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섭 “대학시절 김승기 선배는 정말 괴물이었습니다”

입력
2023.10.04 18:18
수정
2023.10.04 18:58


“선수로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물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만 대단하고 현역시절에 대해 그저 그런 선수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 싶은데 절대 아닙니다. 중앙대 시절의 그는 연세대 이상민 선배의 라이벌로 손색이 없었고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에 특유의 리더십까지 앞세워 모교를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었죠. 돌격대장…, 맞아요. 딱 그런 이미지였어요”

이흥섭(51‧198cm) 원주 DB 사무국장에게 은퇴한 농구인 중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인물로 누가 떠오르냐고 묻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김승기(51‧182cm)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감독을 언급했다.

“프로 무대서도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아마 시절의 활약상을 보면 그 정도에서 그친게 아깝다고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선배가 한창 활약했던 1990년대 초중반에는 농구 인기가 엄청났잖아요. 쟁쟁한 가드들도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타 대학교 선배지만 진짜 잘한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거든요”

이 사무국장의 언급처럼 ‘김승기 감독이 현역 시절 그정도?’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말처럼 리그에서의 그는 잘하기는 했으나 주전보다는 식스맨이 더 익숙했고 통산 커리어 역시 두텁지 못하다.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커리어하이 시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학교때 주로 불리던 ‘터보가드’라는 별명은 괜스레 붙여진게 아니다. 그만큼 에너지레벨이 높고 활동량이 풍부했기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용산고 3학년 때 4관왕(춘계연맹전, 대통령기, 쌍용기, 전국체전)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고교농구를 석권하다시피 했던 그는 1990 FIBA ASIA U-18 대표팀에서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중앙대에 입학에서도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수비와 속공의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당시 많은 이들은 연세대 이상민과 더불어 김승기를 대학 최고의 1번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93~94 농구대잔치 8강에서는 6연속 우승을 노리던 최강 기아자동차를 꺾고 4강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기범, 김유택, 허재, 강동희의 시대, 조우현, 송영진, 김주성, 황진원, 임재현, 신동한의 시대, 강병현, 윤호영, 박성진, 김선형, 오세근의 시대 등 전통의 강호답게 중앙대는 시기별로 최강의 시절이 있었다. 김승기가 이끌던 중앙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김훈, 서장훈의 연세대와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양희승, 신기성의 고려대가 양강체제로 대학 무대를 양분했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당시의 중앙대는 누구도 쉽게 볼 수 없었다. 야전사령관 김승기와 김영만, 양경민 쌍포를 필두로 홍사붕, 김희선, 조동기 등이 끈끈한 조직력을 선보이며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업최강 기아자동차를 8강에서 탈락시킨 것을 비롯 연세대, 고려대와의 승부에서도 종종 발목을 잡아냈다. ‘최강은 아니지만 어떤 팀도 잡아낼 수 있는 저력 있는 복병이다’는 것이 당시 중앙대에 대한 평가다.



김승기는 듀얼가드였다. 넓은 시야와 정교한 패스로 팀 전체를 지휘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자신이 용맹하게 적진으로 쳐들어가 길을 뚫어내고 빈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스타일은 각광받지 못했다. 강동희, 이상민처럼 패싱게임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유형이 진짜 포인트가드다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선수 김승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빠른 1번은 많아요. 김승기 선배 역시 무척 빨랐습니다. 거기에 더해 파워가 정말 좋았는데 가드 중에는 대적할 상대가 있었을까 싶어요. 어지간한 포워드에게도 힘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선수가 적극적인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는지라 맨 앞선에서 밀착수비를 들어가면 상대편 가드는 드리블을 치면서 몇 걸음 전진하는 것 조차 정말 버거웠어요. 매치업했던 상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만큼이나 빠른 상대가 고목 나무처럼 앞을 지키고 있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비단 이 사무국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김승기의 힘은 유명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최고의 장사로 소문났던 현주엽과 씨름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현주엽이 195cm의 거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김승기의 위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김승기에 더해 홍사붕, 김희선 또한 날렵하고 손질이 좋은 가드들이었던지라 중앙대 앞선 수비는 상대 입장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승기같이 플레이 스타일이 확실한 선수는 팀이나 지도자와의 궁합이 중요하다. 그가 팀복, 지도자 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겠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뛰고 달리는 유형의 팀에서 처음부터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나왔던 말이다.

프로에서의 김승기가 가장 돋보였던 부분중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였다. 보통 승패가 결정되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최선을 다하던 선수들 조차 어느 정도 페이스를 내려놓기 일쑤다. 김승기는 달랐다. 종료 공이 울리기 전까지 이를 악물고 뛰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 소속으로 뛰었던 기아자동차와의 농구대잔치 결승전이 대표적이다.

허재의 대활약으로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자 막판 삼성 선수들은 고개를 떨구며 코트를 걸어다니다시피 했다. 하지만 김승기는 마치 접전을 벌이고 있는 듯 에너지 넘치는 돌파를 연신 시도했고 외곽슛을 던졌다. 수비시에도 진지하게 임했다. 프로에서도 그런 모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번은 가비지타임에서 연신 스틸과 3점슛을 성공시키자 상대편 감독이 화들짝 놀라서 불러들였던 주전들을 다시 코트에 내보내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자신만의 색깔을 앞세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타고난 리더 김승기, 지도자로서도 명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는 다음 시즌 새로운 팀 소노와 함께 신선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 김승기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81경기 출전 평균 6득점, 1.6리바운드, 2.6어시스트, 0.9스틸

◆ 김승기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6경기 출전 평균 6득점, 2.2리바운드, 1어시스트, 0.5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1년 12월 18일 서울 삼성전 = 26득점 / 3점슛 성공 ☞ 2001년 12월 23일 서울 SK전 = 7개 / 어시스트 ☞ 2002년 2월 27일 대구 동양전 = 10개 / 리바운드 ☞ 2001년 11월 27일 창원 LG전 = 10개 / 스틸 ☞ 1998년 11월 17일 대전 현대전 = 6개​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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