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레전드’ 염기훈이 ‘강등의 총알받이’라니…수원팬들 더 분노한 이유 [서정환의 사자후]

입력
2023.12.04 06:43
[OSEN=서정환 기자] 창단 첫 2부리그 강등의 굴욕을 맛본 수원삼성은 최고의 레전드 염기훈(40)의 마지막 모습마저 욕보였다.

수원은 2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3 38라운드’ 최종전에서 강원 FC와 0-0으로 비겼다. 8승 9무 21패, 승점 33점의 수원은 최종 12위로 다이렉트 강등이 확정됐다.

1995년 창단돼 K리그 통산 4회 우승, FA컵 통산 5회 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통산 2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구단이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수원의 2부리그 강등으로 한때 프로축구 최고의 흥행카드이자 빅매치였던 FC서울과 ‘슈퍼매치’도 이제 성사될 수 없게 됐다.

강등이 확정된 후 관중석을 가득 메운 수원 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원통해서 우는 사람도 있었고, 분을 이기지 못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팬도 있었다.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구단이 2부리그로 떨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선수들도 그라운드에 누워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강등이라는 참혹한 현실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결과였다. 전광판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재창단의 각오로 다시 태어나는 수원 삼성이 되겠습니다”라는 구단의 사과의 메시지가 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구단의 영혼 없는 메시지는 오히려 팬들의 화를 돋웠다.

수원팬들이 더 화가 난 이유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레전드’ 염기훈이 강등의 모든 책임을 지는 형국의 ‘총알받이’가 됐기 때문이다. 수원 과거의 영광을 대표하는 아이콘 염기훈은 강등이라는 초라한 현실과 함께 수원에서의 선수생활을 마쳤다. 레전드가 플레잉코치로 뛰던 중 대행까지 맡아 팀을 위해 헌신했지만 남은 것은 강등에 대한 책임과 눈물이었다.

같은 날 이근호가 팀의 승리와 함께 대구 홈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려 화려하게 은퇴한 것과 너무나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경기 후 마이크를 잡은 염기훈 대행은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팬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2무5패로 시즌을 시작한 수원은 이병근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최성용 대행을 거쳐 김병수 감독이 선임됐다. 수원은 강등권 탈출을 위해 김 감독에게 전권을 줬다고 선언했다. 김 감독이 사퇴하지 않는 한 경질은 없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성적부진이 계속되자 수원은 또 다시 약속을 깨고 김병수 감독을 경질했다.

수원은 김병수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은 감독직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며 반박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9월 26일 강등의 길목에서 레전드 염기훈이 감독대행직을 수락했다.

염기훈은 K리그 통산 77골 110도움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보유한 전설이다. 아무리 후배들이 따르는 레전드 선수라도 코칭경험이 전무한 염기훈이다. 그가 당장 위기의 수원을 강등권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 정도로 K리그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애초에 무리수였다. 구단 수뇌부가 강등의 책임을 추궁할 ‘총알받이’용으로 레전드를 세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강등이 확정된 후 염기훈 대행은 “작년에 은퇴하려다 플레잉코치를 하게 됐다. 항상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많은 분들이 말렸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며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놨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기 후 성난 팬들이 “오동석 나와!”를 외치며 단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오동석 단장은 즉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회사에 사의를 표하도록 하겠다”며 단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보였다. 구단은 오 단장의 사의 수락여부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팬들은 수원 강등의 가장 큰 책임이 구단 고위수뇌부의 안일한 운영에 있다고 보고 있다. 투자가 줄어 좋은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수원보다 적은 돈을 쓰고도 좋은 성적을 거둔 ‘가성비’ 구단은 얼마든지 있다.

열악한 훈련시설에서 올 시즌 K리그1 3위에 오른 광주FC 앞에서 과연 수원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김기동 감독의 전략과 리더십, 선수들의 의지로 똘똘 뭉쳐 2위를 달성한 포항의 선수단 분위기가 지금의 수원에는 없다.

강등은 이미 벌어진 일이다. 이제는 수원이 앞으로 어떻게 팀을 쇄신해서 다시 K리그1으로 승격하고 명문으로 부활시킬 것인지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한다. 수원이 언제까지나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있다면 K리그2에서도 결코 승격이 쉽지 않을 것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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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마12
    와.......... 수원이 이럴줄이야.. 강등되고 하는 말은 모든게 핑계거리;;; 내년 리그에서 승리해서 반드시 1부 리그로 다시 복귀해야 겠군.. 역시 영원한 승자는 없었어..
    7달 전
  • 일이
    화이팅 하세요.
    7달 전
  • 잼쓰퀴퀴
    수원삼성 씁쓸합니다 2부 리그라니 내년엔 승격을 하길바랍니다 어서 과거의 영광을 찾아야죠

    7달 전 수정됨

    7달 전
  • 잼잼딸기잼
    염기훈 감독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준 것 같은데 말이에요.. 왜 굳이.. 물론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닌 팀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7달 전
  • 고로롱롱
    강등이 충격적이긴 하네요 내년엔 잘 해 주시길
    7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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