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잠실, 최원영 기자) 단 한 번도 없었던, 드라마 같은 역전을 노린다.
KT 위즈 우완투수 손동현은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 구원 등판했다. 위기 상황에서 불을 끄며 1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 투구 수 15개로 호투했다. 팀의 4-0 승리에 톡톡히 공헌했다.
4-0으로 앞선 7회말 1사 1루, 투수 김민이 후속 타자 이유찬에게 초구로 볼을 던졌다. KT 벤치가 움직였다. 손동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손동현은 이유찬을 헛스윙 삼진, 조수행을 유격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워 이닝을 끝마쳤다. 공 5개로 3아웃을 채웠다.
이어 8회말에도 출격했다. 정수빈을 3루 땅볼, 김재호를 3루 직선타, 제러드 영을 헛스윙 삼진으로 요리했다. 순식간에 이닝을 삭제했다.
승리 후 만난 손동현은 "지난해 (가을야구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인지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작년에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추억을 안고 등판했다. 덕분에 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투구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의 손동현은 KT 필승조의 핵심이었다. 생애 첫 가을야구 무대서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출전해 7이닝을 책임지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0을 뽐냈다. 한국시리즈에선 4경기 3⅔이닝서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4.91을 빚었다. KT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다.
손동현은 "이번 경기는 내게 100점 가까이 주고 싶다. 정말 신기한 게, 정규시즌 막바지에도 이 정도의 구위가 나오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포스트시즌이 시작하니 작년 가을야구 때의 구위가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만족스럽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올해 정규시즌 (허리) 부상으로 두 달 정도 1군에서 빠져 있었다. 그 사이 중간투수 형들이 고생했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포스트시즌에는 내가 그 몫을 대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등판은 언제부터 준비했을까. 손동현은 "(7회말을 앞두고) 쿠에바스가 투구를 마친 뒤부터 몸을 풀었다. 코치님께서 '불펜투수들은 어느 상황에 올라갈지 모른다. 계속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하셨다. 미리 팔을 풀어놓은 뒤 등판해 급한 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누상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1볼을 안은 채 투구를 시작했다. 그는 "볼카운트 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똑같이 위기 상황에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던졌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동현은 "난 항상 잠실에서 공이 좋았다. 제춘모 투수코치님께서 '잠실 왕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해주셨다"고 전했다.
KT는 3일 잠실서 두산과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을 치른다.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도입된 이후 5위 팀이 4위 팀을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KT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여러 역경을 헤치고 포스트시즌까지 왔기 때문. 일례로 지난 1일 SSG 랜더스와 리그 사상 최초 5위 결정전을 펼쳐 극적인 4-3 승리로 5위를 거머쥔 바 있다. 나아가 '0%의 기적'을 이뤄 준플레이오프 진출까지 노리려 한다.
손동현은 "야구에 당연한 결과는 없다고 하지만, 5위 결정전에서 이기고 나서 '이 분위기로는 무조건 업셋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와일드카드에 올라왔는데 여기서 탈락하면 드라마 작가도 욕먹지 않겠나"라며 "이 기세로 2차전도 이겨 준플레이오프에 가고 싶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선수단 버스에서 계속 형들에게 '이대로 질 수는 없다. 하늘에서도 이건 지게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감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0%'의 확률에 관해서도 "세상에 0%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확률이 깨질 수 있도록, 우리가 잘해 승리하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잠실, 김한준 최원영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