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화려했던 '배구 순정남'의 퇴장...'첫사랑'과 '끝사랑' 앞에서 은퇴 고한 최석기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25.01.03 14:13


화려하고도 감동적이었다. '아버지' 최석기에게도, '아들' 최로하에게도 잊지 못할 은퇴식이었으리라.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있었던 지난달 31일 서울장충체육관. 이날 경기장에는 반가운 얼굴이 방문했다. 한국전력의 창단 멤버이자 지난 시즌을 끝으로 우리카드 유니폼을 벗고 제2의 인생을 찾아 떠난 최석기였다.

최석기가 이곳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은퇴식을 위해서였다. 최석기는 최근 일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는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잠시 국내 입국한 사이 우리카드에서 선뜻 그의 은퇴식을 열었다. 팀의 주장으로서 묵묵히 헌신한 이에 대한 감사 표시이자 보답이었다.

이로써 최석기는 우리카드 사상 첫 번째 은퇴식 주인공이 됐다. 이 사실이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은퇴식이 끝난 뒤 잠시 취재진과 만난 그는 "구단에서 선뜻 은퇴식을 열어주겠다고 해 나도 놀랐다. 선수가 자신의 은퇴식을 가질 수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놀라서 울기까지 했다. 은퇴식이라는 게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혼자만의 바람으로 할 순 없다. 구단에서 해줘야 하는데, 내가 그럴 만한 선수가 맞을까 스스로 의심했다. 그런데 먼저 이렇게 해준다고 하니 와이프가 감동했다. '오빠가 우리카드에서 쏟아왔던 게 헛되지 않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라"고 전했다.

최석기는 2019년 우리카드에 처음 합류해 지난 시즌까지 총 5시즌을 뛰었다. 1986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이적 후에도 그의 손끝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더이상 말을 듣지 않는 무릎이 문제였다. 앞 4시즌 동안엔 억지로 참아가며 경기를 뛰었지만 마지막 시즌인 2023-24시즌엔 결국 단 한 세트도 코트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팀에서 존재감만큼은 여전했다. 지난 시즌 최석기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선수들을 격려했다. 비교적 어린 선수들이 많은 우리카드에서 팀 중심을 잡는 대들보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리빌딩 단계였던 우리카드가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것, 최석기의 몫도 분명 있었다.

최석기는 "선수 생활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다. 25연패도 해봤고 계약해지, 트레이드, FA 등등 정말 다 해봤다. 나만큼 선수 생활이 굴곡진 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내 자산이자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바탕으로 우리카드에서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구단에서도 그런 부분을 높게 평가해 은퇴식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어 "선수는 경기에 뛸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빛날 수 있는지를 내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주장인데도 함께 경기장 안에서 뛰지 못한 마지막 시즌이 아쉽지만, 그래도 후배들과 팀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최석기는 선수 때 입은 유니폼을 착용하고서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정장을 입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다. 그는 "아들이 나를 따라 배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최석기의 특이하지 않은, 특별한 선택이었다.

은퇴식이 끝난 뒤 최석기는 일부 지인과 체육관 인근 식당을 찾아 저녁식사를 했다. 집착에 가까운 몸 관리로 늘 정해진 식단만 먹던 까닭에 그는 한참 길을 헤매기도 했다. "장충은 처음 오는 거라서"라는 변명이 웃기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5년 동안 우리카드에 있으면서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

식당 안에는 또 다른 특별한 손님들이 있었다. 한국전력 서포터즈였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선 최석기를 반갑게 맞았다. 비록 우리카드 소속으로 은퇴했더라도 한국전력에서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석기는 2008년 KEPCO45 시절 2라운드 1순위로 한국전력에 입단해 2015년까지 뛰었다. 이후 그해 대한항공을 거쳐 2018년 한국전력에 복귀한 뒤 2019년 우리카드로 이적했다.

최석기는 "2024년의 마지막 날에, 그것도 한국전력 앞에서 은퇴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내가 처음 선수 생활 시작한 곳이 바로 한국전력이다. 팀이 창단할 때 내가 있었고, 유일하게 남은 멤버가 나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뛴 곳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전력은 내게 다가오는 의미가 정말 크다. 우리카드가 끝사랑이라면 한국전력은 첫사랑이다. 왜, 남자에게 첫사랑은 평생 잊지 못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나"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최석기는 오는 4일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현재 그는 일본 V.리그 옐로우스타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해외 지도자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기회를 잡았다. 지난 10월부터 오는 4월까지 약 6개월간 일본에서 체류하는 일정이다. 사실상 한 시즌을 통으로 소화하는 셈.

최석기는 "좋은 지도자가 돼 돌아오겠다"고 얘기했다.

새해를 맞아 2024년 한 해 동안 감사했던 사람들도 떠올렸다. 최석기는 "감사한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게 정말 많지만, 아내에게만큼은 고맙다는 말을 꼭 먼저 전하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들보다도 더 소중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_KOVO

 
스포키톡 새로고침
로그인 후 스포키톡을 남길 수 있어요!
첫 번째 스포키톡을 남겨주세요.
이미지 실시간 인기 키워드
  • 리버풀 맨유 무승부
  • PSG 우승
  • 베트남 미쓰비시컵 우승
  • 주민규 대전 이적
  • SK KT 통신사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