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박경수와 이별할 시간이다.
KT 위즈의 '영원한 주장' 박경수는 2024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언제나 묵묵히 빛났던 그가 유니폼을 내려놓는다.
성남고를 졸업한 박경수는 2003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성했다. 이후 2014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어 신생팀 KT로 이적했다.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으며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2021년엔 KT의 새 역사를 함께했다. 당시 KT는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호수비로 내야를 지키던 박경수는 한국시리즈 3차전 도중 종아리 근육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았다. 경기엔 더 나서지 못했지만 뒤에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4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에는 목발을 짚고 그라운드로 천천히 걸어 나왔고, 후배들은 그런 박경수를 기다린 뒤 두 팔 벌려 안아줬다. 여전히 손꼽히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당시 박경수는 한국시리즈 MVP도 수상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종료 후 박경수는 다시 FA가 됐다. 현역 생활 연장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그에게 KT 이강철 감독과 나도현 단장이 손을 내밀었다. 1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이 감독은 계속해서 주장을 맡아달라는 조건도 달았다.
당시 박경수는 "팀에 짐이 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언제든 유니폼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야구했다"며 "고참으로서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책임감을 갖고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2024년, 박경수와 KT는 또 드라마를 썼다. 시즌 초반 최하위권에 머물다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SSG 랜더스와 KBO리그 사상 최초 5위 결정전(타이브레이커)을 치러 승리하며 포스트시즌행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었다. 박경수는 4위 두산 베어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엔트리 승선을 정중히 고사했다. 이유가 있었다.
4월 6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던 박경수는 이후 1군 명단에 복귀하지 않은 채 선수단과 동행했다. 실전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다. 대신 무더운 날씨에도 직접 마운드에 올라 배팅볼을 던지고, 꾸준히 선수들을 다독이며 힘을 실었다.
가을야구를 앞두고 박경수는 "괜히 내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았다. 후배들도 큰 경기 경험을 해봐야 한다. 동생들의 자리를 뺏을 순 없었다"며 "감독님께 '(오)윤석이나 젊은 선수들을 써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이 과정들이 더 감사했다"고 밝혔다.
주장의 응원 속 KT는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2연승을 거두며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2015년 와일드카드 도입 후 5위 팀이 4위 팀을 꺾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은 올해 KT가 최초였다. '0%'의 기적을 자랑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선 정규시즌 3위 LG와 마지막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시리즈 전적 2승3패로 아쉽게 가을야구를 마감했다. KT 팬들은 패배 후에도 선수단에 박수를 보냈고, 응원가를 부르며 잊지 못할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포스트시즌을 모두 마친 뒤, 박경수는 "뭉클하면서도 우리 선수들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며 속마음을 내비쳤다.
후배들의 기둥이었다는 말에 박경수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많이 했다. 주장으로서, 최고참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난 그저 우리 동생들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답했다.
올 시즌을 보내며 이미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경수는 "다 내려놓고 생활했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여기며 1년을 보냈다.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KT는 여러모로 내겐 너무나 감사한 팀이다"며 "솔직히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본다. 단순히 한 시즌이 끝난 게 아니라 선수로서 30년의 인생을 끝내는 날이라 머리가 많이 복잡하다"고 전했다.
이어 "감정이 북받쳐서 (준플레이오프 5차전 종료 후) 마지막 팀 미팅에서 선수들에게 '고생했다'고 한마디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다른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경수는 "올해 KT의 야구는 감독님께서 자주 표현하셨듯 진짜 마법 같았다. 선수들이 그만큼의 실력을 갖췄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며 "동생들 모두 그동안 잘해왔다. 앞으로도 당연히 잘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박경수는 "누구보다 우리 팀을 사랑했다. 팀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주장을 6번이나 맡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며 "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연합뉴스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