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Focus] ‘新르네상스’ 펼쳐낸 韓 사격…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달콤한 결실

입력
2024.08.07 06:00
한국 사격대표팀의 반효진(왼쪽부터), 양지인, 김예지, 오예진이 4일 프랑스 파리에 마련된 코리아하우스에서 대한민국선수단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황금세대가 아니다.

한국 사격대표팀은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을 남긴 채, 2024 파리 올림픽을 끝마쳤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목에 걸어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을 썼다. 종전 2012 런던(금3·은2) 성적표를 넘어선 ‘샤토루 신화’의 완성이었다. 진종오 은퇴 이후 잊혀 가던 사격은 뜨거운 금빛 총성과 함께, 제 손으로 하이라이트를 받아들었다.

◆한 걸음씩

‘포스트 진종오’라는 과제는 매우 어려웠다.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를 딴 진종오는 사격계를 넘어 한국 스포츠계 전체의 레전드로 평가받는다. 그런 인재를 다시 발굴하는 건 그렇게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2020 도쿄에서 금메달 명중이 멈춘 사격 대표팀은 칼을 갈았다. 홍승표 전 사격대표팀 총감독을 필두로 젊은 자원 발굴에 온 힘을 기울였다. 물론 뼈를 깎는 변화는 시작부터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AG)도 금2·은4·동8에 그쳤다. 보수적으로 잡은 목표치를 겨우 채우는 수준이었다.

한국 사격 대표팀의 박하준이 2024 파리올림픽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본지와의 인터뷰에 나선 홍 전 감독은 “2021년 10월부터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준비를 위해 새 대표팀을 소집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했다”고 세대교체의 출발점을 돌아봤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10번의 올림픽 동안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양궁처럼, 선수들을 오로지 정량적인 수치로 평가하는 데 집중했다. 경험치를 위한 국제대회라도, 철저하게 실력과 결과물에 입각해 판단을 내렸다. 매 국제대회를 앞두고 경기력향상위원회와 함께 철저한 측정사격을 거치며 최고의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자신의 재능을 중요한 무대에서 발휘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자연스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배경이다. 세대교체의 이상적인 절차였다.

또 홍 전 감독은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애쓰는 중·고등학교 유소년 지도자들이 이번 파리 신화의 숨은 공신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들이 그렇듯 유소년 사격도 선수 확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2000년대생 선수들처럼 남다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사격으로 이끄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많은 지도자들이 열정을 가지고 선수들을 발굴한 덕”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과감한 변화

한국 사격 대표팀의 2000년대생 황금세대들이 거침없는 메달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다. 사격 첫 번째 메달을 신고한 오예진(오른쪽)이 지난달 28일 공기권총 여자 10m 금메달을 따낸 후, 은메달을 따낸 동료 김예지와 함께 시상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결정적이었던 건 역시나 대한사격연맹이 시도한 혁신이었다. 사격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결선에서 최저 점수 선수를 차례로 떨어뜨려 순위를 다투는 엘리미네이션 방식을 도입했다. 이번에 메달을 따낸 대부분의 태극전사들이 거쳤던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대표팀 선발 방식은 5번의 본선 무대에서 누적된 총점을 기준으로 두고 있었다. 메달을 가를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선수들을 골라낼 수 없는 구조였던 셈.

과감하게 움직였다. 파리에 나설 태극마크를 부여하는 선발전에는 처음으로 결선 방식을 도입했다. 당시 경기력향상위원회장을 맡던 이은철 현 연맹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파리에 나선 태극전사들은 잇따른 슛오프에도 흔들림 없이 탄환을 중앙에 명중시켰다.

홍 전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격에 엘리미네이션 제도가 도입된 건,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 흐름을 만들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그 트렌드에 맞춰 연맹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게 큰 효과를 봤다”며 “신기하게도 본선에서는 매번 1등 하다가 결선만 가면 5∼6위로 가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승부를 가르는 순간에 사대에 서는 게 쉽지 않다. 그 긴장감을 떨쳐낼 수 있는 선수들을 찾아낸 것이 이번 호성적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짚었다.

◆든든한 지원 속에

한국 사격 대표팀이 대회 8일 차인 지난 3일, 한국 선수단으로는 8번째이자 사격 종목으로는 3번째 금메달을 신고했다. 그 주인공인 양지인이 여자 25m 권총 우승을 일궈내고 시상대에서 금메달과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전통의 효자종목, 양궁과 펜싱 등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 바로 재계의 탄탄한 금전적 지원이다. 양궁은 현대차, 펜싱은 SK그룹과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

사격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0년 넘게 물심양면 후원을 아끼지 않은 한화그룹이 만들어둔 토대가 이번 파리 신화로 이어졌다. 사격 사랑이 두터웠던 김승연 회장을 향해 사격인들이 감사의 목소리를 잊지 않는 이유다.

홍 전 감독도 “한화 그룹이 연간 10억원, 총 200억원 가까이 우리 사격을 도와주셨다. 덕분에 대표팀 규모도 늘릴 수 있었을뿐더러 적극적인 국제대회 파견, 쾌적한 훈련 환경 조성 등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이번 파리 신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성과가 아니다. 모든 분들의 도움과 사격 발전을 향한 열망이 모여 톱니바퀴가 착착 맞아 들어간 결과물”이라고 밝게 미소 지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Advertisement
스포키톡 새로고침
로그인 후 스포키톡을 남길 수 있어요!
첫 번째 스포키톡을 남겨주세요.
이미지 실시간 인기 키워드
  • 오타니 49호 도루
  • 이강인 교체 출전
  • 강동궁 PBA 우승
  • U-20 여자월드컵 북한 결승 진출
  • 토트넘 리그컵 16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