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에이스' 박지원 "세계 1위? 부담 아닌 짊어질 무게…항상 이길 것" [현장 인터뷰]

입력
2024.05.10 06:35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엑스포츠뉴스 역삼동, 최원영 기자) 박지원(28·서울시청), 에이스는 다르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간판 박지원이 2024-2025시즌을 준비 중이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지원은 "세계 1위의 짐을 짊어지겠다. 쇼트트랙을 쇼트트랙답게 잘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며 "'지지 않는다', '항상 이긴다'는 마인드로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여곡절 끝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지난 3월 열린 2024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동 출전권을 확보하려 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르면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세계선수권 국내 남녀 선수 중 종합 순위 각 1명이 자동 선발된다. 하지만 해당 선수는 개인전 1개 이상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야 한다.

2023-2024 ISU 월드컵 시리즈 세계랭킹 1위로 승승장구 중이던 박지원은 '팀킬(Team kill)' 논란으로 억울하게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황대헌(강원도청)과의 연이은 충돌 때문이다. 세계선수권 남자 1500m 결승서 선두로 질주했으나 황대헌이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들어 박지원을 몸으로 밀어냈다. 균형을 잃은 박지원은 최하위로 처졌다. 황대헌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페널티를 받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남자 1000m 결승에선 황대헌에 이어 2위로 달리던 박지원이 세 번째 곡선 주로에서 속도를 올리며 인코스를 공략했다. 선두 자리를 내준 황대헌은 갑자기 손을 이용해 박지원을 밀쳤다. 중심을 잃은 박지원은 휘청이며 넘어졌고, 대열에서 이탈한 뒤 경기를 포기했다. 이번에도 심판은 황대헌에게 페널티를 부여했다.

결국 박지원은 세계선수권서 남자 계주 은메달 1개에 그쳤다. 국내 선발전을 노려야 했다. 만약 차기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할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보였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 태극마크를 놓치면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없으며, 병역 의무로 인해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국내 선발전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1, 2차 선발전 랭킹 포인트를 합산해 최종 순위가 결정되는 구조였다. 1~3위가 차기 시즌 국제대회 개인전 우선 출전 자격을 얻고, 4~5위는 단체전 우선 출전 자격을 획득한다. 6~8위는 국가대표 후보가 된다.

그런데 1차 선발전 남자 500m 준결승 2조에서 다시 황대헌과 충돌했다. 박지원은 조 최하위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황대헌은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 박지원은 다시 일어섰다. 1차 선발전 남자 1000m 1위, 1500m 2위, 2차 선발전 1500m 1위 등으로 랭킹 포인트 총점 92점을 빚었다. 선발전 종합 1위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2024-2025시즌을 앞둔 박지원은 "새 시즌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기 일정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참고하며 연간 계획을 잡고 있다"며 "선발전을 마친 뒤 머리를 백지로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보를 채워 넣으려면 먼저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새 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입을 열었다.

예년보다 더욱 중요한 시즌이다. 월드컵 시리즈와 사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은 물론 내년 2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이 예정돼 있다. 또한 올림픽 직전 시즌이기도 하다. 박지원은 "오히려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고 훈련하는 편이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듯하다"며 "지금까지 잘해왔기 때문에 보완할 점만 조금 다듬으려 한다. 완전히 다 바꾸진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박지원의 주 종목은 1000m와 1500m다. 영리한 레이스 운영이 강점이다. 그는 "최대한 다양한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쇼트트랙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레이스만 할 순 없다"며 "그래서 일부러 여러 방법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그때마다 부딪히는 상황을 이겨내는 재미가 있다. 이젠 어떤 레이스가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단점이라 말할 수 있는 500m를 제외하고, 1000m와 1500m에서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사실 500m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크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부족하다"며 "보이지 않지만 늘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500m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다면 다른 종목에서 딴 것보다 더 기쁠 듯하다"고 덧붙였다.

2022-2023시즌, 2023-2024시즌 월드컵 시리즈서 연이어 세계랭킹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년 연속 '크리스털 글로브'를 품에 안았다. 새 시즌 그의 헬멧엔 세계 1위를 뜻하는 숫자 '1'이 새겨진다.

당연히 국제 무대에서 경쟁 선수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박지원은 "처음 크리스털 글로브를 획득했던 시즌보다 두 번째 시즌(2023-2024시즌)이 훨씬 더 어려웠다. 다음 시즌은 그보다 더 힘들 것이라 예상한다"며 "어려움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세계 1위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무게라 여기려 한다. 그 무게를 어떻게 이겨나갈지 방법을 찾는 중이다"고 덤덤히 말했다.

