규율을 지킨다. 그 안에서 단점을 찾아 보완하는 게 내 역할이다. 감독과 선수가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를 유지한다? 미국도 그렇게 못 한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는 선이 있어야 한다.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순 있겠지만 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고, 훈련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 팀은 쩨이도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훈련에 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연습체육관에 나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편하면서도 농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SK 하면 ‘선수들이 좋아하는 구단’이라는 인식이 있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는 팀 문화가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CBA(중국리그)도 경험했는데 KBL과 비교하면 경기력, 선수 대우 등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자밀 워니 CBA에서는 두 시즌을 치렀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경기력 측면에서만 얘기한다면 너무 공격만 강조한 기억이 있다. 반면, KBL은 선수가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팀에서 도와준다. 물론 팀 성적이 안 좋다 보면 외국선수 입장에서 개인기록만 챙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팀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 좋다.
KBL이 보다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경기력의 품질도 높이기 위해선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밀 워니 현재 KBL 팬덤은 팀보단 선수 개인에 몰려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 오기 전 오세근 때문에 안양을 좋아했을 것이고, 써니 때문에 SK를 좋아하는 팬도 많다. KT 하면 허훈이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선수도 중요하지만, 선수보단 팀을 좋아해야 한다. 팀을 좋아하는 팬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희철에게 워니란?
전희철 감독 손 하트. (이를 본 워니는 엄지척으로 화답했다)
워니에게 전희철이란?
자밀 워니 최고의 감독님이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최고다. 항상 선수들을 섬세하게 챙겨준다. 다른 팀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지면 서로를 탓하는 팀이 많은데 우리는 그러지 않도록 이끌어 주신다.
전희철 감독 쩨이, 너무 좋은 얘기만 한다!?
자밀 워니 같이 있으니까 긍정적인 얘기만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전희철 감독 나는 선수가 악의를 갖는 건 절대 못 참는다. 물론 농구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이기심은 생길 수밖에 없다. 내 가족, 내 팬들이 와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모든 선수들이 그 이기심을 조금씩이라도 표출하면 팀은 망가진다. 잘했을 때 박수 치는 게 팀워크가 아니다. 동료의 잘못된 행동을 이해하고, 그게 점점 심해지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게 팀워크다. 시기, 질투가 쌓인 팀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런 건 어디에서 나오느냐? 액션이다. ‘나한테 공을 안 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식의 액션 있지 않나. 나 때문에 온 가족들,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 부분이 보이면 충고해 주는 게 팀워크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다 안다. 한두 번은 그렇다 해도 계속 그러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교체다.
점프볼이 창간한 2000년 당시 28살이었다. 창간호 인터뷰를 보니 “10년 후에는 레스토랑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요식업을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전희철 감독 10년 후면 내 나이가 환갑인데…. 감독은 안 하고 있을 것 같다. 만약 10년 후에도 하고 있다면, 내가 너무 잘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웃음).
그렉 포포비치처럼 오랫동안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희철 감독 계속 감독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너무 힘든 일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쩨이가 그때까지 뛰고 있으면 나도 계속하겠다(웃음). 감독이든 다른 업무든 농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잠깐 사무국에서 일할 때 느낀 건데 내가 잘하는 일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스트레스를 즐길 순 없겠지만, 해소하기 위해 뭔가를 찾는 것도 행복 아니겠는가.
워니는 10년 후 뭘 하고 있을까?
자밀 워니 음…. 대학 감독을 맡고 있지 않을까.
전희철 감독 나 불러주면 안 돼?
자밀 워니 (단호하게)NO, NO.
새해 소망은?
전희철 감독 잘하고 있으니까 선수들이 안 다쳤으면 한다. 선수들도, 우리 가족들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려면 안 다치고 건강해야 한다. 좋은 성적은 안 다치면 따라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쩨이가 잘 생겨졌으면 좋겠다(웃음).
