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는 인터뷰였다. 흥국생명이 지난 13일 GS칼텍스를 꺾고 8연승을 한 경기의 수훈 선수로 꼽힌 김연경(37)은 후배 정윤주와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왔다.
김연경은 연승 소감을 묻는 첫 물음에 “내용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승점 3점을 가져올 수 있어서 좋았다”며 “앞으로 5, 6경기만 이기면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앞서 9일 김해란의 은퇴식에서 “곧 따라가겠다”며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발언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물음이 이어서 나왔다. 김연경은 이렇게 답했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린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성적과 관계없이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빠르게 많은 분께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여러 이해관계(구단, 매니지먼트, KOVO 등)가 있어서 빨리 말씀 못 드린 점 죄송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합 잘 마무리 할 것이고, 많은 분이 경기장에 와서 제 마지막 경기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예상치 못한 은퇴 선언. 인터뷰실은 아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은퇴를 결심한 배경을 묻는 말이 추가로 나왔다.
“배구를 오래 하기도 해서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주변 얘기도 듣고, 개인적으로 생각도 많이 했다.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아쉽다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언제 은퇴해도 아쉬울 것이기 때문에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선택한 것 같다.”
한국배구의 ‘살아 있는 전설’ 김연경은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올시즌 득점 6위(521점), 공격 성공률 2위(45.36%), 리시브 효율 2위(42.34%)를 기록 중이다. 소속팀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활약에 힘입어 압도적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기량만 놓고 보면 은퇴할 때가 아니다.
“항상 좋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실 때 그만두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다.”

지난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생활체육지도과에 입학한 김연경은 제2의 인생에 대한 그림도 조금씩 그리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딴 ‘KYK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24학번 대학생이니까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다.(웃음) 좋은 일들이 있으면 성급하지 않게 잘 결정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려 한다.”
당장은 마지막 시즌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오랜 기간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던 김연경은 2020~2021시즌 흥국생명으로 돌아와 한 시즌 뛰었고, 이후 중국에서 1년을 보낸 뒤 2022~2023시즌부터 다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국내 복귀 후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올시즌 ‘통합우승’은 은퇴 전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좋은 마무리를 원한다. 잘 마무리하면 좋지만, 사실 우승을 못 해 본 건 아니라서 혹시 우승을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 비시즌 때부터 열심히 준비했다. (정)윤주 등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참 좋다. 팀원들이 잘 도와줄 거로 생각한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함께 받았으면 좋겠다.”

대선배의 깜짝 은퇴 선언을 바로 옆에서 듣고 눈에 눈물이 고인 정윤주는 “언니가 옆에 있는 남은 시간이라도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히 저는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는데, 언니의 선택이니까 마무리라도 같이 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흥국생명은 앞으로 정규리그 8경기를 남겨뒀다.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직행이 유력한 상황을 고려하면 팬들이 김연경을 코트에서 볼 수 있는 경기는 최대 13경기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경기장에 오셔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