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홈으로 쓰는 잠실 구장은 미국 기준으로도 큰 구장이다. 어설픈 홈런 타자가 살아남기 쉽지 않다. KBO 리그 원년 이후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시즌 30홈런 이상 기록한 타자가 두산과 LG 두 팀 역사를 통틀어 불과 6명이다. 힘 좋은 외국인 타자 중에도 타이론 우즈(두산), 로베르토 라모스(LG) 단둘이다. 우즈 이후 두산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타자는 장타보다 콘택트 능력이 돋보이는 호세 페르난데스였다.
두산 새 외국인 타자 제러드 영(등록명 제러드)이 30일 광주에서 KIA를 상대로 KBO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 중반 대타로 나와 세 타석을 소화했다. 첫 두 타석은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마지막 세 번째 타석에서 바깥쪽 공을 밀어쳐 챔피언스필드 왼쪽 담장을 직접 맞히는 2루타를 기록했다.
전형적인 홈런 타자는 아니다. 키 1m 85, 체중 92㎏으로 다른 외국인 타자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국내 타자들과 비교해도 체격 조건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미국 시절 기록을 살펴봐도 그렇다. 제러드는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 산하 AAA팀에서 74경기를 뛰는 동안 11홈런만 기록했다. 대신 2루타를 15개 때렸다.
홈런을 치기 위한 이상적인 발사각은 25~35도 정도다.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제러드의 올 시즌 평균 발사각은 11도다. 시카고컵스 산하 AAA에서 뛰었던 지난 시즌엔 12도를 기록했다. ‘뜬공 혁명’이 오래전부터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저 발사각을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홈런이 아닌 안타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타구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다. 발사각으로 치면 12~13도에서 기대타율이 가장 높다. 이번 시즌 MLB에서 12~13도 발사각 타구 중 80.2%가 안타로 연결됐다.
타구 속도가 빠를수록 당연히 안타가 될 확률은 더 올라간다. 제러드는 올 시즌 평균 타구 속도 148㎞를 기록했다. 하드 히트(타구 속도 152㎞ 이상) 비율은 50%다. 타구 방향도 좌(30.6%)-중(27.3%)-우(42.1%) 편차가 적다. 30일 KIA전 세 타석도 모두 좌익수 방면, 밀어친 타구가 나왔다. 요컨대 발사각은 낮지만 빠른 타구로 2루타를 양산할 수 있고, 좌 중 우 어디로든 타구를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리그 적응만 잘한다면 잠실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 유형으로 기대할 만하다. 어차피 두산에 홈런 타자는 많다. ‘눈 야구‘가 되면서 외야 좌·우중간을 가르며 2루타 이상을 양산할 수 있는 타자가 오히려 더 필요할 수 있다. KIA전 마지막 타석에서 보여준 타구가 계속해서 나온다면, 시즌 40여 경기를 남기고 외국인 타자를 교체한 두산의 승부수는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제러드는 아직 잠실 구장을 눈으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큰 구장이라는 건 알고 있다. 자신감도 있다. 제러드는 잠실 구장과 관련해 “당연히 홈런 수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외야 수비수 사이 공간이 크니까 오히려 장타를 더 많이 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