자밀 워니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경기를 하다 보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우리는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12명이 하나가 되는 농구를 했으면 한다. 그게 내 소망이다.
#사진_유용우 기자
서울 SK는 그렇게 롤러코스터 구간을 지나 단단한 다리를 만들고 있다. 점프볼 창간 25주년을 맞아 SK의 V4 그 이상을 꿈꾸며 의기투합한 전희철 감독, 워니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지난달 12일에 진행했습니다.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점프볼 표지 모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전희철 감독 점프볼에서 잘 챙겨준 것 같다(웃음). 25년 전 창간호 표지 촬영은 광화문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도 농구계에 오래 있었고, 점프볼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 개인적으로는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한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점프볼 창간호 표지 모델과 당시 포즈를 재현한 소감은?
자밀 워니 (창간호 표지를 보여주자)와우~ 지저스. 오래되긴 했다(웃음). 감독님은 한 팀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았고, 그 부분은 존중해야 한다. 감독님과 함께 25주년 기념호 촬영을 해서 특별한 시간이었다.
2019년에 처음 봤을 때 서로의 인상은?
자밀 워니 SK에 온 후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이었다. 문경은 전 감독님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감독님이 특히 노하우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희철 감독 처음에는 내성적이었고 말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다가가기 불편한 부분도 있었는데 애런 헤인즈가 적응하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 나도 헤인즈를 통해 말을 전달할 때도 있었다.
자밀 워니 내 기억이 맞다면 터리픽12가 열렸던 마카오에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때 자유투를 교정해 주셨다.
전희철 감독 맞다. 그때 쩨이 자유투 던질 때 손 모양을 보면 (자세를 따라하며)꼭 닭다리 같았다. 지금도 당시 슛 자세를 찍은 영상을 가지고 있다. 나 괜찮은 놈이니까 믿고 슛 폼 바꿔 달라고 했다(웃음).
수석코치 시절 전희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자밀 워니 전술,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였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을 신뢰하는 분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좋은 사이를 유지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를 믿어 주신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전희철 감독이 현역 시절 FIBA 아시아컵(당시 아시아선수권) MVP,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라는 것도 알고 있나?
자밀 워니 물론이다. 최근에 네이트 힉맨 코치와 당시 영상을 봤는데 운동능력도, 기량도 좋은 게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는 슛을 던지시더라(웃음).
전희철 감독 그때는 쏴도 됐어. 내가 워니랑 같이 뛰었으면 기가 막혔을 텐데…. (현역 시절 워니와 함께 했다면?)그런 슛 안 던졌을 것 같다(웃음). 어시스트가 많이 늘지 않았을까.
2020-2021시즌은 SK, 특히 워니에게 힘든 시즌이었다.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자밀 워니 나는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였다. 농구에 집중하지 못할 일이 많았고, 몸 관리도 안 됐다. 그래도 ‘이렇게 시즌을 치르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었던 시즌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할 수 있었고, 신뢰도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전희철 감독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선수들에게도 항상 얘기한다. 지더라도 그냥 지면 안 된다. 다음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안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버리는 하루를 보내면 안 된다. 쩨이가 2년 차까지 잘 나갔다면 3년 차부터는 어땠을지 또 모르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시즌이 쩨이에겐 얻은 게 많은 시즌이었다.
3점슛 시도가 급증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평균 1.2개를 던졌는데 이전 두 시즌은 0.3개 시도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자밀 워니 이전까지는 감독님이 3점슛 시도를 자제하라고 하셨다. 공격제한시간이 10초 이내일 때만 던지라고 하셨는데 점점 던질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만큼 신뢰를 보내주신다.
전희철 감독 그렇게 하라고 해도 지시를 듣는 외국선수는 많지 않다. 왜 나만 못 던지게 하냐는 외국선수가 대부분일 것이다. 첫 시즌에는 5초 미만일 때만 던지라고 했는데 조금씩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연습할 때 열 개 중 두세 개 들어가면 쏘라고 하겠나. 그랬다면 팀이 망가졌을 것이다. 연습할 때 슛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찬스 때 던져도 뭐라고 안 한다.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
슛 능력도 겸비했는데 유독 자유투 성공률은 떨어진다.
