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저평가를 딛고 올라선 비예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빛났던 작은 거인의 고군분투

입력
2024.11.27 21:10


인상적인 파트너를 만난 비예나가 패배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KB손해보험이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 우리카드에 1-3(25-17, 23-25, 23-25, 21-25)으로 패했다. 1세트를 깔끔하게 따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해냈지만, 2세트부터 달라진 상대의 라인업에 흔들리며 승점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패배에도 불구하고 빛난 선수가 있었다. 바로 KB손해보험 공격의 중심 안드레스 비예나(등록명 비예나)였다. 58.7%의 공격 성공률로 29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1세트부터 경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세트 플레이와 하이 볼을 가리지 않고 강타를 퍼부으며 날선 공격력을 과시했다. 72.73%의 공격 성공률로 9점을 터뜨린 비예나의 맹활약은 경기의 흐름을 휘어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2-17에서 나온 황택의와의 호흡은 가공할 위력을 드러냈다. 비예나가 수비 이후 빠르게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는 움직임을 취했고, 황택의의 빠르고 날카로운 연결이 사실상의 노 블록 상황을 만들자 비예나가 폭발적인 직선 강타로 코트에 공을 심어버렸다. 두 선수의 시너지가 극한에 달한 장면이었다.

2세트에도 황택의와 비예나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장면이 나왔다. 11-11에서 황택의의 강서브가 우리카드의 전열을 흩뜨려 놓았고, 왼쪽의 이강원이 무리한 3단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었다. 그렇게 넘어온 볼을 연결할 차례가 된 황택의는 이강원이 아직 정상적인 블로킹을 뜰 수 없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오른쪽의 비예나에게 노 블록 상황을 만들어줬고, 비예나는 군더더기 없는 공격으로 손쉽게 득점을 올렸다. 두 선수의 강점이 잘 어우러진 득점이었다. 



그러던 비예나는 3세트부터 폼이 올라온 우리카드의 블로커들에게 고전하면서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팀의 공격 시스템 자체가 좌-중-우 모든 곳에서 흔들린 탓에 아무리 비예나라 해도 한계가 명확했다. 초중반에 경기를 잘 풀었던 황택의가 급격히 흔들리면서 경기 운영의 갈피를 잡지 못한 탓도 있었다. 두 선수의 합과 시너지가 어느 상황에서나 무적이고 만능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경기 중반 이후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도 비예나는 투지를 불태웠다. 4세트 8-11에서 강력한 서브 득점과 백어택으로 추격의 고삐를 당겼고, 10-12에서는 특유의 유연함으로 흘러나가는 볼을 잡아채서 득점을 올렸다. 팀의 공격과 리시브가 모두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폭발적인 화력으로 홀로 제몫을 한 비예나는 14-15에서도 강력한 공격을 터뜨리며 기어코 동점을 이끌었다.

비예나의 ‘크레이지 모드’는 우리카드 블로커들을 왼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속공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까지 이르렀고, 사실상 비예나 한 명의 힘으로 KB손해보험은 4세트 내내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비예나도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점유율이 쏠렸고, 결국 20-21에서 김지한의 블로킹을 뚫지 못했다. 이후 분위기를 내준 KB손해보험은 결국 4세트까지 내주며 경기에서 패했다.

이 경기에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보면, 황택의와 비예나가 가진 강점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 황택의는 강력한 서브와 빠른 세트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이는 빠른 풋워크를 살린 반격 능력과 간결한 공격에 강점이 있는 비예나를 극한까지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또한 작은 신장으로 인해 사이드 블로킹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 비예나를 세터치고는 사이드 블로킹 능력이 좋은 황택의가 보완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비예나의 공격력은 황택의를 만난 뒤 상승궤도에 올라섰다. 황택의의 복귀 전 마지막 경기였던 1라운드 대한항공전에서 비예나의 공격 성공률은 45.45%였다. 그 다음 경기이자 황택의의 복귀전이었던 1라운드 한국전력전에서 비예나의 공격 성공률은 48.39%로 3% 가까이 올랐고, 이후 치른 세 경기에서 각각 53.13%-55.88%-62.86%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치솟았다. 이번 경기에서는 직전 경기의 성공률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공격력은 분명 훌륭했던 비예나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경기에서 패하며 조금 빛이 바랬지만, 그럼에도 비예나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인상적이었다. 황택의와 호흡을 맞춘 시간이 아직 그리 길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그야말로 패배로는 가려지지 않는 고군분투였다. 이제는 비예나의 뒤를 받쳐줄 수 있는 다른 쪽에서의 탄탄한 공격 옵션이 필요해진 KB손해보험이다.

비예나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저평가의 대상이 돼야 했다.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하며 많은 구슬을 보유했던 KB손해보험이 왜 새로운 외인을 찾지 않고 신장이 작은 비예나와의 재계약을 선택했냐는 팬들과 관계자들의 의문과 성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예나는 황택의라는 날개를 달고 난 뒤 맹활약을 이어가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신장이 작은 비예나가 코트 위에서 ‘작은 거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를 향한 의심과 저평가가 오히려 그가 딛고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그를 도와줄 동료들의 활약이 이제는 절실해졌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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