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샌드위치 만들어 파는 육상 선수의 ‘올림픽 꿈’…60m 허들 세계 3위 기록 세운 식품매장 직원의 열정

입력
2024.05.17 07:00








딜란 비어드의 활약을 소개한 영상./소셜미디어




고기를 다듬고 샌드위치를 만든다. 늘 웃으며 손님들을 대한다. 설거지를 하고 바닥 청소를 마쳐야 끝이 난다. 매일 그렇다. 주중에는 밤에만 일한다. 대신 주말에는 새벽 6시부터 밤 11 시 사이에 교대 근무를 한다.

고된 삶의 근로자 얘기가 아니다. 올해 세계 3위의 기록을 세운 미국 허들 선수의 일상.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할인점 월마트 식품 매장의 정규 직원. 운동부가 없는 곳이니 모든 일을 빡센 아침 근육 운동과 녹초가 되는 오후 연습을 다 소화하면서 감당한다. 6월의 파리 올림픽 마지막 선발전을 앞두고 잠시도 쉴 틈 없다.

유흥은 꿈도 못 꾼다. “그런 것은 아예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매장 일이 끝나면 그냥 쓰러진다. 운동·연습·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60m허들 선수 비어드./소셜미디어




딜란 비어드(26)는 지난 2월 60m 허들 경기에서 7.44초로 우승했다. 미국 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덕에 5월 3일 올림픽 최종 선발전 출전 선수로 뽑혔다. 며칠 뒤 그는 기부 사이트에 “파리 올림픽을 위해 달리는 비어드를 도와주세요”란 글을 올렸다.

“매일 저를 이끌고 가는 허들 경기에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월마트 식품매장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면서도 육상 세계에 저의 존재를 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근 성적은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60m, 110m 허들에서 떠오르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립니다. 밀로즈 대회에서 현재 세계 3위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림픽 선발대회 출전권을 확보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기회입니다.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노력과 재능만으로 모자랍니다. 돈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없어야 훈련과 준비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적든 많든 모든 도움이 저를 올림픽 미국 대표선수의 꿈을 이루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가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간절한 호소였다. 5만 달러 목표. 15일(현지시간) 현재 362명이 기부해 2만507 달러가 모였다,

■미국에는 진천선수촌도 지자체·공기업 운동부도 없다

스포츠 강대국, 스포츠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선수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나라와 기업들은 뭐하나? 참으로 의아할 것이다. 올림픽 근처에도 못 가면서 국민 세금 등으로 주는 엄청난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한 한국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는 한국의 진천선수촌 같은 곳이 없다. 한국처럼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 개인 기업이 꾸리는 운동부도 없다. 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에도 없다.

보건학 석사인 비어드는 스스로 벌어 생활하고 훈련한다. 후원사도 없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이니 지원이 없다는 식의 어떤 불평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일부 프로종목 선수들을 빼고 미국 선수들은 대부분 그렇다. 후원받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몇 명을 빼고는 후원을 받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런던 올림픽 4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등을 했던 허들 선수 롤로 존스도 프로로 뛰면서 일을 했다. 그녀는 건축자재 등을 파는 홈 디포, 식당, 체육관 등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몇 차례나 올림픽에 도전했다. 후원사 지원만으로는 훈련비나 원정 경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도 종목 별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 육상 등 여러 종목 선수들은 무척 어렵게 운동을 한다. 육상의 경우 상금이 결린 ‘다이아몬드 리그’ 등 1년에 25차례 열리는 국제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모두 나가, 전부 우승해야 38만 달러를 번다. 그래봐야 프로 미식축구와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 최저연봉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선수든 1년에 몇 차례 대회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나간다 해도 우승은 늘 할 수 없다. 상금으로 버티는 선수는 없다.

■육상 강국을 만드는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

노아 라일즈는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100m, 200m, 400m 계주에서 우승했다. 그는 최근 스포츠 용품사와 2028년까지 후원 계약을 연장했다. 우사인 볼트 이후 최고 액수. 1년에 200만 달러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식축구 선수 최고 연봉 5,500만 달러의 3.6%밖에 되지 않는다. 프로농구 선수 평균 연봉 1,000만 달러의 5분의 1이다. 비교도 할 수 없다.

그것도 볼트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인 라일즈만 그런 대접을 받는다. 미국 2위 선수는 아주 작은 회사 후원. 4위 선수는 후원도 없고 선수복 입는 대가도 못 받는다.

그래도 미국 육상은 세계 절대 강국이다. 선수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종목에 뜨거운 열정으로 헌신하기 때문이다. 한국 육상은 선수들이 직장 운동부에서 안정된 월급과 훈련비를 지원 받으면서도 파리 올림픽 나가는 선수는 딱 1명.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조차 고작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땄을 뿐이다. 육상 등 많은 종목에서 미국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데도 선수들 국제경쟁력은 창피할 정도다.

비어드는 세계 정상의 허들 선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한다. 그러면서 허들에 꽂힌 것처럼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파는 자신의 직업에 온몸을 던진다. “일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청소 작업량은 어마어마하다. 내일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것은 쉬운 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월마트 책임자는 “딜란의 근면성은 다른 차원에 있다”고 말했다. 월마트는 2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매일 중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올림픽으로 달려가는 비어드의 삶은 한국 선수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힘든 일을 마다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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