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도시 충남 예산군 오가면에 자리한 오가초등학교. 전교생이 50명도 되지 않지만 1982년부터 이어진 배구 명맥은 아직도 끊기지 않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인 전국소년체육대회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작 6명이 교체 선수도 없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런데 어째선지 5학년 김민겸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올해가 마지막이면 어떡하죠? 배구를 더 하고 싶은데…”
“기적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최근 초등 배구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팀을 꼽자면 단연 오가초다. 이 학교는 전교생 숫자가 50명도 되지 않는다. 6명을 모으는 것부터가 일이다. 간신히 모집하더라도 한 해가 지나면 졸업생이 빠져나간 자리를 다시 채워야 한다. 기존 부원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꿰차는 다른 곳과는 달리 오가초는 이게 일상이다. 매년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회만 참가했다 하면 시상대를 밟는다. 특히 지난 5월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남자 초등부 동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6명에서 교체도 없이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을 낸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 작은 학교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건지. 그 답을 찾아 <더스파이크>는 9월 11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오가초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논밭을 지나다니는 트랙터, 그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조금은 허름한 듯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 시골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기분 좋은 정취를 느끼며 체육관 문을 열자마자 장효실 감독이 따스한 인사를 건넸다. 여느 학교가 그렇듯 이곳도 벽면에 팀 성적을 자랑하는 현수막이 빼곡했다. 다만 2018년 이전 것은 없었다. 장 감독이 처음 오가초 지휘봉을 잡은 시기(같은 해 8월)와 맞물린다. “제가 오가초에 와서 처음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게 2022년이에요. 제3회 단양소백산기 전국초등학교 배구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거뒀어요. 창단 이래 첫 전국대회 입상이라고 하더라고요”라는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1982년 창단한 오가초 배구부는 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중 장 감독이 남긴 발자취는 6, 7년 남짓이다. 더구나 과거 이 학교는 천 명 넘는 학생을 보유했는데, 지금은 겨우 40명을 넘는다. 그럼에도 매해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고 있다. 많은 언론이 ‘오가초의 기적’이라며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장 감독은 “저희는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손을 젓는다. “결과만 보면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근데 기적이라는 게 계속 반복되면 결국 기적이 아닌 거잖아요. 다들 관심 가져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단 한 분도 과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오가초만의 배구가 어떤 건지 누군가 주목해 주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가초만의 배구를 찾아서
현재 오가초 배구부는 6학년 조지항·최장산·김태웅·최명국·이은빈, 5학년 김민겸, 4학년 최용락 등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을 이끄는 장 감독은 선수 출신 지도자다. 추계초-중앙여중-중앙여고를 거쳐 1990년대 실업 배구 시절 미도파, 효성 등에서 뛰었다. 이후 조금은 이른 나이인 20대 초중반에 은퇴한 뒤 한동안 육아에 전념했다. 둘째 아들 장하랑도 남자 프로배구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크자 장 감독은 못다 이룬 배구의 꿈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무작정 지도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생활체육인들을 가르치다 2018년 오가초 지휘봉을 잡으면서 엘리트 배구판에 입성했다.
장 감독은 처음 오가초에 부임하던 때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6명도 안 됐어요. 5명밖에 없어서 인원수를 채우는 것부터가 일이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러다 어찌어찌 간신히 사람은 꾸렸는데, 그래도 막막하더라고요. 아이들이 한 번도 배구를 제대로 배운 적 없다 보니 갈 길이 정말 멀었어요. 게다가 다들 일로 오라고 하면 절로 가버릴 만큼 흡수력도 많이 낮았고요.” 그렇게 나간 첫 대회는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처참했죠. 부모님들도 부끄러워서 아예 숨어버리셨어요. 웃기면서 슬픈 얘기죠. 지금이야 시간이 지나서 장난처럼 얘기하지만 그땐 정말 아찔했어요.” 얘기하는 동안 장 감독 이마에 주름이 그새 는 듯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체구도 작다 보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더라고요. 코트에서 하나 된 모습이 저희의 유일한 살길이었어요”라는 장 감독의 지도 방식은 이날 훈련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자체 경기에서 최장산이 득점을 냈는데, 동료인 최용락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옆에서 형이 득점을 올리면 같이 소리도 지르면서 환호해야지 용락이 너는 왜 가만히 있어.” 장 감독의 따끔한 지적에 최용락은 늦게나마 두 팔 벌려 코트를 뛰어다녔다. 머쓱한 듯 장 감독은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대회 때 저희 아이들이 1점만 내도 코트를 막 뛰어다니니까 항의가 들어온 거죠. 그래도 어떡해요. 저희는 끈끈함과 분위기로 승부를 보는 팀인데. 그냥 계속하라고 했죠”라며 웃었다.