박지원은 "상대 선수들의 견제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도 1위를 하지 못했을 땐 1위인 선수를 보며 어떻게든 이겨보고 싶었다"며 "경기 전 워밍업 시간이 10분가량 주어지던 시기에 그냥 몰래, 슬쩍 1위 선수 뒤를 따라가 보기도 했다. 그만큼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돌아봤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마인드 자체가 남다르다. 서울시청 선배인 이정수는 박지원에 관해 "선배로서 존경스러운 선수다. 누구보다 스케이팅을 사랑한다. 그만큼 열심히 노력한다"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스타일이다. 마인드가 무척 좋다"고 표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박지원은 "형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감사하다. 무척 기분 좋다"며 "쇼트트랙을 쇼트트랙답게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쇼트트랙답게 이길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세상엔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정말 많다. 난 단순히 스케이트를 잘 타는 선수다. 아직 모르는 부분도 많을 수밖에 없다"며 "팀에 더 좋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에게 묻고,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며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질문하려 한다"고 부연했다.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도 능하다. 우승 후 크게 기뻐하지도, 실패 후 좌절하지도 않는다. 박지원은 "감정 기복을 줄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너무 기쁘면 통제가 되지 않겠지만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한다"며 "지금 무엇인가를 이뤘다고 해서 다음 경기에서도 무조건 1등이 되는 법은 없다. 기분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이번 남자 대표팀은 박지원을 필두로 장성우(랭킹 포인트 84점·고려대), 김건우(73점·스포츠토토), 김태성(73점·서울시청), 이정수(47점)로 구성됐다. 김태성은 김건우와 랭킹 포인트 73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종목별 성적 계산(CDR)에 따라 4위가 됐다.

박지원은 "장성우, 김태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장성우는 훈련을 무척 열심히 하는 선수다. 난 그 훈련량을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며 "김태성은 다른 장점도 많지만 특히 마인드가 좋다. 대화하다 보면 배울 점이 넘친다. 난 그 나이 때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멋진 선수가 될 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대표팀은 팀워크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계주가 참 어렵다. 혼자 하는 레이스도 쉽지 않은데 네 명이 모여서 한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서로 대화하고 영상을 분석하며 경기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려 한다"고 운을 띄웠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지난달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 1500m 결승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엑스포츠뉴스 DB

박지원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계주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크다. '내가 이 부분에서 해결하면 다음 주자에게 더 도움이 되겠지', '내가 해내지 못하면 다른 선수들에게 짐을 넘기게 되겠지' 등의 생각이 많은 듯하다"며 "각 선수의 기량은 다 훌륭하다. 서로를 위하다 실수가 나올 수 있어 그런 점들을 침착하게 조율하며 레이스를 펼쳐야 할 것 같다"고 짚었다.

계주에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는 2번 주자를 맡고 있다. 2번 주자는 마지막 2바퀴를 소화하며 레이스를 마무리 짓는다. 박지원은 "해결해야 하고, 지지 말아야 한다. 항상 이긴다는 마인드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며 "각 팀 에이스들이 나오는 순번이기 때문에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한다. 이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하는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 오랫동안 쇼트트랙 강국으로 이름을 떨쳐왔다. 최근엔 세계적으로 기량이 평준화되는 추세다. 중국, 캐나다, 네덜란드는 물론 카자흐스탄, 호주 선수들도 조금씩 메달권에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한국의 가장 큰 적은 중국으로 꼽힌다. 중국엔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과 헝가리 귀화 선수인 사오린 샨도르 류, 사오앙 류 형제가 버티고 있다.

박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평준화될 것이라 본다. 경쟁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팀이 흐름을 주도할 듯하다"며 "쇼트트랙이 좋은 점은 단 한 명과 경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 한 팀만을 이기기 위해 집중하는 것은 전혀 쇼트트랙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전략을 세우고, 경기 중 보다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이든, 그 어떤 나라든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득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하고 싶을지 궁금해졌다. "지지 않을 때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지원은 "내 힘이 닿는 데까지 해보는 게 목표다. 언젠가 후배선수들이 나를 이기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내려놓을 것 같다"며 "하지만 쉽게 지지 않을 것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 또한 노력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박지원은 "이번 시즌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덕분에 시즌을 잘 마칠 수 있었다"며 "다음 시즌 나도 변함없이 열심히 해 최선의 경기를 보여드리겠다.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스케이트 잘 타겠다"고 미소 지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스타 박지원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엑스포츠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역삼동, 고아라 기자

사진=역삼동, 고아라 기자​​ / 엑스포츠뉴스 DB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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