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 몬스터즈 감독으로 선수들에게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 지지 말자, 창피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너희들 모두 스물다섯 여섯 살 때 대한민국 베스트멤버였다. 진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하자”고 했다. 어느 순간 보니 베테랑들이 이 얘기를 다시 하고 있었다.
어디서도 마찬가지다. 프로는 이겨야 한다.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 또 졌다. 몇 년째 같은 흐름 속에 있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서는 우리 대표팀에서 여럿이 빠졌다. 군사 훈련 때문에 빠졌고, 부상으로 또 빠졌다. 아프면 우리는 그냥 쉬어버린다. 배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그래서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 또 그러니 살이 찐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가장 중요한 건 사명감이다. 과거 일본 오치아이(주니치 전 감독)는 부상 뒤 회복 과정에서 일주일이 필요하면 그 기간을 사흘로 단축하려 훈련 내용을 빡빡하게 바꾸곤 했다. 그런 의식 있는 선수가 있나 싶다.
KBO도 문제가 있다. 일본은 리그의 투타 톱클래스 선수들이 다 나왔다. 우리는 왜 세대교체를 내걸고 야구를 하는지 모르겠다. 대표팀 경기를 전면 세대교체 무대로 여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톱클래스를 내면서 세대교체는 필요한 곳 몇 명만 하면 맞는 것 아닌가 싶다. 이기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이다. 지려고 야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KBO는 이런 의식이 너무 모자랐다. 세대교체라는 타협적인 이야기부터 나온 이유였다. 세상 모든 일이 타협으로 시작하면 결국엔 맨 앞에 갈 수 없다.
이번 대회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대표팀은 이런 패턴을 몇 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일본전 때 우리 주전 마무리(고우석)이 마지막에 맞아 졌다. 그 후에 KBO부터 무슨 준비를 했나, 싶다. 이번에 일본전에서는 5회 (불펜진이) 또 맞았다. 누가 맞았다, 그 얘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타이밍에 2가지, 3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냥 순간만 넘어가면 되는 줄 안다. 이번에 일본에 진 것은 실력으로만 진 것이 아니다. 준비에서 졌다. 또 대표팀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면, 이 멤버가 2년 뒤 3년 뒤 그대로 대표팀으로 올라오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2026년 WBC에 지금 이 선수들 데리고 싸울 수 있나 싶다. KBO는 모호하고 안이하다.
2~3년 사이 대만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대만은 미국에서 선수들을 데리고 온다. 그 선수들을 내세워 시합에 나왔다. 우리는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는 분위기로 나갔다. KBO부터 대회를 준비하는 태도가 나빴다.
야구장으로 관중이 모이는 건 고마움이지만, 고마움에 어떻게 답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깊은 의식이 필요하다. 프로는 프로다운 야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아온 많은 관중 앞에서 ‘역시 프로는 이런 거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는 경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관중 숫자와 팬들 성원에 도취해 있으면 안 된다. 그에 맞는 기술을 보여야 하는데 기술이 모자라다. 금방 사라질 수 있는 숫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예전 톱클래스들은 ‘제일 중요한 건 기술’이라고 했다. 요즘 우리 선수들이 시즌 끝나고 마무리캠프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듣고 있으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어떤 구단은 ‘나이 먹은 선수들은 연습 안 나와도 된다’는 식이라고 들었다. 이는 비단 선수 개인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올해 프로야구에서는 KIA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어떤 팀도 KIA를 압박하지 못했다. 전체 구단들이 과연 어떤 의식을 갖고 있었나 싶다. 우리 프로야구를 보면 각 구단이 살아가려는 방법이 비슷해져 있다. 돈으로 선수를 사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는 방법이 보편적인 길이 되고 있다. 가령, ‘우리는 연습이다. 또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의식으로 아침부터 바보처럼 훈련하는 팀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과거 태평양 감독으로 있을 때 “뒤에서 손가락질받는 선수가 되지 말자”는 얘기를 했다. 그때 태평양 선수들은 “집에 가면 창피하다”고 했다. 매일 지는 팀의 선수로 야구장 밖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이고 창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뒤에서 손가락질 받지 말고 앞에서 손짓 받는 선수가 되자”고 했다. 지금 프로야구에서는 ‘이 선수는 돈만 많이 받고’, 하는 식으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안된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수치심을 가져야한다.
프로야구의 최대 가치는 돈이 아니다. 사명감 그리고 명예다.
<김성근 최강야구 몬스터즈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