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들 했다. 이제 물은 쑥 빠졌다.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좌초 위기에 몰린 배도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어느 골프 플랫폼 기업은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사업 철수를 결정했고, 빅3 중 하나로 꼽히던 모 골프용품 업체도 내부 구조조정 등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라는 소식이 들렸다. 설상가상 내년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국내 골프용품 시장이 2년 연속 극심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업인 GfK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오프라인 골프클럽 시장은 2022년 대비 10% 감소했고, 올해에는 감소세가 더욱 심화돼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동기 대비 19% 하락했다. 2021년과 2022년 코로나 특수 시기 각각 전년 대비 39%와 21%의 전례 없는 성장세를 보였던 것과는 대비된다.
골프용품 업계에서 오랜 기간 마케팅 업무에 종사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하반기부터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초반부터 줄곧 판매가 부진이 이어졌다. 대략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마켓 사이즈로 줄어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년 연속 불황에 타격이 크다. 10월까지 포함하면 주요 클럽 브랜드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6%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매장들의 매출액은 3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했다. 골프존마켓이나 AK골프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그나마 물건을 싸게 받고 할인 폭을 높여 밀어내기라도 하지만 이마저도 힘든 중소 업체들의 고통이 더 크다는 얘기다.
골프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상대적으로 안전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데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하늘길이 다시 열렸고, 비싼 골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MZ세대 골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본격적인 소비 위축을 맞았다.
이 같은 위기는 단순한 경기침체보다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골프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웃 일본의 사례처럼 젊은 세대의 유입이 뚝 끊기면 골프산업이 자칫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월 인크루트가 직장인 1020명을 대상으로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헬스(30.9%), 걷기(21.6%), 러닝(12.0%)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골프를 꼽은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골프용품 업체뿐 아니라 골프장 업계에도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수요층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그나마 선방을 하고 있지만 제주를 비롯한 지방 골프장은 뚜렷한 감소세다. 올해 상반기 제주지역 골프장의 이용객은 113만 2936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7만 5714명보다 3.6%(4만 2778명) 감소한 수치다.
올 여름에는 기후변화와 잔디가 골프장의 최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명문을 표방한 골프장들을 중심으로 겨울에도 초록빛을 유지하고 양탄자처럼 푹신한 한지형 잔디(양잔디)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폭염과 열대야가 역대급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더위에 약한 한지형 잔디가 속수무책으로 죽어 맨땅을 벌겋게 드러내거나 누더기가 된 코스가 유독 많았다. 현실로 닥친 기후변화 속에서 난지형 잔디로 교체하는 골프장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