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역시 윌리엄 쿠에바스는 '빅게임 피처'였다. 단 한 번의 경기로 포스트시즌 일정을 마칠 위기의 KT 위즈를 구해내며 시리즈를 2차전으로 끌고가는데 성공했다.
KT는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포스트시즌 두산 베어스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 1차전에서 4-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준플레이오프 진출 팀은 3일 경기에서 정해지게 됐다.
▲ 선발 라인업
KT : 김민혁(좌익수)-멜 로하스 주니어(우익수)-장성우(포수)-강백호(지명타자)-오재일(1루수)-오윤석(2루수)-황재균(3루수)-배정대(중견수)-심우준(유격수), 선발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
두산 : 정수빈(중견수)-김재호(유격수)-제러드 영(좌익수)-김재환(지명타자)-양석환(1루수)-강승호(2루수)-허경민(3루수)-김기연(포수)-조수행(우익수), 선발 투수 곽빈.
작년엔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단 1경기 만에 가을야구를 마친 두산.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난해와 같은 성적으로 정규시즌 일정을 마쳤지만, 4위로 가을야구를 시작하게 됐고, 이승엽 감독은 경기에 앞서 "올해 4위를 했지만 아쉬운 성적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포스트시즌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두산이 1년을 잘 보냈느냐, 실패한 시즌이냐 판단이 설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준비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본인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필승을 다짐했다.
전날(1일) 타이브레이커로 인해 포스트시즌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SSG 랜더스를 꺾고 '막차' 탑승에 성공한 KT 이강철 감독의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이강철 감독은 사상 첫 5위가 4위를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사령탑은 "한 번은 5위팀이 가야 된다. 우리 팀이 마법사다. 또 항상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한번 좋은 기운을 갖고 가고 싶다"며 "우리도 4위 했을 때 KIA 타이거즈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했는데, 1경기만 승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부담스러웠다. 이번에도 두산이 좀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시작부터 무너진 곽빈, 2년 연속 와일드카드의 악몽
이날 경기는 초반부터 KT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올해 15승을 수확하며 다승 공동 1위로 시즌을 마쳤고, 통산 15번의 맞대결에서 8승 3패 평균자책점 2.54로 KT에 매우 강했던 곽빈이 초전박살이 났다. "작년은 내가 망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설욕해야겠다는 느낌보다는 후회 없이 팀원을 믿고 제 공을 던져보겠다. 타자 형들을 믿고, 나는 나를 믿고 던지면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 원 큐에 끝내겠다"고 한 다짐이 지켜지지 않았다.
곽빈은 1회 경기 시작부터 김민혁에게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더니, 후속타자 멜 로하스에게 안타를 맞아 1, 2루 위기에 몰렸다. 이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흐름이었는데, 이후 KT의 폭격이 시작됐다. 실점 위기에서 장성우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선취점을 내줬고, 강백호와 오재일에게도 연달아 공략을 당하면서, 3점을 헌납했다. 문제는 이 실점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곽빈은 이어지는 1, 2루에서 오윤석의 희생번트 때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만들었고, 후속타자 황재균까지 삼진 처리하면서 드디어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런데 배정대에게도 적시타를 맞으면서 간격은 어느새 0-4까지 벌어졌다. 그나마 두산 입장에서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배정대의 적시타에 홈을 파고들던 2루 주자 오재일이 정수빈의 '레이저송구'에 홈에서 아웃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곽빈은 한차례 거센 폭풍이 지나간 뒤 자책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는데, 결국 2회를 넘어서지 못했다.
곽빈은 2회초 선두타자 심우준과 무려 6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쳤으나, 좀처럼 '영점'을 잡지 못하면서 볼넷을 헌납했다. 1회와 비슷한 스타트였다. 이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두산 벤치가 결국 움직이면서, 곽빈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와일드카드에서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마운드를 내려가는 수모를 겪게 됐다. 최고 156km의 빠른 볼도 제구가 되지 않으니, 전혀 위력적이지 않았다.
