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 vs 방신실…역대급 ‘블록버스터’ 개봉박두

입력
2024.03.28 03:00
윤이나 vs 방신실…역대급 ‘블록버스터’ 개봉박두

[서울경제]

1977년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톰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는 뜨거운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왓슨의 1타 차 우승이었다. 그런데 2위 니클라우스와 3위 선수와의 타수 차이는 무려 10타였다. 사실상 왓슨과 니클라우스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이 대결은 지금도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로 회자되고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왼손 지존’ 필 미컬슨은 골프 인생 내내 라이벌 관계였다. 업적에서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82승의 우즈가 앞서지만 미컬슨은 그 와중에도 45승을 거뒀다. 으르렁거렸지만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셈이다.

올해 국내 여자골프계에도 주인공이 2명인 화끈한 ‘블록버스터’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 편으로 끝날 게 아니라 시즌 내내 시리즈로 이어질 대서사다. 윤이나와 방신실의 ‘장타 전쟁’이다. 둘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국내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장타 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예정대로라면 지난해에 개봉했어야 했다. 윤이나가 2022년 6월 한국 여자오픈 당시 오구 플레이와 관련해 대한골프협회(K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로부터 3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탓에 미뤄졌다. 하지만 두 단체가 징계를 경감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4월 4일 제주에서 개막하는 KLPGA 투어 국내 개막전인 두산위브 챔피언십에서 마침내 대결이 성사됐다.

윤이나 vs 방신실…역대급 ‘블록버스터’ 개봉박두

주니어 시절 우승 번갈아 하던 라이벌


윤이나는 2022년 KLPGA 투어에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비거리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때론 우승자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윤이나의 가치는 정규 투어 데뷔 전에 이미 증명됐다. 2021년 KLPGA 투어 점프(3부) 투어 6차전 1라운드에서 화끈한 공격 골프를 앞세워 3개의 이글을 낚은 것이다. KLPGA 투어에서 한 선수가 한 라운드에서 이글 세 방을 기록한 건 사상 처음이었다. 윤이나는 점프 투어를 거쳐 여름에서야 드림(2부) 투어에 뒤늦게 합류하고도 상금왕에 올라 2022시즌 정규 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지난해 데뷔한 방신실 역시 300야드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파워를 앞세워 가히 ‘방신실 신드롬’을 일으켰다. 방신실은 시드 순위전에서 40위에 그쳐 조건부 출전 신세였지만 정규 투어 다섯 번째 출전 대회였던 5월 E1 채리티 오픈 우승과 함께 ‘정규직’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이후 짧은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컨디션을 회복한 방신실은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2승째를 달성하며 투어 무대에 완전히 적응했음을 알렸다.

윤이나와 방신실은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 2019년 6월 대전 유성CC에서 열린 강민구배 제43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 신지애, 김세영, 김효주, 고진영 등을 배출한 이 대회에서 윤이나는 고등학생 언니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중학생이 이 대회 정상에 오른 건 역대 네 번째였다. ‘또 다른 중학생’이었던 방신실은 당시 3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에 열린 블루원배 제37회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에서는 방신실이 우승, 윤이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다시 1년 뒤인 2020년 7월에 열린 제38회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에서는 윤이나가 고등부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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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척척…정말 손 안 가던 친구들”


윤이나와 방신실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한솥밥을 먹던 사이이기도 하다. 한 살 위 언니 윤이나가 1년 앞선 2019년 태극마크를 달았고, 뒤이어 방신실도 2020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둘이 국가대표를 함께한 시기는 2020년인데, 이때 여자 대표팀 코치가 2005년 US 여자오픈을 제패했던 ‘버디 김’ 김주연이다. “둘 다 비슷했어요. 솔선수범하고 워낙 알아서 잘했죠. 정말 손이 안 가던 친구들이었어요.” 김주연은 “당시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라 합숙을 거의 못했다”면서도 윤이나와 방신실을 이렇게 기억했다.

“둘은 뭔가 안 되더라도 끝까지 노력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자기 걸로 만들었죠.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예습하는 모습도 보여줬고요. 첫 합숙을 2주 정도 했을 때 둘이 같은 방을 썼는데 정리정돈도 잘하고, 두 번 말이 안 나오게 스스로 자기 일을 열심히 했죠.”

김주연은 윤이나와 방신실이 다른 선수들 앞에서 훈련과 생활에 모범을 보이고 코치로서 뭔가 주문을 했을 때의 실행 능력을 보면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고 했다. “제가 훈련을 조금 많이 시키는 편이었어요. 눈 뜨고 감을 때까지 훈련을 시켰죠. 근데 둘은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열외 되는 것도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선수들의 충분한 휴식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숙소 방에 웬만해선 가지 않는데 간혹 용건이 있어 가서 보면 둘은 꼭 퍼팅 연습이나 스트레칭 등을 하고 있었다는 게 김주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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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윤이나 vs ‘돌부처’ 방신실


김주연은 자신의 눈에는 방신실이 한 살 위 언니인 윤이나를 잘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방신실은 과거 인터뷰에서 “(윤)이나 언니의 장타를 보고 거리를 더 늘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둘은 드라이버를 멀리 치고 시합 때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등 플레이 성향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윤이나는 항상 밝고 웃는 얼굴로 외향적인 편이었고, 방신실은 상대적으로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꼭 돌부처 같았다는 게 김주연의 설명이다.