사소한 습관은 팀을 크게 바꿔놨다. 주장 조지항도 느끼는 게 많다. “이번 소년체전 때 8강에서 주안초를 만났어요. 전국구 팀이고, 키도 저희보다 훨씬 커요. 6명 다 170cm가 넘는 걸로 알아요. 근데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오히려 코트에서 저희가 소리도 지르고 하니까 걔네 기가 죽은 것 같았어요. 결국 저희가 이겼죠.” 최장산과 김태웅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키는 작아도 코트 안에서 존재감은 다른 팀보다 더 커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른 거 같아요. 단순히 상대가 무섭지 않다거나 지고 싶지 않다는 정도가 아니에요. 항상 꼭 이겨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경기에 임해요.”
장 감독은 “저희뿐만 아니라 상대 팀도 초등학생이다 보니 분명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어느 팀이든 경기에서 한 번 무너지면 끝도 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유소년 배구는 기세 싸움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그렇기에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사기를 끌어 올리는 연습을 시키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손을 내밀지 않는 순간, 마법은 깨지는 거예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오가초만의 진정한 마법은 따로 있다. 이날 이은빈은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몇 번이고 장 감독에게 지적받았다. 그러다 한 번은 공을 살려내기 위해 몸을 날렸는데, 결국 받아내지 못했다. 장 감독의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연히 이은빈을 혼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동료가 넘어져 있으면 손을 잡아서 일으켜 줘야지 명국아”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은빈에게는 질책 대신 “잘했어. 그렇게 하면 돼”라는 칭찬이 날아들었다.
장 감독은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기르는 존재라고 소개했다. 선수가 아니라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자식이 세 명 있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인성만큼은 훌륭한 사람으로 키웠다고 자부해요”라는 장 감독은 오가초 제자들에게 첫째도 인성, 둘째도 인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기는 배구? 좋죠. 근데 눈앞에 보이는 승리만 좇다 보면 다른 걸 놓쳐요. 더불어 사는 사회잖아요. 옆에 넘어져 있는 동료에게 남 탓이 아닌, 다시 일으켜 주는 사람이 돼야죠. 우리 아이들은 저한테서 그런 걸 배우고 있는 거고요”라면서 “멀리 보면 이거야말로 이기는 배구가 아닐까요. 제가 선수 때부터 항상 느낀 게, 배구는 정말 어려워요.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도 없어서 더 답답해요. 반대로 한 명 한 명의 기량은 떨어져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하나가 된다면 이길 수 있어요. 바로 거기에 오가초가 지향하는 배구가 있는 거죠. 옆에 넘어져 있는 동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순간, 우리의 마법은 깨지는 거예요”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팀원들을 지금처럼 완전한 하나로 묶기는 부족하다. 분명 뭔가 다른 비결이 있다. 김태웅과 몇 마디 나눈 끝에 답을 찾았다. “저희는 동료라기보다는 친구죠. 완전 친해요. 방학만 되면 감독님, 부모님들이랑 다 같이 바다도 가고 캠핑도 가고 그래요. 이번 여름 방학에도 캠핑을 다녀왔는데요, 가재 잡고 놀았던 게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른 곳은 절대 저희만큼 이렇게 자주 놀러 다니지 않아요.” 방학 동안 친구들과 쌓은 추억은 인터뷰 내내 말이 없던 김태웅도 수다스럽게 만들었다. 코트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가초 배구부를 더욱 끈끈하게 모으고 있다.
