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한수지(36)가 GS칼텍스 홈팬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수지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2006년 프로 데뷔 후 장장 17년을 뛰었다. 눈물은 없었다. 그저 웃움만 나왔다. 하나도 아닌 두 포지션에서 국내 최고에 올랐다. 선수 생활하면서 못해본 것 없이 다해봤다.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더 컸다.
지난 4월 은퇴를 선언했던 한수지가 23일 장충체육관에서 정관장과 경기를 앞두고 은퇴식을 치렀다. 사인회에서 팬들과 인사했고 양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경기 전 남편의 시구를 직접 리시브도 했다. GS칼텍스는 한수지를 위해 유니폼 액자와 앨범, 현역 시절 영상을 준비했다.
은퇴식 내내 한수지는 환하게 웃었다. 행사 후 취재진과 만난 한수지는 “구단은 내가 눈물 흘리는 걸 상상하며 영상을 제작하셨다고 하는데,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영상 잘 만들어주셨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한수지는 2006~2007 V리그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했다. 세터로 프로를 시작했지만, KGC인삼공사(현 정관장) 소속이던 2016년 무렵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꿨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최고의 선택이기도 했다.
한수지는 “당시 팀을 지휘하시던 서남원 감독님의 권유였다. 그 전에 이성희 감독님한테도 권유를 받았다가 자신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결단을 내렸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되돌아보면 포지션 변경하고 첫 해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잘했다기 보다도 배구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한수지는 2009~2019시즌 현대건설에서 세터상을 받을 만큼 국내 손꼽히는 세터였다.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꾼 뒤로도 정상급 기량을 증명했다. 2020~2021시즌 GS칼텍스 트레블(정규리그 1위, 챔피언결정전·컵대회 우승)에 기여했고, 2022~2023시즌에는 리그 블로킹 1위를 차지했다. 대표팀에서도 세터로, 또 미들블로커로 두 개 포지션으로 발탁돼 활약했다. 여자배구에서 한수지 1명만 경험한 진기록이다.
공식 은퇴를 선언한지 6개월여가 지났다. 현역 시절 루틴을 아직은 벗어나기 어렵다. 한수지는 “일어나면 일단 방부터 닦고, 헬스장 가고 운동한다. 아직은 계속 그렇게 산다”고 웃었다. 습관 뿐 아니라 마음도 여전히 코트를 향하고 있다. 지금은 ‘2세 계획’ 중이라 잠깐 쉬고 있지만, 언젠가 지도자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다. 한수지는 “두 개 포지션에서 해봤으니까 지도자로서 저만의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선수들의 고충을 잘 헤아려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수지까지 은퇴하면서 GS칼텍스는 본격적인 리빌딩에 들어갔다. 한수지는 후배들을 향해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본인들은 힘들겠지만, 이런 시간을 버텨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며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