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함, 조건 없음? 국대 사령탑 선임 작업을 믿기 힘든 이유[김세훈의 스포츠IN]

입력
2024.04.30 08:43
수정
2024.04.30 08:43


30대 초반 미혼 남성 A씨는 결혼을 전제로 여성을 찾고 있다. 그는 결혼정보회사, 중매쟁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을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성별 : 여성 △나이 : 연하 원함. 3세 아래까지 가능(연상은 사양) △직업 :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함(교사, 공무원 등) △연봉 : 4000만원 안팎 △종교 : 기독교 △향후 거주지 : 경기 성남 △자녀 계획 : 최소 두 명(변동 가능) △취미 : 운동을 즐기는 등 활동적인 여성 △부모 봉양 : 한달 1회 본가, 처가 방문 △음주 : 즐기는 정도만….

A씨는 선호하는 여성상을 가능한 한 정확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것이다. 그래야 서로 잘 맞을 수 있는 대상자를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을 선택할 상대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정보회사, 중매쟁이들은 남녀 결혼 희망자들로부터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매칭에 나선다. 정보가 확실할수록, 자세할수록 만남은 지속될 가능성도 크고 결혼에 골인할 확률도 커진다. 물론 인간관계는 만나기 전과 만난 후, 서로 만나서 알아가면서 많은 게 달라지지만 일단 만남을 시작하는데는 정확하면서도 솔직한 상호 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회사가 인재를 찾을 때도, 대학·연구소가 연구원을 초빙할 때도, 물론 결혼 상대를 구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자격과 레퍼런스, 근무 조건 등을 제시하게 마련이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가대표를 맡고 있는 김판곤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은 때였다. 2018년 7월 그는 대표팀 감독을 뽑기 전에 ‘대표팀 감독 직업 설명서’(Job Description)을 발표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능동적인 축구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하고 지속적으로 득점 상황을 창조하는 전술 △주도적 수비 리딩으로 상대 실수를 유발하는 적극적 전방 압박 △높은 전술 이해도와 경기 운영 능력 △안정적인 볼 소유에 따른 적극적인 공격 전환 △공간, 시간, 체력으로 경기 지배 △강한 승부욕 △상대와 심판과 동료를 존중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 등을 한국 감독이 갖춰야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물론 다소 이상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 감독이 되고 싶은 후보들은 자신이 조건들에 부합하는지,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과 어느 정도 비슷한지, 지금 당장은 맞지 않아도 이를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는 확실했다. 김 위원장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의 격에 맞는 감독, 우리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선임된 파울로 벤투 감독은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벤투에 앞서 김판곤 위원장이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뽑은 김학범 감독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후임 감독 선임 작업을 하고 있다. 몇몇 외국인 감독들이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나름대로 이름 있는 지도자들도 있지만 우리 축구에 맞는지가 관건이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2월 대표팀 감독의 선임기준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감독의 전술적 역량 △취약한 포지션을 해결할 육성 능력 △지도자로서 성과를 냈다는 명분 △풍부한 대회 경험을 갖춘 경력 △선수, 축구협회와 축구 기술·철학에 대해 논의할 소통 능력 △MZ 세대를 아우를 리더십 △최상 코치진을 꾸리는 능력 △이상의 자질을 바탕으로 믿고 맡겼을 때 성적을 낼 능력 등이다. 이런 것들은 채점표, 평가 항목일 뿐이다. 한국축구가 추구하는 축구가 무엇인지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앞서 결혼 상대를 구하는 A씨가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이 “성별, 직업, 나이, 연봉, 취미 등을 보겠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항목만 늘어놓을 뿐 선호하는 방향과 내용이 없으면 매치 메이킹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현재 협회 강화위원회가 진행하는 감독 선임 작업을 신뢰하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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