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여자 골프에는 '천재 소녀'라는 타이틀이 붙는 선수가 종종 나온다. 어린 나이에 프로 선수들과 경쟁하며 두각을 드러냈던 미셸 위 웨스트(미국), 리디아 고(뉴질랜드) 등이 대표적이었다.
올해 한국 골프에도 '천재 소녀' 계보를 이을만한 선수가 나왔다. 이전 미셸 위와 리디아 고가 '한국계'이지만 한국인은 아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순수 한국인이라 더 반갑다.
주인공은 바로 이효송(16)이다. 그는 만 14세였던 2022년 이미 강민구배 아마골프 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중학생 신분으로 이미 한국 여자 '아마 골프' 최강자로 군림했다.
빼어난 활약으로 프로 무대에도 '추천 선수'로 종종 모습을 드러내던 그는, 올해 5월 기어이 '사고'를 쳤다. 국내도 아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살롱파스컵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만 15세 5개월 26일의 JLPGA투어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이었다.
이를 계기로 JLPGA투어의 특별 입회로 프로로 전향한 그는 일본 무대 신인왕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누렸다. 미셸 위가 만 20세에야 프로 첫 우승을 달성했고, 리디아 고도 만 17세의 나이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신인왕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효송은 앞선 '천재 소녀'들보다도 빠른 페이스로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이효송 본인도 믿기지 않는 한해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최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1년이었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다 우승하면서 프로로 전향했고, 해외에서 생활하며 대회에 나가는 등 정신이 없었다"면서 "그래도 여러모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한해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 고등학교도 마치지 않은 그가 프로 전향을, 그것도 해외투어로 시작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족들은 이효송에게 전적으로 판단을 맡겼고, 그는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했다.
이효송은 "벌써 프로무대에 가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면서 "그래도 좋은 기회를 놓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더 컸다. 일단 해보자고,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들도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의 생활도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기초를 다져놓은 덕에 일본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일본 음식과 문화에도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특히 일본 특유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선수가 행동 하나하나가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면서 "그런 부분에선 프로 첫 시작이 일본인 것도 나에게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추어와 달리 일정이 빡빡한 프로무대에 적응하기 위해 체력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효송은 "체력적인 부분에서 힘겨운 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첫날 잘했다가도 대회 막판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체력을 더 보완하고, 다른 선수들의 경기 운영 능력까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주목을 받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이효송 역시 부담감이 없지 않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극복해 내고 있다.
그는 "프로 전향 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주변에서 '너무 빨리 전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면서 "그래도 휘둘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을 다 뛰지도 않았고, 내년에 더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미셸 위, 리디아 고 등 이전의 '천재 소녀'와 비교 대상이 되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는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효송은 "미셸 위, 리디아 고 선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리디아 고 같은 멋진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리디아 고 선수 역시 어린 나이에 우승했고, 이후에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자리에 있다"면서 "나 역시 '반짝'이 아니라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이효송과 리디아 고는 메인스폰서가 '하나금융그룹'으로 같다. 이에 올 9월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서 리디아 고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이효송은 "긴 대화를 하진 못했지만 프로 전향을 축하해 주셨다"면서 "그저 멋있게 보였다. 공을 치는 것도 그렇지만, 팬서비스도 정말 좋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돌아봤다.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개인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이효송은 내년 초 베트남으로 넘어가 전지훈련에 돌입, 내년 시즌에 대비한다.
다음 시즌 목표는 '1승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이다. 그는 "프로 전향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일본 현지인 팬들이 꽤 생겨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팬들이 응원해 주시는 것을 볼 때마다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더 큰 무대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일단 일본투어에 집중해야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효송은 "JLPGA투어에서 상위권 성적을 내면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도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서 "당장 미국 진출을 바라보기보다는, 올해 그랬듯이 우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