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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이 없다.”
한국이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를 준비하는 과정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선발투수다. 1년 전 일본에서 열린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과 비교해도 면면이 크게 달라졌다. 4명의 선발진 중 남은 것은 곽빈(두산) 뿐이었다. 원태인(삼성), 이의리(KIA), 문동주(한화) 등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기대를 모았던 손주영(LG)도 결국 낙마했다. 왼쪽 팔꿈치 굴곡근 및 회내근 1도 좌상 진단을 받았다. 에이스에 물음표가 붙었다.
전략이 필요한 상황. 류중일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곽빈, 고영표(KT), 최승용(두산), 임찬규(LG)였다. 당초 그렸던 그림과는 달라졌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는 카드라고 판단했다. 불펜에 대한 믿음도 포함된 결정이었다. 박영현(KT), 정해영(KIA), 김택연(두산), 조병현(SSG), 유영찬(LG) 등 마무리만 다섯 명이었다. 곽도규, 최지민(이상 KIA), 이영하(두산), 소형준(KT), 김서현(한화) 등도 기대를 모았던 자원. 앞에서 최소한만 버티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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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현실이 됐다. 선발투수들이 연달아 초기에 무너졌다. 로테이션을 한 바퀴 도는 동안 5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4경기서 선발 4명이 책임진 이닝은 총 10⅔이닝에 불과했다. 첫 경기였던 대만전에 나선 고영표는 낯선 스트라이크존 적응에 애를 먹으며 2회에만 홈런 두 방을 허용했다(2이닝 6실점). 곽빈이 쿠바전 4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최승용과 임찬규는 각각 일본전 1⅔이닝 2실점, 도미니카공화국전 3이닝 3실점에 그쳤다.
선발진의 이른 교체는 불펜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피로도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모습이었다. 예선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23명의 불펜투수가 투입됐다. 짧은 시간, 그것도 긴장도가 높은 경기에서의 피칭은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체력이 소모된다. 해외 매체들도 놀랄 만큼 철벽 방어를 자랑했던 불펜이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실점이 늘어났다. 16일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류 감독이 고영표의 불펜 대기를 시사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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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흔히 투수놀음이라고 한다. 마운드 높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이번 대회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경우 16일까지 3경기서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 전승을 이어갔다. 한층 높아진 기량을 뽐내고 있는 대만 역시 3경기서 평균자책점 2.00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간 두 팀이 나란히 B조 1,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4경기서 평균자책점 5.56을 마크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야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 명확해졌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