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유격수 박찬호(29)는 지난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데뷔 이후 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참석만으로도 의미와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타율 0.301로 생애 첫 타율 3할을 넘겼고 30도루와 함께 득점권 타율 0.355 등 데뷔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박찬호는 수상은 못 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정장을 차려입고 시상식에 갔다.
박찬호는 이날 참석 선수 중 유일하게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291표 중 41.2%인 120표를 받아 LG 오지환(154표)에게 불과 34표 차로 황금장갑을 내줬다. 지난해 전체 부문을 통틀어 ‘최소표차 2위’가 된 박찬호는 당시 집으로 돌아가며 “그래도 올시즌을 통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기쁘게 웃었다.
올해 박찬호의 목표는 팀의 우승과 골든글러브였다. 우승을 위해 간절하게 뛰었다. KIA는 우승했고 유격수이자 1번 타자인 박찬호의 활약은 그 원동력이었다. 올해 박찬호는 134경기에 나가 타율 0.307(515타수 158안타) 5홈런 61타점 86득점 20도루와 함께 출루율 0.363으로 OPS(출루율+장타율) 0.749를 기록했다. 모든 타격 지표에서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박찬호는 지난해 신설된 KBO 수비상 유격수 부문에서는 오지환과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의 명성을 골든글러브에서 꺾을 수 없었던 박찬호는 올해 데뷔후 최고의 성적과 함께 그 ‘우승 프리미엄’을 가졌다. 정말 골든글러브를 눈앞에 두는가 하던 순간, 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SSG 유격수 박성한(26)이 며칠 사이 급부상했다.
박성한은 올해 137경기에 나가 타율 0.301(489타수 147안타) 10홈런 67타점 78득점 13도루와 함께 출루율 0.380 OPS는 0.791을 기록했다.
박성한의 주가가 치솟은 것은 프리미어12 때문이다. 박성한은 이번 대회를 통해 공격과 수비 모두 대활약했다. 대만전에는 결장했지만, 쿠바(4타수 2안타)와 일본(4타수 2안타)을 상대로 멀티 히트를 쳤고 도미니카공화국(3타수 1안타)과 경기에서는 극적인 역전 결승 3루타를 터뜨렸다. 14타수 5안타(타율 0.357) 2타점 4득점 OPS 0.938을 기록했다. 대표팀이 4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몇몇 젊은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은 인정받았고 그 중 박성한도 특유의 안정적 수비와 함께 타격까지 터져 대표팀 새 유격수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규시즌 종료 뒤 바로 실시된 정규시즌 MVP 투표와 달리 골든글러브는 아직 투표를 진행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보다 뒤에 있었던 프리미어12의 잔상이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승 프리미엄을 안은 박찬호의 강점은 수비이닝이다. 1120.1이닝을 유격수로 나서 올해 리그 전체 내야수 중 최다 이닝을 소화했다. 강한 체력으로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더 높은 타율과 빠른 발을 자랑했다. 박성한도 1115이닝으로 내야수 중 3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OPS에서 조금 더 앞서고 두자릿수 홈런을 쳤다. 둘은 실책 수도 23개로 똑같다. 박빙이다. 올해 유격수 부문은 어쩌면 지난해 만큼이나 적은 표 차로 결정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