장 감독은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부모님들까지 다 같이 자주 놀러 다니곤 해요. 개인적으로는 캠핑하면서 마시멜로를 구워 먹은 거, 학교에서 아이들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은 추억이 많이 생각나네요. 이번 여름에만 바다랑 수영장을 5번 정도 다녀온 것 같은데요?”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초등학교 팀은 이렇게 잘 안 하죠. 한 번 놀러 가려면 이래저래 신경 쓸 것도 많고요. 근데 어쨌든 이 아이들은 엘리트라곤 해도 결국 초등학생이잖아요. 아직 한창 놀 때고, 또 이때 친구들과 쌓은 추억은 평생 갈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들과 합심해서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하고 있어요. 배구에 집중시키느라 인생을 놓치게 할 순 없잖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이에 최장산의 어머니도 “다른 학교를 보면 배구를 좋아해서 시작했다가도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있잖아요. 오가초는 반대예요. 배구에 전혀 관심도 없던 아이를 데려다가 감독님이 직접 배구에 흥미를 붙이게 만드세요. 방학에 놀러 다니는 거부터 해서 정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시는 데 정성이세요”라면서 “그렇다고 저희 감독님 훈련이 남들보다 힘들면 힘들지, 덜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다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배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6학년 5명 중에 지항이 빼고 전부 다예요. 제 아들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최장산, 김태웅, 이은빈, 최명국은 오가초 선배 김정호(삼성화재) 같은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이들은 아예 체육관 벽 한쪽에 그의 사진과 함께 “선배님처럼”이라는 문구를 붙여 놨다. 넷은 “나중에 꼭 김정호 선배님 같은 멋진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 두고 장 감독은 “대충 설렁설렁하기보다는 숨이 턱 끝까지 찰 때까지 훈련 시키려 해요. 대신 그만큼 더 재밌고 지루하지 않게 훈련 루틴을 짜려고 항상 고민을 많이 하죠. 처음에는 아이들이 힘들어서 흥미를 잃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오히려 다들 그게 즐겁나 봐요. 배구의 배자도 모르다가, 이제는 선수를 하겠다고 하니 저도 신기하네요”라며 웃었다.
오가초 마법, 올해 소년체전서 제대로 결실
지난 5월 오가초의 마법은 제대로 결실을 봤다. 이들의 이번 전국소년체육대회 3위는 시작부터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선 4월 열린 충남소년체육대회 우승이 필요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5학년 이상만 나갈 수 있어 4학년 최용락이 시작도 전에 명단 제외됐다. 후보 선수 하나 없이 6명에서 간신히 나서게 된 것이다.
끝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 발생했다. 중국 교포 출신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조지항의 국적 문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장 감독은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일반 학생을 아무나 선수등록 시켜서라도 나갈지, 조지항과 의리를 지키고 대회를 포기할지. 섣불리 결정할 수 없어 다른 아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지항이가 안 나가면 저희도 안 나갈래요”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장 감독은 충남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상황이 반전됐다. 거짓말처럼 이번 대회부터는 외국인 등록증만 있어도 참가할 수 있다는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오가초 배구부 6명의 뜨거운 도전이 다시 시작됐다.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하나 된 마음으로 똘똘 뭉쳤다. 간절함은 결실을 맺었다. 창단 이래 세 번째 충남소년체육대회 우승(2004·2023·2024년)이자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을 일궜다.
멈추지 않았다. 이어 나선 전국대회에서도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16강, 8강에서 문정초와 주안초를 내리 격파하고 준결승에 올랐다. 마지막 순간 면목초를 넘지 못하고 금명초와 나란히 3위에 머물렀지만, 충분했다.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을 적어냈다. 이은빈은 “지항이는 작년에도 소년체전에 혼자만 못 나갔어요. 이번에는 같이 나간 만큼 꼭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라고 돌아봤다.
김민겸이 웃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옆에 있는 5학년 김민겸은 표정이 좋지 않다. “전국소년체육대회 동메달을 땄을 때요? 당연히 기뻤죠. 근데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왜일까. 지난 2월 민겸이를 포함한 오가초 배구부원 5명은 충남도청 앞에 모였다. 해체 위기에 놓인 오가초 배구부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기 위해서다. 당시 김민겸은 추위에 떨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리말 좀! 제바~알 들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장 감독은 “처음 제가 오가초에 왔을 때부터 이미 해체 위기라는 말이 나돌긴 했어요. 사실 주변 분들은 여기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고 말씀하세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게, 저희 진짜 일 년 일 년마다 인원을 겨우 채웠거든요”라면서 “신규 선수를 받으려고 정말 안 해본 게 없어요. 전단지도 돌리고, 시장 같은 델 가도 집에 초등학생 아들 있냐고 꼭 물어봐요. 있으면 배구 한 번 시켜보는 게 어떠냐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는 동네 수영장에 가도 모르는 아이한테 배구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요. 장산이가 제가 수영장에서 처음 만나서 데려온 사례예요. 한 번에 알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방학 동안 매일 재능 기부식으로 제가 가르쳤어요. 어떻게든 배구에 흥미 붙이게 해서 꼬시려고요”라고 털어놨다
장 감독에 따르면 올해는 정말 상황이 심각하다. 그는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이죠. 지금 5학년 1명, 4학년 1명이니까 4명을 더 모아야 해요. 근데 5학년은 더 이상 들어올 인원이 없어요. 5학년 전체를 통틀어도 4명인데, 민겸이를 빼면 3명이잖아요. 그중 도움반 아이와 여자아이가 1명씩이에요. 나머지 한 명은 예전부터 안 하겠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고요”라면서 “4학년 남자아이는 다 합치면 5명이에요. 만약 용락이를 포함해서 이 5명이 전부 배구부에 가입하면 내년에도 대회에 나갈 수 있겠죠”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밖에서 데려오는 것도 이제 정말 한계예요”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김민겸의 반응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는 “감독님이랑 있으면서 배구가 정말 좋아졌어요. 그런데 올해가 마지막이면 어떡하죠? 저는 배구를 더 하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곧 학교를 떠나는 6학년 형들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다. 최장산은 “저희가 예산에 있는 유일한 배구부잖아요. 이대로 사라지면 예산 배구는 끝이에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 감독도 “단순히 오가초 배구부를 살리자는 게 아니에요. 예산 배구 명맥이 끊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것만큼은 지자체에서 신경 써서 대책을 내줘야죠”라고 목소리를 냈다.
