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한 코트' 서는 꿈, 은퇴식서 이뤘다…"엄마 그동안 수고 많았어" [IS 인터뷰]

입력
2024.11.11 06:04
수정
2024.11.11 06:04
10일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오른쪽)과 그의 딸 김보민 양(왼쪽). 장충=윤승재 기자


"엄마, 그동안 수고 많았어."


"딸,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되길 바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은 모녀는 서로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친구처럼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지만, 특별한 순간인 만큼 선뜻 입이 잘 떨어지지는 않았다. 모녀는 짧지만 굵직한 한 마디로 서로를 격려했다. 

베테랑 미들 블로커 정대영(43)이 20년 가까이 몸담은 코트를 떠났다. 2005년 프로 출범 후부터 19시즌 동안 프로 코트를 누빈 정대영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 지난 10일 친정팀 GS 칼텍스의 홈 구장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열고 유니폼을 벗었다. 자신이 두 차례 우승(2007~08, 2013~14시즌)을 이끌었던 GS와 2017~18시즌과 2022~23시즌 두 번의 우승을 견인했던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뜻깊은 은퇴식을 가졌다. 

정대영은 "43세까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배구를 했다. 감사하다"며 "주변에서 (은퇴하는 것이) 서운하지 않냐고 했지만, 충분히 오래했다. 은퇴를 결정한 데에 후회는 없다. 은퇴 후 (딸과 함께 하는) 삶이 너무 행복해서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다"라며 웃었다. 

10일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 KOVO 제공


이날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은 딸 김보민 양과 함께 코트에 섰다. 김보민(14) 양도 배구 꿈나무로 제천여중에서 프로 선수의 꿈을 꾸고 있다. 정대영이 때린 시구를 반대쪽 코트에서 김보민 양이 받아내면서 엄마의 뜻깊은 은퇴식을 함께 했다. 

정대영은 이전부터 딸과 함께 한 코트에 서는 걸 꿈꿔왔다. 딸이 아직 중학교 2학년이라 쉽지는 않아 보였지만, 정대영은 '엄마 선수'와 '워킹맘'이라는 책임감을 안고 꿈을 이어 왔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면서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대영은 이날 딸과 함께 한 코트에 선 것만으로 감사하고 감회가 남달랐다고 전했다. 

김보민 양은 "엄마와 같이 한 코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같은 팀으로) 뛰면 기분 좋을 거 같은데 상대 팀으로 만나면 곤란할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엄마는 언니나 친구 같은 존재다. 잘 통한다"라면서도 "내 롤모델이다. 엄마를 보고 배울 점도 많고, 엄마처럼 배구를 오래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10일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오른쪽)과 그의 딸 김보민 양(왼쪽). KOVO 제공
10일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오른쪽)과 그의 딸 김보민 양(왼쪽). KOVO 제공


김보민 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다. 또래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다. 엄마 정대영은 "딸이 다른 친구들과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아 대견하다. 우리 때와는 달리 공부까지 병행해야 하는데 대단하다. '얘도 나를 닮아서 독한 면이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길인데 잘 따라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은퇴가 아쉬운 유일한 이유가 딸이었지만, 은퇴가 후련한 것도 딸 때문이었다. "은퇴를 고민할 때 딸과 함께 못 뛴다는 게 가장 아쉬웠다"고 한 정대영은 "선수 때는 주말에만 딸을 봤는데, 이젠 항상 집에 같이 있고 여행도 많이 다닌다. 같이 훈련도 하고 체력 운동도 한다.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다"라며 웃었다. 

10일 은퇴식을 가진 정대영과 GS칼텍스 선수들. KOVO 제공


정대영은 출산 및 육아로 은퇴를 고민하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당부의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 선수의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나도 구단에서 도움을 많이 줘서 가능했다"며 "그래도 나처럼 많은 선수가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이런 선수들이 많아져야 좋은 선수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장충=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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