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가치 체계 붕괴' 무생물 정몽규호, 끝 모를 추락은 어디까지

입력
2024.05.10 06:45
수정
2024.05.10 06:45
 대한축구협회가 상주하고 있는 축구회관 로비. 화장실 등 곳곳에는 가치 체계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현재 이 가치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축구가 함께하는 행복한 대한민국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아시아 축구연맹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회장 방한 당시 사진에서 볼 수 있었던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 아시아 축구연맹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회장 방한 당시 사진에서 볼 수 있었던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뭐 그런 자세인가 보죠."

축구계 바닥 민심이 터져 오르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현 집행부를 향한 분노가 구들장 끓어오르는 듯이 타오르고 있다. 8일 축구지도자협회가 "졸속행정에 한국 축구가 퇴보하고 있다"라며 정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현장 일선에서도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이미 국민적인 감정은 정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함과 동시에 내년 1월 차기 회장 선거 출마 자격 자체를 확인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다.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탈락에 2023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 탈락에 따른 올림픽 10회 연속 본선 진출 무산 등 행정적인 미숙이 대표팀 결과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축구협회 대응은 성의 없는 사과문 한 장이 전부다.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하여'라는 사과문처럼 보이는 글은 (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이라 명시하지 않고 협회 소식 중 하나로 올렸다) 정몽규 회장 명의가 아닌 축구협회 명의였다.

뼈가 시린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정 회장은 깊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져도 무대응이다. 당장 오는 15일 태국 방콕에서 예정된 아시아 축구연맹(AFC) 총회에서 단독 입후보한 집행위원 선거 출마에 올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외교력이 없지만 않으면) 단독 출마에서 떨어질 일이 없는 정 회장이다. 국제기구 임원을 하면 차기 회장 선거에 나설 자격 조건은 갖춰지기 때문이다.

외교력 복원은 한국 축구의 숙제지만, 아시아 몫의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을 뽑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정 회장 개인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반대표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면 포인트다. AFC에 기여가 거의 없는 한국 축구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오죽하면 지난달 방한했던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회장이 "한국은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4대 강국으로서 경기장(pitch)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아시아 축구의 리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기업, 정부가 아시아 축구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협업할 수 있게 협회가 힘 써주길 기대한다"라고 했던 말을 그대로 소개했을까 싶다. 기업. 정부의 관심 유도는 대관 업무를 하는 축구협회의 몫이기도 하다. 대관 업무의 오작동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협회 내 유능한 직원들은 무생물처럼 일하고 있거나 일찌감치 조직을 떠났다. 전 축구협회 직원 A씨는 "일선 직원들이 협회가 변해야 한다고 소리치면 중간 관리자까지는 이해해 주지만, 더 윗선에서는 보신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회장에게 그럴싸하게 포장해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직원들은 뻔히 아는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리가 지키고 싶을까"라고 주장했다.

지난 아시안컵 기간 소위 내기에 사용하는 칩을 현장에 반입해 문제가 됐던 직원은 징계받았지만, 지난 U-23 아시안컵 기간 다시 카타르에 갔다가 돌아와 타부서로 이동했다. 징계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업무 복귀가 가능함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자칫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전 축구대표팀 감독. ⓒ곽혜미 기자 충남 천안에 조성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건립 현장을 찾은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 축구연맹 회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등 주요 관계자. ⓒ대한축구협회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6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에서 인도네시아와 2-2 연장 혈투 끝에 승부차기로 졌다. 9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이번 대회를 통해 10회 연속 진출 대기록을 조준했지만 '언더독' 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무려 40년 만에 본선 진출 실패다 ⓒ대한축구협회

잘못된 보고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축구협회가 동영상까지 제작해 팬들에게 알렸던 A매치 성사 과정이다. 축구협회가 단독으로 A매치 일처리를 한다고 소개했다. A매치는 전문 매치 에이전트가 없이는 성사가 쉽지 않다. 해당국 협회는 물론 후원사, 선수 소속팀 등 이해 관계자 사이의 이익이 고도로 얽혀 있다. 계약 사항이 상당히 복잡해 대리인이 없으면 조율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협회끼리 합의해 이뤄지는 경기는 극히 드물다. 과거 친선경기 성사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매치 에이전트가 성사해도 선의의 거짓말로라도 '이번에는 협회가 했다고 (회장에게) 보고하게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직원도 성과를 쌓아야 하니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해당 동영상을 보면 매치 에이전트 역할은 거의 없게 나온다. 너무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대표팀은 영국 카디프에서 웨일스, 뉴캐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을 치렀다. 사실 이 2연전은 웨일스전을 치른 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로 이동해 튀니지와 원정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초청료, 항공, 숙박 모두 튀니지 축구협회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반대가 됐다. 튀니지가 10월 한국으로 모든 지원을 받고 온 것이다. 튀니지 대신 뉴캐슬에 있었던 사우디를 선택한 것이야 축구협회의 마음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나 진짜 원정 경험이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클린스만호는 사우디전 전까지 첫 승을 하지 못해 위기에 몰렸던 바 있다. 좋은 조건을 내치고 지원을 해주며 불러 놓고 정 회장에게는 직접 성사했다는 보고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긴 시간 걸려 왔던 튀니지는 100%가 아닌 전력으로 왔고 0-4로 졌다.