▲ 정규시즌엔 그렇게 부진했는데, 역시 빅게임 피처 윌리엄 쿠에바스
지난 시즌 중 KT로 복귀해 1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승률왕'을 손에 넣었던 쿠에바스의 올 시즌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31경기에 등판하는 동안 7승 12패 평균자책점 4.10으로 지난 2019년 KBO리그와 연이 닿은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시즌을 보냈다. 앞서 4점대 평균자책점을 두 차례 기록한 바 있으나, 당시에는 10승(2020년)과 9승(2021년)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올해는 부진을 거듭했고,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쿠에바스를 향한 이강철 감독의 신뢰도 떨어졌다.
하지만 2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열리기 전까지 쿠에바스는 2021년 1위 타이브레이커 결정전을 포함해 포스트시즌 7경기(38⅓이닝)에서의 성적은 4승 1패 평균자책점 2.35로 매우 좋았는데, 그 좋은 흐름이 2일 경기로도 이어졌다. 역시 쿠에바스는 '빅게임 피처'였다.
쿠에바스 또한 경기 출발은 썩 좋지 않았다. 1회 시작부터 정수빈과 김재호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1, 2루 위기에 몰렸던 까닭. 하지만 곽빈과 결과는 완전히 상반됐다. 중요한 순간에서 '강타자' 제러드 영을 1루수 직선타로 묶은 뒤 김재환과 양석환을 모두 요리하며 무실점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2회에는 강승호-허경민-김기연을 상대로 'KKK' 이닝을 만들어내더니, 3회에는 수비 실책 등으로 다시 한번 실점 위기에 몰렸으나, 두산 타선을 완벽하게 요리하며 위기를 탈출했다.
쿠에바스는 4회에도 김재환과 강승호에게 삼진을 뽑아내는 등 무결점 투구를 선보였고, 5회 두산의 하위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승리 요건을 갖췄다. 그리고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정수빈과 제러드에게 안타를 맞으며 만들어진 1, 3루 위기에서 김재환을 128km 슬라이더, 양석환을 142km 커터로 연속 삼진 처리하며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완성했다.
▲ 끝내 터지지 않은 두산 타선, 벼랑 끝에 몰린 KT의 기선제압
두산은 정규시즌 막판 자칫 4위 자리를 지켜내지 못할 뻔했다. 타선이 전체적으로 너무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던 까닭이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마운드로 쪽으로 향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지난해보다는 한 계단 오른 4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정규시즌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중요한 경기 때마다 타선이 대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이승엽 감독 또한 타선의 부활을 반겼다.
그런데 며칠의 휴식 동안 타선이 완전히 차갑게 식은 모양새다. 경기 초반 곽빈이 무려 4점을 헌납하고 내려갔지만, 두산에게 추격의 찬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운드에서 발라조빅이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최대한 대등한 경기를 만들어냈는데, 4~5번에 배치된 '115억원' 김재환과 '78억원' 양석환이 중요한 찬스 때마다 번번이 침묵했다. 1회 1사 1, 2루에서 김재환은 1루수, 양석환은 유격수 땅볼로 고개를 숙였고, 두 번째 타석에서도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경기 중반 추격의 찬스까지 모두 살리지 못했다. 6회초 1사 1, 3루. 단 한 점이라도 따라붙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재환과 양석환은 나란히 KT 선발 쿠에바스에게 삼진을 당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역할을 해줘야 할 상황에서 '193억' 듀오의 침묵은 너무나도 뼈아팠다.
반대로 두산의 공격을 잘 막아낸 KT는 마운드의 힘을 앞세워 벼랑 끝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벌었다. 쿠에바스가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간 뒤 김민(⅓이닝)-손동현을 차례로 투입해 7회를 넘겼다. 이어 8회에도 그대로 손동현이 마운드에 올라 정수빈과 김재호, 제러드로 연결되는 상위 타선을 잠재웠고, 9회에는 '마무리' 박영현이 등판해 실점 없이 경기를 매듭지으며 시리즈의 균형을 맞췄다. 이제 3일 벼랑 끝의 맞대결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