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22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화두는 단연 전주고 우완이자, 2025년 KBO 신인드래프트 최대어 중 하나로 평가받는 정우주(전주고 3학년)였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저력의 덕수고가 조금 더 앞서 있다는 평가였지만, 그 객관적 전력을 홀로 뒤집고도 남을 에이스가 전주고에 있었다.
덕수고는 이미 에이스 투수들인 정현우와 김태형을 이전 경기에서 소모해 이번 결승전에는 나갈 수 없었다. 반면 전주고는 가장 믿을 만한 에이스 카드인 정우주를 아낀 채 결승에 왔다. 하루 105개의 투구 수 제한을 놓고 양팀이 공방전을 벌일 참이었다. 전주고는 정우주가 105구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잡으며 경기를 만들어가야 했다. 반대로 덕수고는 정우주를 최대한 물고 늘어져 빨리 끌어내려야 했다.
정우주의 괴력은 1회 잘 드러났다. 예쁜 폼에서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에 팡팡 꽂혔다. 왜 올해 고교 최대어 중 하나인지를 잘 드러내는 장면이자, 이날 랜더스필드에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파견된 이유를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는 충격적이었다. 랜더스필드에는 트랙맨이 설치되어 있고, 1군 경기와 같은 조건에서 데이터가 제공됐다. 트랙맨의 집계에서 정우주의 1회 최고 구속은 155㎞까지 찍혔다. '정우주가 155㎞를 던진다'는 아마추어 야구계의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 정우주는 1회 150㎞를 상회하는 공을 연신 던지며 덕수고를 위기로 몰고 갔다.
단순히 구속만 빠른 게 아니었다. 제구도 잘 됐고, 회전 수도 일품이었다. '트랙맨'의 집계에서 정우주의 포심패스트볼 회전 수는 분당 2600회 이상이 찍혔다. 현재 KBO리그 1군에서 시속 150㎞ 이상, 분당 회전 수 2600회 이상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수직무브먼트 또한 1군 기준으로 평균 이상은 됐다. 패스트볼 하나의 데이터는 기가 막히고 찍히고 있었던 것이다. 릴리스포인트가 낮고, 익스텐션이 짧아 아직은 더 판단할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고교 야구 수준에서는 치기 쉽지 않은 데이터였다.
하지만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1회 거의 완벽한 피칭으로 경기를 시작한 정우주의 투구는 2회부터 다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구가 안 됐다. 덕수고 타자들이 슬라이더를 골라내자 정우주는 포심 위주로 승부했지만 존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볼넷이 많이 나왔다. 실점을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익스텐션이 짧아지는 등 1회와 다른 데이터들이 여럿 발견됐다.
정우주로서는 이날 최대한 많은 이닝을 잡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구속을 줄이고 스태미너를 아끼려는 모습도 드러났다. 한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에이스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덕수고 타선도 짜임새가 있었고, 뛰는 야구를 통해 정우주와 전주고 내야를 흔들었다. 왜 덕수고가 최근 18연승으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지 그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분투했던 정우주지만, 결국 5-3으로 앞선 5회 오시후에게 동점 투런포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투구 수가 105개를 향하고 있던 시점에서 덕수고 더그아웃에는 안도감이 돌았고, 결국 덕수고가 7-5로 이기며 이마트배 2연패에 성공했다.
덕수고도 정우주라는 투수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경기 후 정윤진 덕수고 감독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였다. 경기 전 "우리 아이들이 정우주를 잘 공략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지만, 경기 후 만난 정윤진 감독은 "거짓말을 했나 싶었다"고 빙그레 웃었다. 감독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자신 있는 발언을 해야 했지만 정작 정우주와 전주고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 감독은 "사실은 전주고등학교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정말 좋은 팀이고 올해 무조건 우승을 할 것이다. 운이 우리에게 있었을 뿐 (전주고도) 우승할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라고 상대를 치켜세우면서 "오시후가 투런포도 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사실은 오늘 MVP는 김영빈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 던져줬다"고 고르게 활약한 선수들을 칭찬했다.
선수들도 정우주의 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비를 했다. 이번 대회 MVP로 선정된 박준순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고생한 1학년 후배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1학년 후배들이 나름의 기법을 통해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도와줬고, 그것이 정우주 공략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1학년 때 입학한 선수들이 선배들이 해왔던 것을 근성이라든지 하고자 하는 열망을 배운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전통이다. 아이들이 1학년 때부터 그런 것을 보고 커 나가면서 시너지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비록 이날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정우주는 공의 위력 자체는 확인하며 졸업반 시즌을 열었다. 향후 대회에서 더 성장하는 모습으로 스카우트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이날의 실패가 성장의 거름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저작권자 Copyright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