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후보가 “대한민국 축구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다”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출사표에는 한국축구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공약과 비전은 감정적인 호소에 머물렀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현실적 계획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허 후보는 협회의 독단적인 운영 구조와 시스템 부재를 문제로 지적하며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투명하고 상식적인 협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단계적 로드맵은 명확하지 않다. ‘Open KFA, With All’이라는 비전에도 이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허 후보가 내세운 지방축구협회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겠다는 발언은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17개 시도협회 재정 자립 방안을 언급하며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재원 확보 방안이나 구체적 시스템 개선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유소년과 여자축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에도 실행력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적잖다. 유소년 해외 거점을 통해 선수들을 관리하겠다는 구상만 언급한 게 전부다. 여자축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리그를 활성화하겠다”고 했으나, 리그 운영의 구체적 방안이나 스폰서십 확대 전략은 미흡했다. ‘여자축구연맹이 WK리그 운영을 포기했다’는 취재진 발언에 “지원이 전무하거나 미흡하다고 알고 있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협회는 기금, 자체 예산 등 25억~30억원을 연맹에 지원하고 있다. 연맹의 업무능력, 마케팅 능력이 허접한 게 WK리그를 활성화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갈라진 축구인들을 화합시키겠다”고 하겠다고 한 출마의 변에도 구체적 실행 계획이 없다. 그저 간담회나 지역 세미나를 통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 정도다. 천안축구센터와 파주 NFC의 활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도 알맹이가 없다. 필요한 재원 조달과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단순히 “전문가들과 논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빚을 최소화하겠다”고 했지만, 재정 조정 방안이나 장기적 운영 계획 또한 미흡했다.
허 후보는 ‘동행’ ‘공정’ ‘균형’ ‘투명’ ‘육성’ 등 5개 키워드를 제시했다. 모두 방향성만 제시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이다. 허 후보 주장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평가하려면, 5가지 키워드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된다. 과연 어느 후보가 ‘독단’ ‘불공정’ ‘불균형’ ‘밀실 행정’ ‘방치’ 등을 키워드로 내세우겠나.
구체적인 공약이 없이 “지도자, 심판 처우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투표권을 가진 지도자, 심판 등 유권자를 유혹하는 데 그쳤다. 정부 관련 부처, 금융기관 등과 협의하여 축구인복지조합을 설립하고 축구인 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실행’이 아니라 ‘검토’하겠다고 했다. 특정 종목 경기인 연금제도를 만드는 데 정부가 적극 협조할 리는 만무하다. 협회가 실효성 있는 연금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면. 최소한 수십억원에 이르는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천안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야 하고 이것 말고도 축구 발전을 위한 산적한 숙제들을 잔뜩 짊어진 협회가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연금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천안센터 공모 과정은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순조롭고 공평하게 진행됐다. 파주NFC도 함께 써야 한다는 발언보다 천안센터를 잘 짓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어야 했다.
공약, 출마의 변은 대부분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내용은 거의 없다. 돈은 많이 벌어야 많이 쓸 수 있다는 건 어린아이도 안다.
허 후보가 진정으로 축구협회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축구계 숱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싶다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로드맵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재정적 기반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의욕만으로는 한국축구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허무한 출마의 변에 현혹될 축구인, 축구계 종사자, 축구팬이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