전희철 감독 이제 나랑 자유투 연습을 안 해서 그런가(웃음). 다른 능력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난 시즌(57.7%)이 특히 낮았지만, 올 시즌은 다른 부분에서 많이 채워주고 있다.
워니는 두 말할 나위 없는 KBL 최고의 외국선수다.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희철 감독 자기관리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것만 자기관리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국내선수보다도 많은 훈련량을 소화한다. 쉬는 날에도 웨이트 트레이닝, 개인훈련을 한다. 첫 시즌에는 조그마한 위스키도 가끔 마셨는데 내가 감독이 된 후에는 안 마신다. 이제 살빼라거나 어떤 운동을 하라는 얘기를 안 해도 될 정도다. 팀의 중심은 주장이 잡는 거지만, 외국선수가 해줘야 할 부분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얘기했었는데 잘 맡아주고 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래되면 익숙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도 편해지면 상대를 막 대할 수도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은 지켜야 한다. 쩨이는 그런 부분도 잘 지켜주고 있어서 올 시즌에는 개인적인 면담을 한 번도 안 했다. 무엇보다 내 얼굴만 보면 성질났는지, 기분 좋은지 다 아는 것 같다.
자밀 워니 당연하다. 다 티 난다(웃음).
자기관리 비법은?
자밀 워니 지난 시즌은 EASL(동아시아 슈퍼리그)까지 두 리그를 치르다 보니 몸을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한 시즌이 너무 바쁘게 지나갔다. 올 시즌은 KBL만 소화하면 되니까 개인훈련 할 시간도 그만큼 많다. 출전시간이 많고, 국내선수들도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될 때마다 개인훈련을 통해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신입 외국선수들처럼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된다. 내가 할 일만 신경 쓰면 된다.
훈련할 때 전희철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자밀 워니 워낙 준비를 잘하신다. 다른 신임 감독들은 첫 시즌부터 성적에 대한 부담이나 팀을 파악하는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텐데 감독님은 SK에 대해 다 알고 계신 상태에서 감독이 되셨다. 그래서 팀이 어떤 부분을 만들어야 하고, 선수들끼리 맞춰가야 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오르고 선수 관리도 잘 되는 것 같다. 대학은 4년만 있지 않나. 감독님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모신 감독님이다. 나로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워니는 조니 맥도웰과 함께 역대 최다 외국선수 MVP 기록(3회)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올 시즌에도 선정되면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전희철 감독 지금과 같은 경기력이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쩨이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주위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쩨이가 계속 빛나기 위해선 나도 잘해야 하고, 국내선수들도 기복 없는 농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상을 위해 뛰는 선수는 아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뛰는 것이고 상이라는 건 서로 상호 작용을 해야 따라오는 것이기도 하다. 국내선수 MVP도 마찬가지다. 쩨이가 잘해야 국내선수들 역시 기량이 발휘되는 것이고 팀도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숟가락을 얹을 수 있다(웃음).
워니는 선수 시절까지 통틀어 본 외국선수 가운데 최고의 외국선수인가?
전희철 감독 최고다. 나에겐 무조건 1순위다. 한 팀에서 여섯 시즌 연속으로 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헤인즈도 워낙 잘했지만 느낌이 다르다. 제일 큰 장점은 수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보통 공격력이 좋은 외국선수는 수비에서 지시하거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 그리고 골밑 장악력을 지닌 외국선수는 대부분 느리다. 분명한 방향성을 잡아줘야 하고 트랩, 변칙 수비 등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쩨이는 수비력까지 좋다. 이건 엄청난 이점이다. 선수 시절 최고의 외국선수로는 마르커스 힉스를 꼽고 싶다. 그 시절에는 막슛이라 불렀던 데니스 에드워즈도 기억에 남는다.
