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그러니까, 모든 게 최유화가 벌인 일이었다.
지난 15일 막을 내린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극본 한아영, 연출 송연화, '이친자')는 연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딸을 의심하게 된 프로파일러 아버지 장태수(한석규)와 점점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가는 딸 장하빈(채원빈)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다. 촘촘한 웰메이드 스릴러의 진수라는 평과 함께 5.6%로 출발해 자체 최고 시청률인 9.6%로 막을 내렸다.
모든 등장인물과 시청자들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으로 몰아간 진범이 바로 최유화가 맡은 가출팸 숙소 집주인 김성희였다. 모든 의문이 마지막에야 풀렸다. 그제야 혼자 지고 있던 비밀의 짐을 내려놓은 최유화는 "혼자만의 마피아 게임을 6개월을 한 셈"이라며 "재밌게 보셨다는 반응이 가장 힘이 난다"고 미소지었다.
최유화는 10부작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 몰랐다면서 "배우들이 진심을 다해 연기한 게 보이고, 감독님 스태프도 정말 열심히 한 것이 보였다"며 "저희 현장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정성이 보이니 그 정성이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최유화는 김성희란 인물을 표현한 첫 지문부터 "욕심이 났다"고 회상했다. 지문은 이랬다. '화려한 얼굴인데 화장기가 없다. 가녀린 체구에 단아한 모습이다. 아기엄마지만 묘령이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라니, 최유화는 '그 겉모습은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모든 일의 범인이었다! 제작발표회도 나갈 수 없고, 엔딩 크레디트에도 저 뒤로 밀렸다. 심지어 범인이 누구인지는 대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동료에게까지 비밀이었다. 최유화는 괜찮았다. 맡고 싶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좋았으니까.
"감독님이 '이거 한석규 선배님도 안 알려줄 거니까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세요' 하니까, 그 무게감이 엄청났어요. 정말 지켜야 했어요. 처음엔 괜히 거짓말 하는 것 같고 난감했죠.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하면서 너무 열심히 추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타짜3' 무대인사를 지방까지 다니면서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 끝까지 안 걸렸거든요. 나름 잘 하는 것 같은데, 마피아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했어요. 제가 범인이라는 게 9부에서 나왔는데, 다들 '대박' 이러다가 '배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맑은 눈으로 어떻게 '아니야' 할 수가 있냐고요."
반년간 이어진 촬영 동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최유화는 이렇게까지 범인인 걸 숨겨야 하다니 싶어 송연화 감독에게 '계속 숨겨야 돼요? 어떻게 해요?' 하고 묻기도 했다. 감독이 웃으며 한 대답이 이랬다. '성희는 범인 아니잖아요.'
"아… 했죠. 그렇게 혼자만의 마피아 게임 6개월을 한 거예요. 쾌감이 있더라고요. 특히 사람들이 범인을 알고 놀랐을 때 쾌감이.(웃음) 시청자들이 너무 빨리 김성희가 범인인 걸 알아버리면 재미가 떨어질까봐 걱정이었는데, 같이 연기한 배우도 속았으니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데는 성공할 수 있겠다, 다행이다 했어요."
김성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단순히 여러 살인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가출팸에 숙소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정 많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출팸 리더 영민과 교사 준태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그 마음을 이용하는 의뭉스럽고도 오묘한 여자였다.
"마음을 잘 사는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의 약점을 알고, 본인조차도 속을 만큼 그 순간순간에는 진심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준태를 대할 때는 '나는 준태를 너무 사랑해' 하고 느껴질 정도로 대하고, 하지만 여러 수를 내다보는데 계획이 틀어지는 걸 싫어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살인 대상으로 삼아요. 그리고 도덕의 선이 다른 사람과 다른 인물이죠."
최유화는 "언젠가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말이 됐는데, 감독님이 성희는 영민과 준태에게 가스라이팅을 잘 하는 인물이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것이 세상 곳곳에 있겠구나, 성희라는 인물이 굉장히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구나 해서 더 소름끼치지 않았나 한다"고 설명했다.
초반엔 캐릭터 분석과 함께 살인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최유화는 "살인 장면 찍을 때보다 그때가 힘들었다. 몸이 면역력이 떨어져 쉬는 날엔 병원에 다녔다"면서 "나와 역을 좀 더 분리할 필요가 있겠다, 내 생각이 좀 더 확고해져야겠다 했다"고 털어놨다. 되려 살인 장면이 몰아친 막바지가 캐릭터가 명확해져 연기가 편했다고. 물론 고충도 있었다.
"송민아 살해 장면을 찍는데, 밤 12시가 넘어가면서 제 생일이 다가온 거예요. 결국 아침 7~8시에 목 조르는 장면을 찍었는데 '생일빵이 너무한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환경이 되는대로 찍어야 하니 어쩔 수 없죠. '아 나는 김성희로 존재해야 하는구나' 하고 촬영에 임했어요."
생생한 캐릭터를 위한 디테일도 한 몫을 했다. 최유화는 "한편으로는 매력적으로 그리고 싶다가도 그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의상이며 메이크업까지 신경을 썼다고 회상했다. 몇 장면은 감독이 의상 색깔까지 정해줬을 정도도 섬세하게 조율했다. 논의 끝에 최유와의 가녀린 목선과 손목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카디건에 A라인 고무줄 치마를 주로 입었는데, 편하지만 사이즈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기도 했다고. 최유화는 "제 눈엔 그게 보이는 씬이 있었다"면서 "그 뒤로는 빵을 줄였다"고 웃음지었다.
사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한 옷차림은 평소 최유화의 스타일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찍고 나니 평소 모습이 김성희처럼 보일까봐 신경을 쓴단다. 최유화는 "오늘은 눈썹을 그렸다"며 "너무 김성희로 다니면 사람들이 무서워할까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저는 계획을 안 잡고 사는 편이에요. 생일날 목 조르는 씬을 찍은 것처럼, 인생은 참 모르는 것 같아요. 배우란 선택받는 직업이다보니 습관처럼 앞날을 미리 생각 안 하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일희일비하지 말자 생각도 들고. 작품으로 선택받는 것보다 가족이라든지 나의 행복이라든지, 내게 중요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내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가볼까 생각이 듭니다."
계획은 없어도 바람은 있을 터. 최유화는 "제가 빈틈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인물을 하면 찰떡일 것 같다"면서 "가족, 휴먼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아, 화장품 광고도 찍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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