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0층에서 시작한 것 같은 데…”
프로축구 울산 HD 김판곤 감독(55)은 K리그1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1996년 겨울 고민 끝에 울산 유니폼을 벗었던 그가 선수로 지도자로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울산은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36라운드에서 루빅손과 주민규의 연속골에 힘입어 강원FC를 2-1로 눌렀다. 이로써 승점 68점을 쌓은 울산은 2위 강원과 승점차를 7점으로 벌리면서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리그 3연패에 성공했다.
울산은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성남FC의 전신인 성남 일화(1993~1995년·2001~2003년)와 전북 현대(2017년~2021년)에 이어 3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김 감독 개인에게는 1996년 선수로 울산의 첫 우승을 경험한 데 이어 사령탑으로 우승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김 감독은 취재진과 만나 “개인적으로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면서 “26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지하 10층에서 시작한 것 같다. 26년간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울산이 불러줬기에 이런 영광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울산이 기회를 줬다”고 표현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홍명보 전 감독이 지난 7월 축구대표팀으로 떠나면서 흔들리는 선수들을 껴안고 우승 경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당시 울산 2연패를 당하면서 순위도 올해 가장 낮은 4위로 추락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 감독은 “처음은 기대도 되고, 자신감도 있었다. 4위로 시작해 선두로 다시 올라서면서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무슨 선택을 내린 건가 후회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우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실망하는 팬들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늘 감독의 말을 신뢰하는 선수들이 큰 힘이 됐다. 오늘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 코칭스태프와 지원스태프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이날 우승의 원동력을 주변에 돌렸지만 오랜 기간 갈고 닦은 리더십과 축구 철학도 큰 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선 변방으로 취급받던 홍콩과 말레이시아에서 쌓은 내공은 K리그에서도 통했다. 김 감독 특유의 능동적인 축구로 경기 전체를 지배하면서 승리를 가져오는 전술이 시간이 흐를 수록 위력을 발휘했다. 공교롭게도 9월 13일 강원전 2-0 승리로 선두를 굳힌 뒤 재차 강원과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우승까지 결정짓게 됐다.
김 감독은 “사실 전임 감독이 팀을 워낙 잘 만들어놓지 않았느냐”면서 “성품이 훌륭하고, 직업 정신이 강한 선수들로 구성돼 손을 댈 부분이 많지 않았다. 전술에선 내 색깔로 가겠다고 결단한 게 조금 힘들었다. 다행히 선수들이 의심으로 시작해 확신을 가져준 게 큰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울산은 간절히 바라던 우승컵을 가져왔지만 아직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11월 30일 포항 스틸러스와 코리아컵 결승전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등이 남아있다. 또 내년 여름에는 32개팀으로 확대 개편되는 클럽 월드컵에 참가한다.
김 감독은 “내년 클럽 월드컵을 참가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됐다. ACLE도 중요했다. 앞으로 준비를 잘해야 한다. 구단도 참가에 만족하지 않으려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