감독 부임 첫 시즌에 부상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이를 토대로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라운드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올 시즌은 어떤가?
전희철 감독 올 시즌의 키워드 역시 부상이었다. 지난 시즌은 에너지, 활동량이 떨어졌다. ‘노인즈’라 불리지 않았나(웃음). 시즌이 빨리 끝났기 때문에 훈련할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많았고, 감독이 된 후 처음으로 육성도 겸했다. 드릴을 비롯한 스킬 트레이닝에 다른 때보다도 많이 신경을 썼다. 모든 건 쩨이가 있기에 가능했다. 메인 외국선수가 바뀌었으면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외국선수 가운데 열 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많은 경기를 치른 만큼 웬만한 국내선수에 대해서는 파악이 됐을 텐데 KBL 베스트5를 꼽는다면?
자밀 워니 초이(최준용). 같은 팀일 때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갖고 있는 재능이 많다. 그래서 팀을 옮기자마자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러면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써니(김선형). KBL 최고의 포인트가드다. 나이가 많아도 언제든 20점 10어시스트를 할 수 있다. 몸 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기동력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전희철-SK 선수만 꼽는 건 아니지?) 이제 다른 팀 선수들이다(웃음). KC(송교창)는 KBL 2년 차 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선수인데 점점 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정현(소노). KBL의 미래이자 여전히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선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뛰어보고 싶다. (이정현이 FA가 될 때까지 KBL에서 뛰어야 할 텐데?) 그럼 너무 늙을 것 같다(웃음). 남은 한 자리는 나다.
예전 인터뷰에서 최준용을 한국의 데니스 로드맨이라고 표현했는데 최근 디온테 버튼(KCC)은 한국의 드레이먼드 그린이라고 했다. 그만큼 상대 팀일 땐 껄끄러워도 같은 팀이면 든든한 선수라는 의미일까?
자밀 워니 내가 존중하는 선수 가운데 1명이다. 모든 이들이 초이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질 순 없겠지만, 어느 팀에서든 주축을 맡을 수 있다. 득점, 리바운드, 패스 다 할 수 있는 선수다. 존중받을 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KBL에서 계속 뛴다면 언젠가 통산 최다득점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밀 워니 그것보단 당장 치러야 할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다. 내 역할은 팀에 승리를 안기고, 동료들의 기량 발전을 돕는 것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팀 내에 FA가 되는 선수가 많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국내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
2022년에 B.리그 팀으로부터도 영입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SK에 남았던 이유는?
자밀 워니 감독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전부다.
언젠가 SK나 전희철 감독을 상대팀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자밀 워니 무조건 이겨야 하지 않겠나.
전희철 감독 나는 어느 팀을 가더라도 쩨이를 데려가겠다(웃음).
외국선수가 영구결번된 사례는 없었다. 워니 정도의 커리어라면 영구결번도 가능할 것 같은데?
자밀 워니 영구결번은 특별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SK에서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농구에 집중하고 싶다.
전희철 감독 내 번호 옆에 쩨이의 번호가 달린다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긴 하다.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2021-2022시즌 초반 16경기(11승 5패)보다 올 시즌 성적(13승 3패)이 좋다. 무엇이 달라진 것 같나?
전희철 감독 쩨이가 그때보다 더 잘한다(웃음). 수비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달라지거나 나아진 건 없다. 아, 그때보다 욕을 더 먹는 것 같다. 쩨이 밖에 모른다고 하더라(웃음).
자밀 워니 그때는 써니 외에 초이, 허일영 등 기술자가 많았다. 올 시즌은 속공, 수비 등 팀 농구가 더 잘 이뤄지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A매치 휴식기 전후를 비교하면 수비적인 측면은 나태해진 부분이 보인다.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 팀도 언젠가 한 번은 무너질 것이다.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올라가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시즌 마무리가 안 좋았고, 뚜렷한 전력 보강도 없었다. 이로 인해 중위권으로 꼽는 시선이 많았던 게 동기부여가 됐을 것 같은데?