윤이나와 방신실이 국가대표를 함께하는 동안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김주연은 “대표선수들은 가족처럼 끈끈하게 돕는 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라이벌 의식은 없었다”면서도 “플레이를 할 때는 보이지 않지만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이기고 싶고 우승하고 싶어 한다. 경쟁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이제 둘은 아마추어 무대를 떠나 프로가 됐다. 기량도 예전에 비해 성장했다. 방신실은 2021년 갑상샘 항진증 진단을 받은 후 한동안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지면서 고생을 했지만 현재 완치가 됐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윤이나에 비해 거리가 덜 나갔지만 몸이 회복하고 스피드 훈련을 통해 비거리를 확 끌어올렸다.

윤이나가 징계 때문에 투어 무대를 떠나 있던 지난해에 방신실이 데뷔한 터라 둘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연기됐다. 아직 둘이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기 때문에 올 시즌 누가 앞설 것인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2022년과 2003년 보여준 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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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조건 · 샷 데이터 우열 가리기 힘들어


우선 장타 능력에서 둘은 막상막하다. 윤이나는 2022년에 평균 263.45야드, 방신실은 지난해에 262.47야드를 찍었다. 둘 다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시속 105마일이 넘는다. 드라이버 샷에 걸리는 백스핀(분당 회전수)도 2400 내외로 이상적이다. 볼에 얼마나 힘을 잘 전달하느냐를 보여주는 스매시 팩터는 나란히 1.48 정도다. 강하게 때리면서 페이스 중앙에 잘 맞히고 있다는 의미다. 티샷을 멀리 때리니 아이언 샷의 그린 적중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윤이나는 79.62%(1위), 방신실은 73.33%(12위)를 기록했다.

장타 능력과 정교한 아이언 샷을 앞세워 둘은 화끈한 공격 골프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만큼 버디 확률도 높다. 라운드 당 평균 버디 수에서 윤이나는 3.91개(1위), 방신실은 3.54개(2위)를 기록했다. 파보다 나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파 브레이크율에서 윤이나는 21.85%(1위), 방신실은 20.07%(2위)로 엇비슷했다.

그린 데이터에서는 방신실이 약간 앞섰다. 평균 퍼팅에서 방신실이 30.45개(43위), 윤이나는 31.02개(82위)를 기록한 것이다. 톱10 피니시율에서도 방신실(36.00% · 8위)이 윤이나(33.33% · 11위) 보다 조금 나은 수치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샷 데이터로 둘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신체 조건을 보면 방신실(173cm)이 윤이나(170cm)보다 3cm 크지만 단단한 면에서는 윤이나가 우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손이 커야 골프를 잘 친다는 속설이 있는데 둘 다 여성용 라지(L) 사이즈 장갑을 낀다. 발은 방신실(250mm)이 윤이나(245mm)보다 약간 크지만 윤이나는 발볼이 넓어 남자 사이즈 신발을 신는다고 한다. 그밖에 파워 히터답게 둘 다 고기를 즐겨 먹고, 독서(윤이나)와 음악 감상(방신실) 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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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선 앞에서 각오 다지는 ‘장타 퀸’


윤이나와 방신실은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윤이나는 징계 이후 처음으로 국내 팬들 앞에 서기 때문에 떨릴 수밖에 없다. 징계 감면에 상당수가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투어 동료들 속으로 윤이나가 어떻게 융합해 들어가느냐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방신실에게는 투어 2년 차에는 더욱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윤이나는 복귀를 앞두고 지난겨울 호주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평소 존경하는 대선배 신지애와 함께하며 한 단계 성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신지애가 골프뿐 아니라 삶에 대한 여러 조언을 했다. 윤이나는 지난해 11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리코컵 당시 대회장을 찾아 신지애의 경기를 나흘 동안 지켜봤다고 한다. 이후 신지애가 윤이나에게 호주 훈련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이나는 훈련기간 중 호주여자프로골프(WPGA)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4위로 통과한 뒤 2월에는 빅 오픈에 출전해 공동 11위에 올랐다.

방신실은 태국 농카이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농카이는 방신실이 정규 투어 데뷔를 앞두고 비거리를 20m 이상 늘렸던 달콤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방신실은 이번에 드라이버 샷 정확도를 더 높이고, 쇼트 게임과 퍼팅을 향상시키는 데에 집중했다고 한다. 올해는 기복 없는 시즌을 보내면서 작년보다 많은 3승 이상을 거두는 게 방신실의 목표다.

윤이나의 이름은 ‘윤이 나다’는 한글에서 따왔다. 방신실은 국가대표 시절에는 웃음이 별로 없던 돌부처였지만 지금은 ‘방실방실’ 잘 웃는다. 윤이나와 방신실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항상 빛이 나고 웃음꽃이 필 골프인생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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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스킴
    스포츠의 정도를 걷는 선수와 그 반대인 범죄자를 함께 섞어서 비교설명을 하고 있네~~ 참 어이가 없고 기가 찹니다~~
    0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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