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광주 김진성 기자] “우승청부사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KIA 타이거즈 외국인투수 에릭 라우어(29)가 메이저리그 36승 왼손투수다운 클래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라우어는 12일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서 6이닝 1피안타 9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KBO 데뷔 후 2승(2패)을 신고했다. 데뷔 후 6경기를 치르는 동안 가장 좋은 투구를 했다.
라우어는 150km대 포심에 커터가 주무기다. 처음엔 커터가 타자들에게 치기 좋은 높이로 들어가면서 피안타도 실점도 많았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지켜온 포심+커터 위주의 피치디자인을 완전히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5일 광주 한화 이글스전(6⅓이닝 5피안타 4탈삼진 1볼넷 3실점)부터 자기주도 볼배합을 했다. 직접 피치컴 송신기를 차고 포수 김태군에게 사인을 냈다. 김태군은 거의 라우어의 사인대로 움직였다. 롯데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2경기 연속 결과가 좋았으나 앞으로도 그럴 뜻을 밝혔다.
단순히 자기주도 볼배합이 변화를 이끈 건 아니다. 한화전부터 커터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졌다. 치기 좋은, 밋밋한 높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좌투수의 슬라이더나 커터는 우타자 몸쪽, 대각선으로 꽂힌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체인지업처럼 우타자 바깥으로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우타자에 대한 해법도 어느 정도 찾아가는 듯하다. 롯데 우타자들 역시 라우어의 슬라이더와 커터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라우어가 변화구 주무기로 주도권을 잡으니, 포심의 위력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는 투구판을 밟는 위치의 변화다. KBO 입성 초반에는 3루 쪽을 밟고 던졌으나 최근 가운데를 밟고 던진다. 슬라이더를 우타자 몸쪽으로 던진다고 치면, 대각선 궤적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변화. 라우어는 “투구판의 위치를 계속 바꿔가면서 제일 잘 던질 수 있는 위치를 찾았다. 웬만하면 가운데를 밟고 던지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 다음은 하이패스트볼의 적극 활용이다. ABS 시대에 타자들은 높은 코스의 공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투수들이 하이볼을 잘 던지는 건 그런 심리를 잘 활용하는 것일 수 있다. 타자가 높은 코스에 마냥 참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라우어는 “메이저리그에서 하이볼을 던지면 타자들이 수박처럼 보인다며 자신 있게 스윙한다. KBO는타자들이 낮은 코스의 공을 치려고 하다 보니 하이패스트볼을 셋업 피치로 사용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여전히 과거의 습관이 남아있는 타자들의 심리도 역이용하는 것이다.
KIA는 에이스 제임스 네일이 한국시리즈서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1~2선발은 네일과 양현종이 확실하다. 3선발도 라우어가 확정적이다. 선발투수로 경험이 많지 않은 김도현과 황동하를 라우어 앞으로 보내긴 어렵다. 다시 말해 라우어가 제 몫을 해줘야 KIA가 대권으로 가는 길이 수월해진다. 그런 점에서 KIA로선 최근 감을 잡은 듯한 라우어의 행보가 고무적이다.
라우어는 "우승청부사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