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스윙을 위해, 2시간을 연습했다… 오태곤의 드라마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입력
2025.03.22 18:10
 22일 인천 두산전에서 8회 극적인 대타 역전 투런포를 때리며 팀을 승리로 이끈 오태곤 ⓒSSG랜더스 언제 찾아올지 모를 한 번의 스윙을 위해 3회부터 더그아웃 뒤에서 타격 연습을 한 오태곤은 개막전부터 그 결실을 맺었다ⓒ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사실 경기에 있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10분 남짓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 있다 10분간 경기에 나선 선수가 극적인 투런포로 팀을 개막전 승리로 이끌었다. 어쩌면 오태곤(34·SSG)은 매번 그런 선수였을지 모른다.

SSG는 22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두산과 2025년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4-5로 뒤진 8회 터진 오태곤의 극적인 역전 투런포에 힘입어 6-5로 이기고 기분 좋은 시즌 출발을 알렸다. 경기가 전체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경기였지만, 오태곤의 시원한 한 방이 청량제 몫을 하며 경기장 대다수를 메운 홈팬들에게 짜릿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날 오태곤은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선발 1루수는 고명준이었고, 선발 우익수는 캠프부터 뛰어난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던 하재훈이었다. 상대 선발(콜어빈)이 좌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에서 시작한 이유다. 역시 캠프에서 화끈한 장타력을 보여준 오태곤이지만, 경기에 나가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그아웃에서 계속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니폼은 마치 경기를 뛰지 않은 듯 깨끗했지만, 3회부터 계속 스윙을 하며 몸을 예열했다. 랜더스필드의 홈 클럽하우스에는 타격 훈련을 할 수 있는 머신이 있다. 굉장히 빠른 공이 나오는 대신 손목이나 손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고무공을 쓴다. 옆에는 티배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오태곤은 선수들과 팬들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쏠린 사이, 그 뒷공간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한 번의 스윙을 위해 묵묵히 연습하고 있었다.

오태곤은 경기 후 "(대타 타이밍은) 그 전에 미리 감독님이 언질을 주셨다. 우리 감독님이 항상 선수들 편에서 먼저 준비하라고 말씀을 해 주신다"고 예정된 대타 출전임을 밝힌 뒤 "그래서 뒤에서 많이 쳤다. 그다음에 이영하 선수 던지는 것도 많이 보고 그렇게 했던 게 좋은 공부가 되고 준비를 잘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3회부터 계속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오태곤의 설명이다. 오태곤은 그것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오태곤은 "여기 백업 선수들에게도 항상 말하는 게 있는데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치고, 스트레칭을 하고, 뛰고, 부상을 안 당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시스템이 많이 갖춰진 것 같다"면서 "머신은 오타니가 던지는 것보다도 더 빠르다. 오늘도 대타를 나갔는데 이영하 선수의 초구 149㎞가 너무 빨라 보이더라. 그런데 저런 것들을 보고 가니까 조금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오태곤은 "벤치에 너무 앉아 있으면 몸이 굳으니까 열도 내고, 빠른 공도 보면서 적응도 하고 그렇게 준비를 한다"고 자신의 숙명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남들 못지않게 준비를 잘 했고, 벤치에서 출발하는 것 자체가 서운할 수밖에 없다. 주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게 야속할 법도 하다. 실제 이숭용 감독은 팀의 리모델링을 위해 올해도 주전 1루수로 고명준을 낙점했다. 오태곤은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생각이 든다"고 인정했다. 오태곤은 올해도 자리를 가리지 않고 팀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SG랜더스

하지만 자신도 어릴 때, 유망주 소리를 들을 때 그런 기회를 얻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으니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파이팅을 많이 내주고, 벤치에서 괜찮다고 해주고, 애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분은 많이 가르쳐준다. 그 속에서 내가 준비를 잘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돈도 받았으니까 돈값도 해야 하고, 감독님과 코치님이 항상 믿어주시니 그것도 감사해서 많이 도와주고, 팀이 이기는 게 나한테 좋은 것 같다"고 개의치 않았다.

오태곤은 경기 전 느낌을 묻자 "결과는 하늘이 아는 것"이라고 웃어 넘겼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의미다. 오태곤은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나. 나도 잘하고 싶다. 준비 과정을 잘 하고 진짜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하면 결과는 하늘이 낸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잘한다고 해서 뭔가 잘하면 좋겠지만 지금도 백업에서 출발한다. 애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나 컨디션 안 좋을 때, 쉴 때 나가서 뎁스가 두꺼워져야 팀이 좋다. 그렇게 해서 팀도 잘 되고 나도 팀이 좀 인정해 줘서 야구를 좀 오래 하고 싶다. 선배들이 길을 너무 잘 닦아놓으셔서 다 오래 하시더라. 나도 가늘고 길게라도 좋으니 유니폼 최대한 오래 입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금과 같은 활약이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을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저작권자 Copyright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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