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Made In Korea 철학이 뭐길래 '나'를 버렸나

입력
2024.07.11 11:50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홍명보호'가 설득력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MIK)' 철학에 걸맞는 축구를 확실히 입증해야한다.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자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 10일 오후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경기에서 광주FC에 0-1 패한 뒤 선임 첫 입장을 밝혔다.

홍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가장 큰 어려운 시기가 2014년 월드컵이 끝난 뒤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대표팀 감독에) 가고 싶지 않았다"며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10년이 좀 넘었다. 울산에서 3년 반 동안 좋은 시간도 있었다. 10년 전 국가대표 또는 축구인 홍명보의 삶의 무게를 그때 내려놓을 수 있어서 홀가분했다"며 운을 뗐다.홍명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팬들의 플래카드를 바라보고 있다 홍명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앞서 지난 8일 대한축구협회는 축구판에 반쯤은 예정된, 그러나 큰 충격파를 던졌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경질 후 5개월 간 비어있던 대표팀 감독자리에 홍명보 감독을 앉힌 것이다.

정해성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한 후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전권을 위임받았다. 이임생 이사는 외인 후보군이던 거스 포옛, 다비트 바그너 감독의 면접을 보겠다고 유럽으로 출국한 뒤 돌아와 지난 5일 홍명보 감독의 자택을 조용히 방문했다.

한국행에 대한 의지가 있던 외인 감독들을 팽개치고 K리그 팀을 맡은 현직 감독을, 그것도 시즌 중반에 빼가는 작태가 기어이 벌어졌다. 축구팬들은 큰 분노를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해당 감독은 그간 언론을 통해 매우 강경하게 "대표팀 감독에 가지 않겠다" "(대표팀 감독 내정설이) 불쾌하다"고 피력한 홍명보 감독이었다.박주호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여기에 같은 날 박주호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이 축구협회 내부의 빈약한 행정처리와 부진한 협상력, 일부 무능한 관계자들의 폐쇄적 사고방식 등을 모두 폭로하며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사건의 중심에 선 홍명보 감독은 선임 후 약 사흘 간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공식석상에서 입장을 밝혔다.

홍 감독은 이임생 이사와의 '심야 미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두세시간 정도 집 앞에서 기다린 이임생 이사를 뿌리칠 수 없었다"며 "이 이사가 말한건 MIK(Made In Korea)' 기술철학이었다. 협회가 MIK 기술철학을 발표할 때 충분히 내용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행정일을 하면서 그 일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고 덧붙였다.대한축구협회가 6월 26일 발표한 MIK 기술철학

홍 감독은 이 'MIK 철학'을 실행할만한 최적의 포지션을 국가대표 A대표팀 감독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결국은 이 고루한 '신토불이' 철학, 발전에 대한 의지와 학습조차 부재하면서 '우리다운 것'을 강조하는 악습이 이러한 사태를 만든 것이다. 붕 뜬 '글로벌 축구'에 대한 신념은 메아리가 돼서 흩어졌다.

MIK 기술철학은 지난 달 발표된 한국 축구의 방향성으로 당초 A대표팀 강화를 위해 연령별 대표팀 간 연계성, 연속성을 주입하기 위해 설정됐다. 그러나 이 MIK 기술철학 속 기조는 전부 사라지고 껍데기와 명목만 남았다. 끝내는 폐쇄성과 고리타분한 간판으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이는 전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천수가 개인 유튜브 채널 '리춘수'에서 밝힌 내용과도 맥이 닿는다. 이천수는 지난 달 25일 '외국인 감독 섭외를 계속 실패하는 이유'라는 영상을 통해 차기 감독이 국내 감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그가 언급한 것은 '한국적인 축구'였다. 그는 "지금 와서 한국적인 스타일을 얘기하고 있다. 몇년 전에 봤던 똑같은 패턴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는거다. 12명(외인 감독 후보)은 X구라고, (축구협회가) 한국 감독을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홍 감독 본인이 실현하고 싶은 'MIK 철학'에 대한 설득력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애초 이 철학과 본인이 하려는 축구의 맥이 같다는 것을 정확히 입증해야했다.

그리고 그것을 정식 면접으로서 증명하는 것이 선임에 있어 제대로 된 절차다.

그러나 이임생 이사는 "면접 대신 부탁을 했다"는 감정적인 발언을 앞세워 내용은 없이 '한국 축구에 대한 헌신'이라는 구시대 슬로건을 되풀이했다. 일반 직장으로 따지면 채용 비리에 가까운데 이를 당당하게 공표한 셈이다.

홍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긴 잠을 못 자면서 생각했는데 나는 나를 버렸다. 이제 나는 없다"며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그게 내가 우리 팬들에게 (대표팀에)가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마음을 바꾼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팬들은 "연봉도 엄청나게 받고 유럽 코치도 두 명이나 붙여주는데 누가 보면 무료봉사하는 줄 알 것" 등의 냉랭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편 홍명보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는 9월부터 열리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을 대비할 예정이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 캡틴 파추호 채널<저작권자 Copyright ⓒ MHNsports / MHN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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