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혜진을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응원이었다.
안혜진은 V-리그 여자부를 통틀어도 손에 꼽는 고점을 보여줄 수 있는 세터다. 특히 빠르게 아포짓을 활용하는 능력과 날카로운 서브만큼은 리그 최고다. 그러나 그런 안혜진을 늘 괴롭혀온 것은 부상이었다. 무릎과 어깨에 크고 작은 부상들을 계속 당하면서 점점 코트를 비우는 시간이 늘어갔다. 도드람 2024-2025 V-리그에서도 팀과 함께 시즌을 시작하지 못한 안혜진이었다.
다행히 안혜진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5~6라운드에는 꾸준히 선발로 코트틀 밟으며 건재함을 드러냈다. 오히려 부상 이전보다 경기력은 더 올라온 느낌도 있었다. 그렇게 시즌을 잘 마무리한 안혜진은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땡큐 멤버십’ 행사에 참여해 GS칼텍스 팬들과 함께 2024-25시즌을 떠나보냈다.
행사 종료 후 <더스파이크>와 만난 안혜진은 “많이 아쉽다. 수술을 연달아 받는 바람에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그래도 코트로 돌아와서 팀 분위기를 꼭 살려보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목표를 이룬 것 같다. 다음 시즌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비시즌에 몸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시즌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안혜진이 직접 언급했듯 이번 시즌 역시 안혜진을 괴롭힌 것은 부상이었다. 시즌 시작도 팀과 함께하지 못했고, 경기 감각이 올라오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고난이 처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보니, 심리적인 어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으로 꺼내는 이야기 같다”고 운을 뗀 안혜진은 “잠깐 배구가 싫어져서 ‘이제 그만할까’ 고민도 했다. 너무 힘들었다. 재활 과정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관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에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솔직하게 재활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배구공을 내려놓을 생각을 했을 정도로 힘들어 했던 안혜진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안혜진은 “옆에서 응원해준 동료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고, 부모님과 언니도 정말 큰 힘이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잘 복귀할 수 있었고, 몇 경기 안 뛰긴 했지만 시즌을 잘 마무리한 것 같다”며 응원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코트로 돌아온 안혜진은 오히려 부상 전보다 더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역시 안혜진의 GS칼텍스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자주 들려왔다. 하지만 안혜진은 “아마 상대 팀들이 (김)지원이에 맞춘 분석을 해둔 덕분에, 내가 갑자기 돌아온 상황은 분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공격수들이 내 템포에 맞게 잘해주기도 했다”며 겸손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돋보인 부분은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와의 찰떡 호흡이었다. 빠르고 타점이 사는 백패스로 아포짓을 활용하는 능력이 좋은 안혜진과 후반기 팀 사이클의 상승과 함께 절정의 공격력을 발휘한 실바의 조합은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안혜진은 “지난 시즌에 부상 때문에 거의 호흡을 맞춰보지 못해서, 이번이 사실상 처음 제대로 맞춰보는 호흡이었다. 실바는 워낙 좋은 공격수라, 내가 잘 못 올려줘도 다 잘 때려준다. 책임감도 워낙 강한 선수다. 그래서 나도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면서 서로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고 실바에게 공을 돌렸다.

안혜진은 자신이 없는 동안 세터라는 중책을 함께 도맡은 후배 김지원과 이윤신에게도 따뜻한 한 마디를 전했다. 그는 “연패가 길어지던 시기에 두 친구가 보내는 힘든 시간들을 밖에서 지켜봤다. 부상자가 많이 나오면서 경기를 풀어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잘 극복해줬다. 좋은 경험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선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지원이는 막바지에 몸이 좀 좋지 않았는데, 마무리는 같이 잘 할 수 있어서 좋다”며 동생들을 한껏 격려했다.
그렇게 서로가 응원하고 힘을 보태며 치른 GS칼텍스의 시즌은 이제 끝났지만, 안혜진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그는 “아직 재활은 조금 더 해야 한다. 감각적인 부분에서도 끌어올려야 할 것들이 있다. 또 연구를 더 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다”며 더 나은 시즌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시즌 내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다음 시즌에도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팬들에게 전하는 인사도 빼먹지 않은 안혜진이었다.
그토록 잘하고 좋아하는 배구를 포기할까 고민했을 정도로, 안혜진에게는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힘든 시간들이 또 닥쳐올지 모른다. 하지만 안혜진은 강하다. 자신을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는 한, 앞으로도 안혜진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묶을 것이다.
사진_장충/김희수 기자, KO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