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 트로피다. 매킬로이는 1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 비치의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파72) 16, 17, 18번 홀에서 치러진 대회 연장전에서 3홀 합산 1오버파를 적어내 17번 홀까지 3타를 잃은 J.J. 스펀(미국)을 따돌렸다. PGA투어 28번째 우승의 순간이었다.
매킬로이는 지난해 DP월드투어 시즌 최종전 시상식에서 캐디이자 친구인 해리 다이어몬드를 툭 치면서 “올해는 정말 좋은 한 해였어. 4승이나 거두었으니 말이야”라고 말했다. 지난해 DP월드투어에서 최종전을 포함해 2승을 거두었고, PGA투어 시그니처 이벤트인 웰스파고 챔피언십 우승, 셰인 로리(아일랜드)와 팀을 이뤄 취리히 클래식 정상에 섰다.
그러나 US오픈에서 마지막 세 개 홀에서 짧은 퍼팅을 두 개나 놓치며 브라이슨 디샘보(미국)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다른 3개의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이후 아이리시 오픈에서 라스무스 호이가드(덴마크)에게 역전패를 당했고, BMW챔피언십에서 빌리 호셸(미국)에게 연장전 끝에 패했다. PGA투어와 DP월드투어에서 4승을 했지만, 그를 좋아하는 골프팬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한 해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즌 말미에 매킬로이는 자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자신감은 골프 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그가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의미였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골프 팬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PGA투어의 모든 선수와 PGA투어에 새롭게 도전하는 모든 선수가 그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더 열심히 연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PGA투어를 지배한 선수는 스코티 셰플러(미국)였다. 그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일자형 퍼터를 말렛 퍼터로 바꾸고 나와 우승했다. 그로부터 5연승을 달리며 거의 모든 주요 대회를 석권했다. 그가 퍼터를 바꾸기 전에 매킬로이의 퍼터 교체 조언이 있었다. 셰플러는 “반드시 매킬로이의 조언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매킬로이는 “다시는 셰플러에게 조언하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셰플러의 독주를 보면서 그의 독주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 골프 팬이 많았다. 셰플러는 강한 멘탈을 바탕으로 놀랍도록 안정적인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그의 독주를 예상한 이유로는 다른 본질적인 것도 있었다. 타이거 우즈가 경기를 지배할 때 경쟁자와 미래의 경쟁자인 어린 선수들은 그를 모방했다. 셰플러의 스윙은 독특하고, 심지어 균형 잡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경쟁자들이 그를 따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경기 방식은 정열적이지도, 아름답지도,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따라 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그의 독주는 생각보다 오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따라 하기 시작한 선수가 나타났는데, 뜻밖에도 그는 매킬로이였다. 셰플러보다 일곱 살이나 많고, 데뷔하자마자 골프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또 셰플러가 우승하지 못한 디오픈, US오픈, PGA챔피언십을 이미 11년 전에 우승했고, 현역 선수 중 가장 파워풀하고 아름다운 스윙을 구사하는 매킬로이였다.
매킬로이는 2024년 셰플러의 경기를 총평가하면서 보기 없는 라운드가 많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셰플러는 선두권에 있거나 중위권에 있거나 하위권에 있거나 코스를 공략하는 방법은 일관되고 꾸준한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도 매킬로이를 놀랍게 했다. 매킬로이는 셰플러에게는 자신의 내부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공격적 충동이 없다는 것도 발견했다. 셰플러는 정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모색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계속 뛰어넘으려는 초인적 태도도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매킬로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매킬로이는 셰플러를 보며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했는데, 아마도 그런 작심을 한 순간에 그는 자신의 전성기를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매킬로이는 자신의 올해 첫 출전 PGA 대회인 AT&T 페블비치 프로암을 우승하여우승상금 360만 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PGA투어 최대 상금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2500만 달러)에서 우승상금 45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오랫동안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했던 자부심을 내려놓은 것은 겸손이고 깨달음이다. 한참 후배이자 최대 적수인 셰플러에게 배우려고 결심한 것과 셰플러의 영향을 숨기지 않은 것은 겸손이고 용기다. 겸손과 용기가 매킬로이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올해 매킬로이는 어쩌면 지난해 셰플러에 버금가는 성적을 낼 수도 있다.
올해 골프 팬은 메이저 대회에서 셰플러와 매킬로이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듯 같은 골프, 같은 듯 다른 이들의 골프를 보면서, 서로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들이 상대의 장점을 어떻게 흡수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재미와 함께 큰 교훈을 줄 것이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