전희철 감독 중위권? 6, 7위라고 하더라. 나는 그래도 4, 5위는 된다고 우겼다(웃음). 지난 시즌은 EASL까지 치르느라 선수들이 많이 지쳤다. 6강에서 시즌을 마쳤지만, 우리 팀에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FA 영입이 많지 않았지만 팀을 정비할 시간도 주어졌다. 무엇보다도 (김)선형이, (오)세근이가 몸을 잘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전력 상승 요인이었다. 최소 15~20% 이상은 팀 전력이 좋아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잘 만들었다. 특별한 부상선수도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현재 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이 받쳐준다면 기량도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그래서 전술, 전략을 수정하는 것보다 첫 번째로 꼽았던 게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다음 요소는 더 빨라진 쩨이다. 개인훈련 열심히 했다는 걸 일본 전지훈련에서 확인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 경기력을 점점 끌어올렸다. 오프시즌에 전력 보강이 없었다고 해서 팀이 같은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방향성을 갖고 훈련하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 올 시즌은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SK 하면 항상 따라붙는 게 롤러코스터였다.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팀 최초의 네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도 높으니 꼬리표는 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희철 감독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선수가 많은 덕분이다. 특히 이번 호 주인공인 쩨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1옵션이 바뀌면 다른 조합을 맞추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국내선수 조합은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그 안에서도 중심은 튼튼하게 자리를 지켜줬다. 여기에 선형이를 비롯한 핵심 전력들이 잘 버텨주면서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까 얘기했듯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잡아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쩨이가 지난 시즌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을 텐데 올 시즌에 그 한을 풀겠다는 자세로 뛰고 있다. 그게 국내선수들에게도 전파가 된다. 실질적으로는 리더 역할도 많이 하고 있다.
속공이 팀컬러이긴 하지만, SK 하면 ‘재밌는 농구’를 하는 팀이라는 인식도 새겨져 있다. SK가 추구하는 농구, 팀의 기조는?
전희철 감독 미디어데이에서 얘기하지 않았나. ‘FUN’한 농구라고(웃음). 1라운드에 잘 이뤄졌는데 연승이 길어지면서 선수들이 착각한 부분도 있다. 시즌은 아직 1/3도 안 끝났다. 2/3 이상을 더 치러야 하는데 너무 빨리 도취된 것 같다. 2021-2022시즌 치를 때도 2라운드에 위기가 왔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풀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 팀이 잘 나가면 어떤 선수든 그런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은 꾸준히 해야 한다.
평균 출전시간(35분 6초)이 압도적 1위다. 워니를 제외하면 평균 30분 이상 뛴 외국선수도 없다.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결은?
자밀 워니 꾸준히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최고다. SK는 농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농구만 생각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고마운 존재는 아이재아 힉스다. 힉스 역시 훌륭한 선수인데 출전시간이 적다. 그럼에도 나에게 잘 맞춰주고, 개인훈련할 때 1대1도 자주 한다. 덕분에 나도 더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김선형은 여전히 20대 가드들과 경쟁하고 있지만,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베테랑이다. 안영준, 오재현도 올 시즌이 끝나면 FA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SK가 꾸준한 강팀이 되기 위해선 어떤 부분에서 팀의 기조를 다져야 할까?