또 장 감독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처음 오가초에 왔을 때 1~2년만 정도만 있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남아있는지 아세요? 관내 스포츠 지도자 TO는 종목 구분이 없어요. 그중에서도 배구 쪽 자리는 예산 전체를 통틀어 오가초 하나가 끝이고요. 그런 상황인데, 제가 그만두면 그 하나가 당장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어요. 성적과는 별개로 인원수 채우기에 급급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렇다고 정규직인 저를 자를 순 없는 노릇이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나가서 예산 배구의 명맥이 끊기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여기까지 왔어요”라면서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켜온 오가초 배구부예요.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체육관에 데려오세요. 같이 배구공을 갖고 놀면서 흥미를 붙이게 하려고요. 또 한 아이 부모님은 직접 오가초 배구부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세요. 조금이라도 외부에 홍보해서 다른 학교에서 오게 만들려고요. 그리고 학교마다 운동부 담당 교사가 따로 계세요. 저희는 이성희 부장 선생님이 맡아주시고 있어요. 정말 배구부와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분이에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적을 내는 걸 보면 보람이 정말 많이 느껴지신다더라고요”라고 했다. 최명국의 아버지도 “아들이 원래는 배구를 안 좋아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오가초 배구부가 딱 5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보낸 거지. 저도 오가초가 모교거든요. 어떻게 이어온 명맥인데, 허무하게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라고 거들었다.
“진짜 기적, 꿈만은 아니겠죠?”
근래 들어 장 감독과 학부모들은 예산 배구 뿌리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다. 장 감독은 “오가초 배구부가 사라지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이대로 뒀다간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산 배구 명맥 자체가 끊겨요. 다행히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충남 교육 당국 관계자 몇몇 분들도 이런 상황을 다 아세요. 지금 그래서 읍내에 있는 금오초에 새로 배구부를 창단하자는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거기는 아직 학생 수가 많아서 한 번 생기기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오가초 배구부가 사라지면요? 당연히 속상하죠. 추억도 많고, 제게 엘리트 배구 지도자 길을 열어 준 첫 직장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사라지는 것보단 금오초로 이전해서라도 예산 배구 줄기를 잇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오가초 배구 살려야 합니다’라고 안 하고 ‘예산 배구 살려야 합니다’ 주변에 말하고 다녀요”라고 했다. 김민겸과 최용락도 “오가초를 떠나는 건 싫지만, 배구를 그만두는 건 더 싫어요”라고 울먹였다.
장 감독에 따르면 금오초 배구부 창단 여부는 빠르면 10월 결정 날 예정이다. 그러면 김민겸과 최용락도 2025학년도 1학기부터 금오초에서 배구공을 잡을 수 있다. 장 감독은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저희를 더러 ‘오가초의 기적’이라고 해주셨잖아요. 항상 잊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관심 가져주시지 않았으면 저희는 진작 사라졌을지도 몰라요”라면서 “그런데 요즘 배구부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많은데, 새로 생기는 일은 없잖아요. 만약 금오초 배구부 창단이 확정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기적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문추인 금오초 교장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사실 지금 금오초 교장 선생님이 원래는 오가초에 계셨어요. 그때 오가초 아이들이 배구하는 걸 보고 정말 많이 우셨어요. 이 인원으로 이렇게 하는 게 너무 감동적이라고. 그러다 예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을 거쳐서 금오초로 가신 거예요. 덕분에 금오초 이전 논의가 나오게 된 거고요. 이렇게 한 분 한 분 노력이 모이다 보면 진짜 기적, 꿈만은 아니겠죠?”
더 이상 배구를 할 수 없을까 봐 겁난다는 김민겸. 내년 2월에는 피켓 대신 배구공을 잡을 수 있을까.
글. 송현일 기자
사진. 송현일 기자, 오가초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