협회는 카타르 참사 이후 단순 사과 외에는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축구협회는 무리 없이 U-23 월드컵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면 경기 주도권을 쥐고(=파울루 벤투 감독이 추구한 빌드업에 기반한 주도형 축구) 하는 것이 아닌 관리형의 한국 축구 방식을 협회 기술리포트에 발표하려고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황보관 전 기술본부장이 연구 주체였다는 것이 복수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렇지만, 탈락으로 분위기가 나빠졌고 이 발표는 유보됐다.

올해 시작부터 한국 축구의 가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는 땅에 떨어졌고 대회와 리그 정책 기능 강화를 통한 책임은 보이지도 않는다. 자생력 강화를 위한 육성도 식물 상태다. 지도자를 육성하던 전문 강사 중 일부는 현장에서 빠졌다. 몇몇은 프로축구연맹 기술연구그룹(TSG) 요원으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베테랑 요원 A씨에게 왜 P급 라이선스 교육 등에서 빠졌냐고 묻자 "그냥 물갈이 됐다고 생각하면 가장 편하겠지만, 때가 되면 언젠가는 (축구협회의 행태에 대해) 말을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라며 아직은 '을'의 위치에 있는 자신이 입장을 내놓을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기술발전위원장으로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은 마이클 뮐러 전 전력강화위원장은 보직 없이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다. 축구회관에 행사가 있어 등장하면 점심시간에 혼밥을 하는(또는 통역 담당 직원만 대동해 식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소년 강화를 위해 영입해 놓고 사실상 방치 상태다. 뮐러 전 위원장과 종종 소통한다는 한 축구인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으니 어떤 형식으로라도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A대표팀 성적에 유소년 담당 임원까지 휩쓸리면 누가 일을 제대로 하겠나. 협회 내 직원 상당수는 그와 소통이 단절됐다"라며 웃긴 현실에 혀를 끌끌 찼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무능력으로 희화화 됐던 부분이 있지만, 유소년 육성 철학은 분명했다는 것이 내부 평가다. 선임 당시는 전문가로 소개해 놓고 A대표팀과 이사회의 어설픈 결정으로 유탄만 맞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급전을 얻을 궁리만 가득하다. 최근 돌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A매치 중계권을 무려 10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팔겠다는 것이다. 6월이면 현재 중계권사와 계약이 끝난다. 3~4년도 아니고 10년 중계권 판매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외부 비판에 상관없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유럽 정상권 팀에 있는 선수들이 있을 때 거액에 중계권을 팔아서 차기 회장이 누가 됐든 재협상은 쉽지 않게 손발을 묶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충남 천안에 조성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건립 기금 충당이다. 축구인들에게 기부를 받을 정도로 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거액의 대출을 받은 협회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중계권료 확보를 통해 한국 축구의 미래 자원 육성을 위한 인프라 조성에 기여한다고 홍보할 수 있고 대표팀이 최고의 스포츠 마케팅 콘텐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정 회장의 치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자금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끌어 쓰는 것이라는 점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두 배가 된다.

축구협회는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모든 시선을 돌려놓고 있지만, 긍정적인 소식은 들려 오지 않고 있다. 파리행 불발에 책임을 지는 임원은 한 명도 없다. 자리 보전하기 바쁜 축구협회에서 향후 이탈하는 직원이 얼마나 생길지, 그것이 더 걱정된다. 음지에서 일하는 유능한 직원들은 고위층의 잘못에 욕받이가 되고 있다. 한 직원은 "요즘처럼 축구협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외부에 말하기 부끄러운 적이 없다. '그냥 시간아 흘러라. 나는 일하다 간다'라는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과연 한국 축구 행정은 어디까지 망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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