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도영(21)은 26일 열린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홀로 흰색 정장을 입고 모습을 나타냈다.
다른 선수들이 대체로 어두운 색상의 정장을 입은 반면 김도영은 과감한 흰색 수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김도영은 올시즌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26일 서울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시상식에서 MVP의 영예를 안았다. 기자단 투표 101표 중 95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김도영은 시상대에 섰다. 김도영은 처음에는 “KIA가 통합우승을 한 해에 큰 상을 받게 되어서 영광이다. 앞으로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게 겸손한 자세로 운동하고 그리고 항상 느낌표가 될 수 있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라고 다소 평범하게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이내 김도영은 “그런 날 있잖아요”라며 자신의 유행어로 운을 떼 행사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도영은 지난해 여름 자신의 SNS에 비 맞은 셀카와 함께 “그런 날 있잖아 손에 우산은 있지만 비를 맞으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고 싶은…그런 날”이라는 감성 충만한 게시물을 올렸다. 같은 팀 동료들은 물론 각종 미디어에서 패러디가 됐고 KIA 구단은 ‘그런 날 있잖아’ 티셔츠를 제작했다.
이날 김도영이 언급한 ‘그런 날’은 의미가 있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그런날들이”라며 “누가 해준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를 믿어라,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는 너를 보며 위안을 얻을 것’이라고. 그런 날들이 항상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저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표했다.
그러면서 ‘도니살(도영아 니땜시 살어야)’이라는 유행어도 같이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한 KIA 팬이 이 문구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었고 이 문구는 야구계 최고 유행어가 됐다. 김도영은 “입단 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함성 소리로 응원해주시고 믿음으로 응원해주시는 KIA 팬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단말 드린다”며 “저는 팬 땜시 살았습니다”라며 재치있게 답했다.
이날 시상대에 선 김도영은 흡사 ‘백조’같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을 받기 전까지 부단히 물장구를 쳤어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광주동성고를 졸업한 김도영은 202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KIA의 선택을 받았다. 1군 데뷔전을 치르기 전부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부담감이 적지 않았고 8월 중순에는 수비를 하다 타구에 손을 맞아 10바늘을 꿰맸다. 그 해 신인왕은 정철원이 차지했다.
다음해에는 개막하자마자 왼발 등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후반기에 돌아왔지만 1군에서 84경기 타율 0.303 등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시즌을 마치고는 아시아프로야구 챔피언십(APBC)에서 주루를 하다 부상을 입는 등 이래저래 잘 풀리지 않았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성숙한 김도영은 프로 데뷔 3년차인 올시즌 기량이 만개했다. 141경기에 출장해 타율 0.347, 38홈런, 109타점, 40도루를 기록했다.
득점 1위(143득점), 장타율 1위(0.647) 등 타이틀을 두개나 획득했고 타율 3위, 홈런 2위, 안타 3위(189안타), 출루율 3위(0.420) 등 타격 전반적으로 리그 최고의 성적을 냈다.
각종 대기록도 작성했다. 4월에는 한 달 동안 홈런 10개와 도루 14개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월간 10홈런-10도루’를 달성했다. 전반기 81경기에서만 23홈런, 26도루를 달성하며 역대 5번째 ‘20-20 클럽’ 가입을 확정했다.
지난 7월 23일 광주 NC전에서는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지난 8월 15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올 시즌 111경기 만에 KBO리그 역대 9번째 ‘30홈런-30도루’ 기록을 세웠다. 20세 10개월 13일로 역대 최연소였고, 경기 수 역시 가장 적었다. 40홈런-40도루 기록에서는 홈런에서 2개가 부족했다.
하지만 김도영은 “나는 오히려 40-40을 달성하지 못해서 뿌듯했다. 왜냐면 달성해버렸다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야구를 쉽게 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달성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할 것 같다. 매 타석 진중한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목표도 생겼다. 이날 김도영은 ‘만장일치’ 수상에는 실패했다.
롯데 빅터 레이예스가 3표, KT 멜 로하스 주니어와 NC 카일 하트, 삼성 원태인이 각각 1표씩 가져갔기 때문이다.
김도영은 “(만장 일치를) 기대했다”라며 “기자님들에게 잘 했던거 같은데…”라며 갸우뚱했다. 그러면서도 “그날(투표날)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음 목표는 만장일치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목표를 또 잡았다.
흰색 수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과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주변의 반응이 괜찮았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고, 시상식 중에서도 가장 큰 거라서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시상식에서는 이런 화려한 옷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무난하게 가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시상 후 생각한 멘트는 배우 박보영의 수상 소감을 살짝 참고했다. 박보영은 최근 시상식에서 “오랜 시간 밤을 맞이하고 계신 분들, 꼭 아침 보시면 좋겠다”라는 수상 소감을 해 잔잔한 감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도영은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나도 남들이랑 다르게 ‘마음을 울리는’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가족들과 상의해서 고른 멘트”라고 전했다.
이제 김도영은 더더욱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일구회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도영은 “집에 장식장이 있는데 안 들어갈 것 같다”며 “더 큰 트로피도 놓고, 액자도 많으니까 박물관 느낌으로 해보겠다”라고 여유를 부렸다.
올시즌 워낙 좋은 성적을 냈기에 부담이 클 법도 하지만 김도영은 “아직 부담은 크게 없다”라며 “내가 20-20이나 30-30을 못해도 실책이 줄어든다면 만족할 것 같다”라며 다음 시즌 수비를 보강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시즌 후에 프리미어12까지 강행군을 소화하느라 6㎏정도 체중이 빠진 김도영은 “5㎏ 정도 찌우고 벌크업 하면서 기술 훈련도 같이 하겠다”라고 말했다.
올해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통합 우승까지 달성한 김도영은 앞으로 KIA가 왕조를 건설하기를 바란다. 그는 “나는 내뱉고 지키는 걸 좋아한다. (우리 팀이) 왕조를 할 거 같다”라며 “부상이 없어야 한다. 부상은 가장 큰 벽이다. 그렇게 부상만 방지한다면 왕조는 문제 없을 것 같다”며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