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고교 졸업 이후 곧바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한 배지환(26·피츠버그)은 각고의 노력 끝에 2022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라왔다. 감격의 승격이었다. 다만 그 이후로는 계속 생존과 싸움이었다.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잡는 데 실패했고, 여러 가지 포지션을 소화하려고 하는 등 계속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26인 로스터 한 자리에 자리를 잡는 게 이렇게 힘들다.
202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리그 최정상급 빠른 발을 자랑한 배지환은 사실 2023년 한 차례 우선권을 가질 뻔했다. 당시 피츠버그는 주전 2루수가 없는 상태였다. 배지환을 비롯해 배지환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선수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 와중에 배지환은 2023년 111경기에 나가 334타수를 소화했다. 제법 많은 기회였다. 그러나 시즌 타율 0.231, 출루율 0.296, OPS(출루율+장타율) 0.607에 머물렀다.
24개의 도루를 성공하기는 했다. 다만 9개의 실패를 기록했고, 너무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는 그런 배지환의 실패를 감쌌지만, 다른 선수들의 실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적인 성적은 메이저리그 주전 2루수로 발돋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지환은 중견수까지 겸업하면서 애를 썼지만, 2024년 시즌에는 직전 시즌의 입지가 아니었다.
트리플A 무대를 폭격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다. 피츠버그가 배지환을 점차 논외로 두고, 다른 선수들에게 눈길을 더 주고 있다는 증거였다. 배지환은 지난해 29경기에서 타율 0.189, 출루율 0.247에 그쳤다. 여러 수비 활용성과 빠른 발은 여전했지만 일단 출루를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배지환으로서는 사실상 올해가 피츠버그에서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올해까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안착하지 못한다면 다른 선수들의 입지가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뒤에서 대기하는 유망주도 적지 않다. 그래서 올해 시범경기 성적이 중요하다. 우선권은 사라진 만큼 성적으로 자리를 따내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 지금 성적은 좋다. 자신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배지환은 16일(한국시간) 미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 레콤 파크에서 열린 '2025년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경기에서 선발 9번 좌익수로 출전해 3타수 2안타 2득점을 기록했다. 배지환의 올해 시범경기 네 번째 멀티히트 경기로 꾸준한 타격감을 이어 갔다. 시범경기 타율은 종전 0.458에서 0.481로 올랐고, 시범경기 출루율은 0.480에서 0.500으로 올랐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는 1.241까지 올랐다. 장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높은 타율을 바탕으로 거포 부럽지 않은 OPS를 뽐내는 중이다.
배지환의 장점이 잘 나왔고, 또 발전한 부분도 잘 나왔다. 2회 첫 타석에서 신기술에 손해를 봤다. 배지환은 상대 선발 우완 태드 워드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이면서 선전했다. 여기서 6구째 스위퍼에 바깥쪽 스위퍼에 손을 내지 않았다. 주심도 볼을 선언했다. 볼넷으로 출루하는 듯했다.

그러나 볼티모어 벤치에서 자동투구판정 챌린지를 신청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도 도입된 제도다. 영상 판독 결과 미세한 차이로 스트라이크존을 훑고 들어왔다. 바깥쪽에 공 반 개가 걸친 공이었다. 원래라면 그대로 볼넷이었겠지만 기계의 판정이 더 정확했다. 볼넷이 삼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첫 타석부터 공을 많이 보며 침착함과 끈질김을 동시에 드러낸 배지환은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어냈다. 배지환 특유의 기습 번트였다. 두 팀이 4-4로 맞선 4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배지환은 좌완 소토의 초구 패스트볼에 기습 번트를 댔다. 소토가 공을 잡았지만 수비가 미숙했다. 배지환이 번개처럼 달려 1루로 달렸고, 급한 소토는 정확하게 송구하지 못했다. 공이 파울 지역으로 빠졌고, 배지환은 2루까지 달렸다. 당초 투수 실책으로 기록됐으나 기록원이 배지환의 안타 후 실책으로 판단했다. 송구가 정상적으로 갔다 하더라도 배지환의 발이 먼저 1루에 들어갔을 것으로 본 것이다.
이후 배지환은 후속 타자들의 연속 볼넷 때 3루까지 갔고, 1사 3루에서 오닐 크루스의 3루 땅볼 때 전력으로 뛰어 먼저 홈을 밟았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결승 득점이 배지환의 발에서 나왔다.
배지환은 5-4로 앞선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장타를 때렸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우완 도밍게스의 초구 97.4마일(156.8㎞)의 강속구를 받아쳐 우익수 방면으로 빠지는 2루타를 쳤다. 사실 전형적인 장타 코스는 아니었지만 타구를 본 배지환이 주저하지 않고 2루까지 달려 먼저 들어갔다. 이번 시범경기 들어 배지환의 2루타 중 상당수가 다른 선수였다면 단타성 코스를 빠른 발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났다.
세 타석을 소화한 배지환은 7회 수비를 앞두고 교체됐다. 아직 개막 로스터 결정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배지환이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 만한 활약을 다시 선보였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좋은 활약을 하고도 배지환의 개막 로스터 포함은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유격수는 아이재이아 카이너-팔레파, 3루에는 키브라이언 헤이스라는 확실한 주전 선수들이 있다. 중견수는 팀이 기대하는 대형 선수인 오닐 크루스가 있다. 좌익수 자리에는 새롭게 영입된 베테랑 토미 팸, 그리고 우익수 자리에는 팀의 간판인 브라이언 레이놀즈가 버틴다. 배지환이 노려볼 만한 주전 자리는 2루인데 여기에도 닉 곤살레스와 아담 프레이저가 있다. 이들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배지환은 내·외야를 모두 뛸 수 있는 활용성을 어필할 수도 있지만 이미 인상적인 장타력을 보여준 잭 스윈스키가 코너 외야를 모두 볼 수 있고, 다른 내야수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배지환으로서는 잘하고도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 어떤 돌발 변수가 나올지 모르는 만큼 최선을 다해 뛰고 그 다음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저작권자 Copyright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