전희철 감독 좋은 선수를 데려오면 된다(웃음). FA, 트레이드 등 선수 영입과 관련된 기조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팀의 문화가 중요하다. 선수들은 모르겠지만, SK에서만 21년 동안 일한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우리 팀은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코트에서의 경기력은 감독의 역량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생활, 훈련, 태도는 선수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SK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는데 자율 속에서도 규율을 지킨다. 그 안에서 단점을 찾아 보완하는 게 내 역할이다. 감독과 선수가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를 유지한다? 미국도 그렇게 못 한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는 선이 있어야 한다.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순 있겠지만 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고, 훈련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 팀은 쩨이도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훈련에 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연습체육관에 나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편하면서도 농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SK 하면 ‘선수들이 좋아하는 구단’이라는 인식이 있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는 팀 문화가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CBA(중국리그)도 경험했는데 KBL과 비교하면 경기력, 선수 대우 등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자밀 워니 CBA에서는 두 시즌을 치렀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경기력 측면에서만 얘기한다면 너무 공격만 강조한 기억이 있다. 반면, KBL은 선수가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팀에서 도와준다. 물론 팀 성적이 안 좋다 보면 외국선수 입장에서 개인기록만 챙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팀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 좋다.
KBL이 보다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경기력의 품질도 높이기 위해선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밀 워니 현재 KBL 팬덤은 팀보단 선수 개인에 몰려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 오기 전 오세근 때문에 안양을 좋아했을 것이고, 써니 때문에 SK를 좋아하는 팬도 많다. KT 하면 허훈이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선수도 중요하지만, 선수보단 팀을 좋아해야 한다. 팀을 좋아하는 팬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희철에게 워니란?
전희철 감독 손 하트. (이를 본 워니는 엄지척으로 화답했다)
워니에게 전희철이란?
자밀 워니 최고의 감독님이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최고다. 항상 선수들을 섬세하게 챙겨준다. 다른 팀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지면 서로를 탓하는 팀이 많은데 우리는 그러지 않도록 이끌어 주신다.
전희철 감독 쩨이, 너무 좋은 얘기만 한다!?
자밀 워니 같이 있으니까 긍정적인 얘기만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전희철 감독 나는 선수가 악의를 갖는 건 절대 못 참는다. 물론 농구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이기심은 생길 수밖에 없다. 내 가족, 내 팬들이 와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모든 선수들이 그 이기심을 조금씩이라도 표출하면 팀은 망가진다. 잘했을 때 박수 치는 게 팀워크가 아니다. 동료의 잘못된 행동을 이해하고, 그게 점점 심해지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게 팀워크다. 시기, 질투가 쌓인 팀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런 건 어디에서 나오느냐? 액션이다. ‘나한테 공을 안 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식의 액션 있지 않나. 나 때문에 온 가족들,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 부분이 보이면 충고해 주는 게 팀워크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다 안다. 한두 번은 그렇다 해도 계속 그러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교체다.
점프볼이 창간한 2000년 당시 28살이었다. 창간호 인터뷰를 보니 “10년 후에는 레스토랑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요식업을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전희철 감독 10년 후면 내 나이가 환갑인데…. 감독은 안 하고 있을 것 같다. 만약 10년 후에도 하고 있다면, 내가 너무 잘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웃음).
그렉 포포비치처럼 오랫동안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희철 감독 계속 감독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너무 힘든 일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쩨이가 그때까지 뛰고 있으면 나도 계속하겠다(웃음). 감독이든 다른 업무든 농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잠깐 사무국에서 일할 때 느낀 건데 내가 잘하는 일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스트레스를 즐길 순 없겠지만, 해소하기 위해 뭔가를 찾는 것도 행복 아니겠는가.
워니는 10년 후 뭘 하고 있을까?
자밀 워니 음…. 대학 감독을 맡고 있지 않을까.
전희철 감독 나 불러주면 안 돼?
자밀 워니 (단호하게)NO, NO.
새해 소망은?
전희철 감독 잘하고 있으니까 선수들이 안 다쳤으면 한다. 선수들도, 우리 가족들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려면 안 다치고 건강해야 한다. 좋은 성적은 안 다치면 따라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쩨이가 잘 생겨졌으면 좋겠다(웃음).
자밀 워니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경기를 하다 보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우리는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12명이 하나가 되는 농구를 했으면 한다. 그게 내 소망이다.
#사진_유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