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 위탁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에서 꾸린 기존 선거운영위원회가 지난 10일 위원들의 총 사퇴로 사실상 해체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앙선관위 위탁 선거에 별다른 뜻을 표하지 않았던 정몽규 후보(현 대한축구협회장)가 뒤늦게 동의하면서 축구협회는 선거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됐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지금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애초에 선거 설계가 잘못된 것은 물론 법원으로부터 '불공정 선거', '불합리한 선거'라는 준엄한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허정무 후보의 주장을 법원이 사실상 그대로 수용했다.
허 후보는 지난달 30일 "선거운영위원회 구성이 불투명하고 일정 및 절차가 제대로 공고 안 된 점, 선거가 온라인 방식 없이 오프라인 직접 투표로만 이뤄져 동계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프로축구 지도자·선수들이 선거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데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미제출'을 이유로 규정(최대 194명)보다 21명이 적은 선거인단을 구성한 점 등을 들어 선거 관리가 불합리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 선거가 출발부터 잘못됐음을 조목조목 주장한 뒤 서울중앙지법에 회장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은 지난 7일 이를 수용했다. 8일 예정됐던 선거를 하루 전 금지하라고 판결했다.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누군가가 선거를 갖고 장난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원은 "선거의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고 그로 인해 선거 절차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만한 중대한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판단한 뒤 선거인단 대다수가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인되지 않는 추첨 절차를 통해 구성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거 관리·운영회 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아 위원회가 정관 및 선거관리 규정에 부합하게 구성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법원은 부연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법원은 세 명이 후보로 출마한 상황에서 선거인단에서 배제된 21명의 투표수는 적어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 결선투표에 올라갈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도 봤다. 선거 다시하라는 뜻이다.
대한축구협회 무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불공정'이란 단어까지 못박힐 정도로, 선거마저 엉터리로 치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작은 경기단체도 선거 하나 만큼은 엄정하게 치르는데 대한축구협회는 국내 최다예산 경기 단체의 명예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말았다.
여기에 허 후보의 주장이 맞다면 선거운영위 중 상당수가 정 후보의 특수관계자로 짜여졌다. 정 후보의 이번 4선 출마를 승인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정 후보가 총수로 있는 현대산업개발의 지난 2022년 광주 화정 아파트 충격적 붕괴 사고 때 변호인과 같은 로펌의 변호사 등이 선거운영위에 들어갔다. 허 후보의 "정몽규 호위무사"라는 단어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신문선 후보의 지적도 따끔했다. 신 후보는 법원의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뒤 대한축구협회가 선거에서 손을 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를 위탁해야 한다고 했다. 또 선거운영위 위원들의 총 사퇴 및 해산을 요청했다.
신 후보는 10일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순간부터 선거운영위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며 "선거운영위가 진행했던 것에 대한 절차적 흠결과 공정성 실종을 법원에서 인용한 상태에서 그 사람들이 다시 진행을 할까"라고 23일 선거를 다시 강행하려는 선거운영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몇 시간 뒤 선거운영위 위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 후보와 신 후보의 주장은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최소한의 기본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가 중앙선관위에 이번 선거 위탁할 것을 요청한 지 오래다.
언론도 나섰다. 엑스포츠뉴스가 가장 먼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탁 선거(2025년 1월8일 오전 5시24분 '망신' KFA, 회장선거 운영 자격 있나? …체육회선거처럼 중앙선관위 위탁해야 보도 참조)를 주장했다. 여론도 이를 따르면서 기존 선거운영위를 갖고 23일 선거 강행하려는 축구협회의 일방 통행을 비난했다.
이미 대한체육회가 중앙선관위에 이번 체육회장 선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인 대한유도회는 온라인 투표까지 도입하는 등 이미 유도회장 선거를 중앙선관위 주관 하에 잡음 없이 마쳤다.
선거는 승자를 가리는 것 만큼이나 패자가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선관위 위탁 선거는 축구협회장 선거의 공정성을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정 후보가 드디어 움직였다. 기존 선거운영위가 10일 해산한 뒤 중앙선관위 위탁 선거에 동의했다. 뒤늦은 결단이다. 만시지탄이라는 쓴소리를 들을 만하다. 기존 선거운영위 위원 총 사퇴 전에 중앙선관위 위탁 선거를 함께 주장했으면 명분도 살리고, 자신의 4선 도전도 더욱 떳떳해질 수 있었을 텐데 기회를 놓쳤다.
다만 지금이라도 동의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축구협회가 독립적이면서 자율적으로 공정한 선거를 치르면 가장 좋은 그림이지만 축구인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법원의 '불공정 선거' 판결을 목도했다.
일각에서 축구협회를 믿고 3명의 후보가 23일 선거에 응해야 한다고도 했지만 몰상식한 주장이다. 이런 난센스가 축구판에서 통하면 안 된다.
이제 선거다운 선거, 축구팬들과 국민이 신뢰할 만한 선거의 기반이 마련됐다.
허 후보와 신 후보는 "언제 하는가가 절대 중요하지 않다.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며 다시 한 번 축구협회의 중앙선관위 위탁 선거를 촉구했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 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