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외국인 지도자들이 도를 넘는 비매너 행동으로 배구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 상대 감독을 조롱한 다니엘레(46) 수석코치의 선 넘은 도발에 한국배구연맹은 상벌위원회 개최를 검토 중이다.
지난 1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펼쳐진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맞대결.
논란의 장면은 흥국생명이 세트 스코어 0-1로 끌려가던 2세트에 발생했다. 정관장 고희진 감독이 19-17에서 작전타임을 불렀는데 이 때 흥국생명 투리노 다니엘레 수석코치가 정관장 선수단 영역을 침범하는 돌발행동을 했다. 다니엘레 코치는 뒷짐을 지고 엉덩이를 쭉 뺀 자세로 고희진 감독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이를 발견한 흥국생명 스태프 1명이 급하게 다니엘레 코치를 제지했다. 흥국생명 코트로 강제 복귀한 다니엘레 코치는 화가 가시질 않았는지 고희진 감독을 향해 계속해서 흥분된 제스처를 취했다.
고희진 감독은 황당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전영아 부심의 중재 아래 사태가 일시적으로 일단락됐지만, 고희진 감독은 경기 후 승장 인터뷰에서 “당황스러웠다.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라며 “연맹과 구단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선수들이 경기를 해야지 코칭스태프가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빛날 수 있게 해주는 게 내 바람이다”라고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GS칼텍스의 V리그 여자부 최초 트레블을 이끈 뒤 마이크를 잡은 차상현 SBS스포츠 해설위원도 다니엘레 코치의 선 넘은 도발에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17일 경기 중계를 맡은 차 위원은 “배구는 네트를 갈라놓고 하는 신사적인 운동이다. 지켜야할 매너를 지켜가면서 해야 한다”라며 “심판을 향한 불만, 감독간의 액션 때문에 서로 싸울 수 있다. 싫은 말도 할 수 있고, 표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코치가 상대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과 행동하는 건 본 적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언제부터 한국배구가 코치가 나와서 감독에게 조롱하는 행동을 보였을까.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이다. 중립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다니엘레 코치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흥국생명 구단은 다니엘레 코치의 부적절한 행동에 고개를 숙이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다니엘레 코치가 과열된 분위기로 인해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 구단 차원에서 경고를 했고, 다니엘레 코치도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또한 정관장 구단과 고희진 감독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조롱 논란의 후폭풍은 거세다. ‘절대 1강’의 위용을 뽐낸 흥국생명의 민낯에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배구계 복수 관계자들은 “코치가 네트를 넘어 상대 벤치를 조롱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다니엘레 코치의 무례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배구는 차 위원의 말대로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신사 스포츠다. 다니엘레 코치가 근본적인 배구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더 나아가 흥국생명 코칭스태프의 도 넘은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명장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올 시즌 유독 심판 판정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지난 5일 인천 IBK기업은행전에서 판정의 불만을 품은 나머지 주심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과격한 동작을 취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배구연맹 관계자는 “흥국생명 구단에 해당 행동에 대한 경고 공문을 보냈다”라고 밝혔으나 개선은커녕 2주 뒤 수석코치의 조롱 논란이 터졌다. 아본단자 감독 또한 이날 주심의 판정에 한참 동안 항의하다가 옐로카드를 받았다.
한국배구연맹은 공문 발송 단계를 넘어 다니엘레 코치의 상벌위원회 개최를 검토 중이다. 진상 파악을 마치는 대로 상대 조롱에 상응하는 징계를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그 어떤 팀보다 우승을 향한 열망이 강하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건설에 3패로 무릎을 꿇었고, 2022-2023시즌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챔피언결정전 2승 뒤 3연패라는 굴욕의 역스윕을 당한 뼈아픈 기억도 있다. 이에 ‘명장’ 아본단자 감독과 ‘배구여제’ 김연경을 필두로 착실히 시즌을 준비했고, 그 결과 파죽의 개막 14연승을 질주하며 ‘절대 1강’의 면모를 되찾았다.
하지만 코트 밖에서의 동업자 정신 실종이 흥국생명의 위대한 도전을 퇴색시키고 있다. 감독은 주심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는 상대 감독을 불필요하게 자극시켰다. ‘절대 1강’,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의 품격이 전혀 보이지 않는 행동이다. 아울러 아본단자 감독과 다니엘레 코치는 모두 구단이 거액을 주고 머나먼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외국인 지도자다. 우승 도전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이들이 V리그를 향한 존중의 마음이 있는지 면밀한 체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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